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동과 둘째 사이, 그 지난했던 고민의 끝
나는 사랑스러운 일곱 살 외동딸을 키우고 있고, 둘째를 가질 생각은 없다.
사실 외동으로 키우겠다고 확실한 결정을 내리기까지 지난 몇 년간 정말 많은 고민을 안고 살았다. 주위 사람들의 애정 어린 조언(?)에 마음이 휘청거렸고, 아이에게 왠지 모를 미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날이면 초록창에 ‘외동 둘째’라고 검색해보았다. 그러면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엄마들의 허심탄회한 이야기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렇게 나 같은 사람이 많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고 공감하면서 심란했던 마음을 가라앉히곤 했다.
하나는 외로워서 안 돼. 둘은 낳아야지.
인생 선배들이 쉽게 건네던 이 말은 나를 더 불안하게 했다. 정말 아이는 외롭다고 느낄까? 좀 더 커서 엄마 껌딱지 시기가 지나면 동생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하진 않을까?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외동과 둘째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거의 매달 의식처럼 치르던 임신테스트기와의 지긋지긋한 밀당에 지쳐버린 나는 결국 병원을 찾았다. 매번 그 길고 지루한 대기시간을 버틴 후 진료를 받고 나오면 피로가 온몸을 짓눌렀다. 안 그래도 저질 체력인데.
의사가 정해 준 가임기가 끝나고 다음 진료를 접수할 때면 간호사는 날짜를 확인한 후 무뚝뚝한 말투로 내게 물었다.
숙제하고 오신 거죠?
쓸데없이 예민한 나는 그 ‘숙제’라는 말이 항상 불편했다. 그것을 숙제라고 부르는 순간 마치 엄한 선생님 앞에 긴장한 채로 서서 숙제 검사를 받는 학생이 된 듯한 기분이었고, 처음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의 가슴 벅찬 감동은 뒤로 한 채 오로지 생물학적 결과만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 어감이 왠지 신경 쓰였다.
아무튼 둘째를 간절히 기다리며 열심히 병원을 다녔지만 결과는 헛수고였다. 숙제는 그렇게 말 그대로 해결하지 못한 진짜 ‘숙제’로 남고 말았다.
그 후로도 한참 동안 주변 지인들이 둘째 혹은 셋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저 부럽기만 했다. 포근한 유모차에서 새근새근 잠든 아기의 얼굴, 기저귀로 불룩해진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깜찍하고 사랑스러운 뒷모습을 보게 될 때면 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만약 둘째가 태어난다면 능숙하게 척척 키울 자신 있다며 서툴렀던 과거에 대한 아쉬움을 보상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순식간에 지나가버린 아기 시절이 그리워 시간을 붙잡고 싶기도 했다. 그렇게 난 둘째를 완전히 포기한 것도 아니고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미련을 참 오랫동안 질질 끌었다.
그러다 어느 날 문득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언제 생길지도, 어쩌면 영원히 안 생길지도 모를 둘째를 습관처럼 상상하고 있는 걸까?
지금 내 곁엔 이 세상 하나뿐인 소중하고 예쁜 딸이 있는데.
그게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끝이 보이지 않을 때면 일단 책을 찾았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내 질문에 답해줄 것 같은 책들을 찾아보고 읽으며 어지러운 머릿속을 환기시켰다.
현실과는 달리 둘째라는 미련을 놓지 못했던 그때, 내 마음에 확신을 심어 줄 문장 하나를 만나고 싶어서 육아서를 정말 많이 읽었다.
사실 육아라는 게 아이의 타고난 기질과 성향, 부모의 육아 방식, 가정 내 이런저런 상황 등등 재고 잴 게 넘쳐나기 때문에 책을 통해 내 고민을 정확하고 속 시원하게 해결하진 못했다. 다만 여러 종류의 육아서를 읽다 보니,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어 이제껏 고민했던 생각의 조각들이 모여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행복한 사람임을 아이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엄마의 역할을 잘 해내고 싶어졌다.
나는 아이가 사랑을 듬뿍 받고 자라서 마음이 풍요롭고 따뜻한 사람이 되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안정을 토대로 건강한 어른이 되어 행복한 인생을 꾸려나갔으면 좋겠다. 그러다 가끔 지치고 힘든 날엔 내 품에 안겨 푹 쉬다 가고.
나는 아이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쉼터의 나무 같은 그런 엄마가 되고 싶다.
부모의 사랑을 온전히 혼자서 마음껏 누릴 수 있는 외동의 장점이 이런 나의 생각과 결이 같음을 깨닫고 나자 막연하기만 했던 둘째라는 미련은 깨끗이 사라졌고, 나를 보며 사랑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딸의 해맑은 얼굴이 보였다.
아이는 내가 좋은 사람 이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형제가 있고 없고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외동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은 부모, 특히 어머니의 마음이 안정되어 있고 행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하나의 소중한 생명이 나를 찾아온 것에 감사하자. 그리고 "엄마에게는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이야.", "네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해."라는 말을 아이에게 끊임없이 속삭여주며 사랑을 전달하자.
토닥토닥, 스킨십도 중요하다.
이것이 외동아이를 강하고, 따뜻하며, 늠름하게 키우는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모로토미 요시히코 <외동아이 키울 때 꼭 알아야 할 것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