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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샬럿 Dec 10. 2020

나의 취향을 만든 건 당신의 사랑

내 일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류의 사랑을 기억하며.

나는 노란색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나와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노란색 옷이나 액세서리는 가지고 있지도 않고, 무엇인가를 사야 할 때도 '노란색'이라는 이유로 선택지에서 쉽게 제외시켜 버린다. 내 일상에서 노란색이 차지하는 것을 굳이 찾아보자면 피씨 카톡의 내 대화 말풍선 정도? 그 비율이 0에 수렴할 정도로 내 주위에서는 노란색을 가진 무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이렇게 나는 노란색 물건에 대해 다소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이런 취향은 ''을 보거나 살 때만은 예외였다. 사실 그 이유에 대해서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다. 그냥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생겨버린 조금 특이한 나만의 꽃 취향이었기 때문에 다른 이유가 있거나 무슨 계기가 있어서였지?라고 곱씹어볼 필요조차 없었다. 우효의 '민들레'를 들으며 민들레 꽃이 한송이 찍혀 있는 앨범 커버를 볼 때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이유는 그냥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를 듣고 있으니까, 라고 생각했다. 이직한 회사 가까이에 화원이 하나 있어서 집에 놓을 꽃을 사러 자주 들렀었는데, 그때마다 언제나 마지막에 두고 고심하는 다발들에 꼭 포함되어 있는 노란 꽃을 고르며 화사하니 예쁘니까, 라고 설풋 떠올리는 정도였다.



우효의 '민들레' 앨범 커버

 


 얼마 전 좋아하는 카페에 오랜만에 들러 커피를 사고 나서 노란 꽃이 들어있는 작은 꽃다발을 받았다. 커피를 마시면 사장님이 직접 사 오고 고른 꽃 몇 송이를 함께 선물하는 곳인데, 랜덤으로 고른 꽃들 중 내가 좋아하는 노란 꽃이 섞여 있다는 게 참 반가웠다. 바로 이동해야 했던 터라 선물 받은 꽃다발과 커피를 들고 기분 좋게 길을 걸었다. 남산과 가까운 곳에 있는 곳이라 단풍도 보며 이동할 겸 길가에 떨어진 노란 은행잎 가득한 길을 걸어가다가 정말 불현듯, 어떤 기억이 머리에 떠올랐다.


예전에 누군가 나에게
노란색 꽃 같다고 했었던 것이.


 갑자기 떠오른 이런 기억도 있었지라는 생각에 멍-한 몇 초를 지나고 나니, 그때의 기억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 사람은 나한테 노란색 꽃을 닮은 사람이라고 했었다. 그렇게 몇 번이고 노란 꽃이 가득한 다발을 나에게 불쑥 선물하기도 했다. 하루는 노란 꽃이 잘 나오지 않는 계절이라 꽃집을 몇 군데를 다녀와서 약속 장소에 오는 데 조금 늦었다며 땀을 흘리며 내게 노란색 꽃다발을 내밀 때도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꽃 같은 사람이라고 한 것은 처음이라, 심지어 그 꽃이라는 게 내가 평생 신경 써본 적도 없었고 딱히 좋아하지 않는 노란색이라는 것이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이후부터 신기하게도 내 일상을 함께 하고 있는 노란색 꽃들이 눈에 갑자기 들어오기 시작했다. 같이 걸어가던 길가 화분에도 이름 모를 노란 꽃은 자라고 있었고, 봄날 공원에도 잔디와 함께 민들레꽃이 가득했으며 제주도에서 유채꽃무리를 발견했을 때는 같이 손뼉을 치며 행복해하기도 했다.


그렇게 일상에서 만나는
모든 노란 꽃들은 나를 설레게 했다.   



 아마 그때쯤이었던 것 같다. 꽃집에 가면 온갖 화려한 색을 가진 꽃을 뒤로하고 눈으로 노란색 꽃부터 찾는 습관이 생긴 것이. 프리지어, 튤립, 리시안셔스, 미니장미... 노란 꽃들을 두 세 다발씩 사 와서 집에 꽂아 놓고 시선이 갈 때마다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절로 웃음이 나왔다. 어쩌면 우효의 '민들레'라는 노래를 처음 듣게 된 것도 노란 민들레가 피어있는 앨범 커버가 맘에 들어서가 아니었을까?  




 그렇게 예전의 기억을 곱씹어 보고 나서 나는, 누군가의 사랑에서 기인한 수많은 표현들이 지금 내 일상에 무의식적으로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을지를 생각하게 됐다.


 몇십 년을 지나며 나의 취향을 만든 건 결국 나의 선호뿐만이 아니라 누군가와 함께하며 -가족이든, 연인이든, 친구든, 반려동물이든,  무엇이든- 행복했던 기억이기도 할 것이다. 누군가의 애정 어린 마음에서 전달된 '노란 꽃 같은 사람'이라는 말이 나의 꽃 취향을 만들었고, 회사에서 스트레스받아 힘든 날 나를 꽉 안아주다 바로 냉장고에서 꺼내 차가운 잔에 따라주었던 기네스 맥주가 나의 혼술 취향을 만들었다. 이가 아플 때 그래도 먹고 싶은 건 먹어야 한다며 하나하나 조각내어 잘라준 떡볶이 떡과, 시골길에서 촐싹대다 니트 옷에 온통 붙어버린 도깨비 덩굴 씨앗을 벤치에 앉아 같이 하나하나 떼어내 준 기억은 내 머릿속에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내 일상에서 우연히 다시 발견하게 되었을 때 사랑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는 마법 버튼 같은 존재가 되었다. 되돌아 보니 이렇게 다시 한번 눈길을 보내며 행복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존재들로 내 삶은 가득 채워져 있었고, 그러한 존재가 다시 돌아 나의 취향과 선호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나는 앞으로 길을 가다 노란 꽃을 보게 되면, 퇴근 후 편의점의 맥주 할인 이벤트에서 기네스 흑맥주 캔만을 잔뜩 고르게 되면, 길가 포장마차에서 군것질을 하다 조그맣게 잘라진 떡볶이 떡 조각을 보게 되면, 겨울 등산을 하다 옷에 붙어버린 도깨비 덩굴 씨앗을 발견하게 되면, 그 외 언제 떠오를지 모르는 재회의 순간을 마주치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향해 전해주었던 사랑을 떠올릴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했던 시간은 이미 지나가 버리고 행복했던 시간도 이미 지나가 버리고 말았지만 그때 마음을 내어, 용기를 내어 내게 건네 준 수많은 형태의 사랑에, 나의 일상을 가득히 채워준 그 사랑에 지금에서야 다시 한번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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