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델피늄 Dec 31. 2019

너와 같이 성장하는 엄마가 되고 싶다.

졸업과 입학이라는 접점에 서있는 너와 나



이십 대의 끝자락에서 서른을 코앞에 둔 생경한 기분이 바로 이런 건가 싶다. 이제 곧 여덟 살이 되는 아이를 보는 내 마음이 그렇다. (정작 내 서른 살의 시작은 무덤덤했는데.) 아이의 초등학교 취학 통지서를 보니 마음은 더 어수선해졌다.


여름과 가을을 지나오면서 아이는 몸도 마음도 한 뼘씩 컸다. 살짝 길었던 바지가 예쁘게 딱 맞고, 헐렁했던 단화도 이젠 벗겨지지 않는다.

운동회, 가을 소풍, 졸업 앨범 촬영, 선생님과의 상담, 4/4분기 학비. 모든 게 끝났다. 모두 유치원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별게 다 아쉽고 마지막 납부금을 알리는 고지서 마저 슬프다.


이렇게 너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나는 어떤 엄마였을까. 네 몸집만 한 가방을 메고 처음 등원하던 날의 기억이 아직 선명한데 벌써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서일까. 지나온 시간들 사이에 쌓여가던 공허함이 유독 크게 느껴지는 겨울이다.



지난 10월 유치원 가을운동회



한 달 전 유치원에서 선생님과의 상담이 있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더 심란해졌다. 선생님은 내가 걱정하고 있는 부분을 정확하게 끄집어냈고, 많은 생각들이 뒤섞이면서 머리가 복잡해졌다.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학습 태도도 좋은데요, 다만 뭐든지 완벽해야 한다는 생각이 다른 친구들보다 강해요. 이게 약간 걱정돼요. 좋게 말하면 승부욕이지만 본인한테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는 부분이잖아요. 앞으로 학교 생활하면서 여러 가지 상황에 부딪힐 텐데 그럴 때마다 필요 이상으로 스트레스를 받진 않을까 그게 좀 염려되네요.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막상 직접 들으니 단어 하나하나가 가슴에 팍팍 꽂히는 기분이었다.


아이는 꼭 백 점을 맞아야만 직성이 풀리고 보드 게임 같은 가벼운 놀이에서 지는 것도 아주 싫어한다.

아이의 이런 성격은 서너 살쯤부터 보이기 시작했는데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것이 내 착오였을까. 나랑 집에서 하는 간단한 받아쓰기에서조차 틀리지 않으려고 신경을 곤두세우는 아이를 볼 때면 한숨 섞인 걱정이 앞선다.


학교 가면 이것보다 더 한 과제들이 기다리고 있을 텐데 아이가 너무 예민한 건 아닐까.

나야말로 예민한 성격이라 벌써부터 괜한 노파심만 늘어놓는 걸까.


유치원 졸업과 초등학교 입학이라는 접점에 서 있는 요즘. 정답이 보이지 않는 고민들로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각자의 색으로 가을을 알리던 유치원의 11월



<예민한 아이의 특별한 잠재력>의 저자 롤프 젤린은 예민한 아이의 특징과 장단점, 예민한 아이의 마음을 다스리기 위한 부모의 역할을 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리고 예민함은 잘못된 게 아니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면 타고난 재능이기도 하며, 찻잔만이 아닌 그 너머 찻잔 속까지 들여다볼 줄 아는 ‘특별한 인지능력’이라 말한다.


내가 지금 고민하고 있는 부분도 책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예민한 아이는 완벽성을 추구하는 성향이 있기에 학습이 한층 어렵다. 스스로에게 성급하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안타깝게도 이런 성향은 학교 특성에 의해 한층 강화된다. 가령 어떤 단어의 철자가 틀렸다면 그 기회에 바른 철자를 더욱 잘 기억할 수 있지만, 예민한 학생은 남다른 완벽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틀린 문제에 그어진 빨간색 줄만 봐도 금세 스트레스 상태에 빠진다.

예민한 학생의 학습 장애는 다른 학생들처럼 학습 동기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높다 못해 때로는 지나치기까지 한 학습 동기에서 시작된다.

<예민한 아이의 특별한 잠재력> 중에서



이 부분을 읽다가 ‘악거’가 생각났다.


‘악어’를 ‘악거’라고 써서 받아쓰기 열 문제 중 하나를 틀린 적이 있다. 미간을 찌푸리며 빨간 줄이 그어진 ‘악거’를 노려보던 아이는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고쳐놨다. 처음부터 ‘악어’로 썼고 원래 백 점이었던 것처럼. 새로 꾹꾹 눌러쓴 글자 하나하나에 아이의 욕심이 묻어있는 것 같았다. 이게 뭐라고.


그냥 나랑 가끔 하는 받아쓰기일 뿐인데 굳이 고쳐놓은 이 못 말리는 고집이 귀여우면서도 한편으론 책 속 예민한 학생들이 겪는 ‘학습 장애’가 남 얘기만은 아닌 것 같았다.






아이는 뭐든지 완벽해야 직성이 풀리는 예민함과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 그 둘 사이를 매일 오간다.

그리고 나는 예민한 성격을 부정적으로 여긴 나머지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크게 보였는지도 모르겠다.


유치원에서 친구가 속상해했다며 그 감정에 깊이 공감하는 아이의 따뜻한 마음, 길 가다 마주친 보라색 제비꽃을 그림으로 남기는 작은 손, 노을 지는 하늘을 보러 가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의 눈은 특별한 눈이었다. 세상을 특별하게 느끼고 볼 수 있는 감각이었다.



‘예민하다’라는 말에는 여러 가지가 포함되어 있다. 먹는 것, 듣는 것, 보는 것, 만져지는 것, 심지어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느끼는 것 등 모든 감각이 다른 사람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모든 것이 민감하다 보니 자신이 느끼는 것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런데 예민함이 다른 재능이나 능력과 결합할 경우 커다란 장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예민한 인지능력이 인생에 플러스가 될지 마이너스가 될지는 이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예민한 사람은 먼저 이러한 기질을 특별한 선물로 받아들이고 소중히 여기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예민한 아이의 특별한 잠재력> 중에서



작년 12월 말에는 이렇게나 눈이 많이 내렸구나



따뜻해서 겨울 같진 않지만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입학 전 방학이라 시간을 알차게 보내야 할 것 같은데 일단 내가 먼저 부지런해져야겠다. 그동안 어떤 엄마였는지 되돌아가 살피는 습관을 멈추고, 공허한 마음을 의미있는 시간들로 채워야겠다.


내 아이의 특별한 잠재력을 믿고 같이 성장하는 엄마로 살고 싶다. 새로운 시작을 앞둔 아이를 행복하게 응원하는 엄마가 되어야겠다.



아이에 대한 부모의 두려움과 걱정은 아이를 약하게 만들 뿐이다. 그 두려움 뒤에 어떤 좋은 생각이 숨어 있는지, 정말 아이를 위해 달성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봐라.

아이가 강해지고 발전하고 안녕하기를 원한다면 막연하게 두려움을 갖기보다는 아이를 위해 염원하는 바에 집중하기 바란다.

책 속 ‘예민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필요한 스무 가지 지혜’ 중에서




매거진의 이전글 핑크 공주와 타협하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