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내려진 휴교령으로 인해 갑작스럽게 홈스쿨링을 시작한 지도 두 달이 넘어섰다. 유치원에 가기 싫다고 아침마다 생떼를 부렸던 녀석인데 며칠 전부터는 대체 유치원엔 언제 가는 거냐며 선생님도 보고 싶고 친구들이랑 놀고도 싶다는 기특한 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덧붙여 "엄마학교"는 너무 무섭고 힘들다나?
나 역시 쉽지 않다. 내 새끼 가르치다 보니 욕심도 나고 성질도 난다. 게다가 중간중간 밥하러 들락거려야지, 혼자 공부하는 큰아들은 왔다 갔다 하면서 속 뒤집어 놓지, 진짜 못 해 먹겠다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가뜩이나 영어도 못 하는 아이가 유치원도 몇 개월 못 다닌 채 9월이면 1학년으로 진급하게 생겼으니 그냥 놀릴 수는 없다.
다행인 건 이스터 방학이 끝난 4월 중순부터 영국에 다양한 온라인 강의와 학습자료가 지원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도 분야별 학습과제와 그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등 적극적으로 홈스쿨링을 지원하고 있다.
학생들의 학습결손을 막기 위해 영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Oak National Academy". 각 학년별 주요 과목의 수업을 온라인으로 수강할 수 있다. 우리나라 "EBS"와 비슷한 사이트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코로나 사태 때문에 급하게 만들어진 만큼 EBS 수준의 수업을 기대하면 곤란하다. 선발된 교사가 자신의 강의 영상을 직접 찍어 업로드하는 방식이라 화질도, 음질도, 수업의 질도 교사에 따라 편차가 있다. 그렇지만 영어도, 영국 교육과정도 익숙하지 않은 한국인 부모가 자녀를 가르치는 데 있어선 그 어떤 것보다 유용한 길잡이가 된다. 낯선 온라인 환경에서도 다양한 시각적 자료를 활용하여 열정적으로 강의를 진행하는 교사들의 노력도 꽤 인상적이다.
"Oak National Academy"에서는 Reception(유치원)부터 Primary(Year 1~6), Secondary(Year7~10)까지 학년별 강의가 지원되는데, 요일별로 구분된 수업 영상이 매주 업로드된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초등학교부터 의무교육이지만 영국은 유치원(만 4세)부터 의무교육이므로 보통 초등학교에서 유치원까지 통합 운영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유치원이라는 개념이 학교와 별도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1학년 아래에 "Reception"이라는 학년이 하나 더 존재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Reception"학년은 "Foundation", "English", "Maths", "PE" 총 4개의 과목을 수강할 수 있다. 한 강의는 약 20분가량의 영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유치원 교육의 가장 큰 목표가 "파닉스"인 만큼 영어 과목은 파닉스 교육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나아가 "Jack and the Beanstalk"이나 "Hansel and Gretel"처럼 유명한 동화를 짧게 재구성해 들려준 후 동화 속에 나오는 주요 단어를 습득하게 하고, 5개 정도의 중심 문장으로 이야기를 다시 써 보게 함으로써 아이가 완전하게 책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다. 단어 습득과 리딩은 물론이고, 스토리맵과 동화 다시 쓰기 활동을 통한 이야기 흐름 파악까지 체계적으로 진행되는 강의가 꽤 만족스럽다.
수학 과목은 기본적인 숫자 세기와 간단한 사칙연산의 개념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기초과목은 계절과 날씨의 변화, 이동수단, 생일 카드 쓰기 등 과목명 그대로 기초 지식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체육 과목도 업로드되는데 가끔 두 부부강사의 아기까지 등장하는 매우 자유로운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BBC Bitesize"는 BBC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학습 사이트이다. 학생들의 학습과 과제 수행, 시험대비를 지원하기 위한 동영상, 학습활동, 퀴즈 등이 학년별, 과목별로 제시되어 있다.
영국에 온 후 아이들을 학교에 적응시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던 초창기 시절 가장 당황스러웠던 일은 영국 학교에 "교과서"가 없다는 점이었다. 영국에는 교과서 대신 과목별로 빈 노트를 나누어 주는데, 거기에 수업내용을 필기하고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에게 노트를 제출해야 한다.(시험 주간에만 노트를 돌려받을 수 있다.) 이런 독특한 시스템은 8학년인 큰아이가 영국 교육과정을 따라가는데 큰 걸림돌이 되었는데, 이때 아이의 학습에 많은 도움을 준 사이트가 "BBC Bitesize"이었다.
"BBC Bitesize"에서도 코로나로 인한 휴교에 대응하기 위해 4월 중순부터 "Daily Lessons"를 오픈했다. 이 사이트에서 지원하는 강의는 앞에서 설명한 "Oak National Academy"와는 다른 형태로 구성되어 있는데, 교사가 직접 학습내용을 설명하는 강의형 수업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학습자료와 학습방향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때문에 자기 주도 학습을 선호하는 학생들이나 자녀와 함께 홈스쿨링을 하고 있는 학부모들이 필요한 학습 소스를 얻는데 매우 유용하다.
아쉽게도 "BBC Bitesize"는 "Reception(유치원)"을 제외한 1학년부터 10학년까지의 강의만 제공하고 있다. 때문에 유치원생인 작은 아이는 "Oak National Academy"를 중심으로 학습한 후, "BBC Bitesize" 강의 중 비교적 쉽고 유익한 학습 영상을 선별하여 활용하고 있는 중이다. "Oak National Academy"에서는 다루지 않는 영국 역사와 지리, 유명 인사 등 다양한 과목과 분야까지 접할 수 있어서 자칫 영어 교육 위주로 편중되기 쉬운 6살 한국인 아이의 홈스쿨링에 균형을 맞춰준다.
코로나 시대에 영국 온라인 교육의 양대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 "Oak National Academy"와 "BBC Bitesize" 못지않게 각 학교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아이들의 학습을 지원하고 있다. 필자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ClassDojo"라는 앱을 활용해 학습과제를 제시하고, 아이들의 홈스쿨링 결과물을 공유하고, 유익한 교육사이트와 정보를 게시하여 학습동기는 물론 학습의지를 지속적으로 북돋아준다.
기본적으로 학교에서 제시하는 데일리 학습은 6개 분야로 나누어지는데, "Phonics", "Maths", "Reading", "Handwriting", "Comprehension", "PE"과목으로 구성된다. 매주 금요일에는 한 주 동안 배운 수학 개념을 정리할 수 있도록 5개가량의 질문으로 구성된 수학 퀴즈가 업로드되고, "Today's story"라는 타이틀로 담임선생님의 구연동화 영상도 업로드된다.
앱을 활용한 칭찬과 보상도 주어진다. 아이의 과제 결과물에 대해 칭찬 포인트를 부여하고, 홈스쿨링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콜라주로 엮어서 수시로 게시한다. 뿐만 아니라 매주 1번씩 교장이 진행하는 "온라인 조례"에서는 창의적인 아이들의 홈스쿨링 활동에 대해 공유하고 칭찬하는 시간을 갖는다.
학교와 교사의 세심한 노력들이 6살 아이한테 꽤 효과적이다. 수시로 칭찬 포인트를 확인하고, 선생님한테 보여줘야 한다면서 글씨를 예쁘게 고쳐 쓰고, 업로드된 사진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곤 으쓱해하니 말이다.
유치원생의 갑작스러운 "엄마학교" 입학도, 그 엄마의 난데없는 홈스쿨링 교사 역할도 벌써 두 달 차에 접어들었다. 그 사이 다양한 온라인 학습 사이트 운영과 학교의 성실한 지원 덕분에 혼란스러웠던 교육환경도 꽤 알차게 자리 잡고 있다. 홈스쿨링이 안정되면 안정될수록 아쉬운 마음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하필 영국 유학기간에 학교도 못 가고 집에서 엄마학교나 다니고 있는 아이들이라니..! 여러모로 아까운 마음을 떨치려 오늘도 월요병에 걸릴 만큼 선생 노릇에 최선을 다해 본다. 아, 6살짜리 아들의 친구 노릇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