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디카프리오
셰익스피어 하면 "4대 비극"이라는 단어가 자동으로 연상되는데 어떤 작품이 4대 비극에 속하는지는 도통 자신 있게 대답할 수가 없다. 다행히 가수 "쿨"이 "운명"이라는 노래에서 "나도 아, 햄릿처럼 지금 죽는 거냐? 사는 거냐?"라는 가사를 읊어주어 "햄릿"하나 불러대고, 내용은 전혀 모르겠으나 불현듯 떠오른 제목 "리어 왕"하나 불러대고, 나머지 둘은.. 생각이 안 난다. 그래, 셰익스피어 하면 4대 비극보단 "로미오와 줄리엣"이지! 그리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앳된 미소를 마음에 머금은 채 셰익스피어의 생가로 향했다.
"Stratford-upon-Avon"이라는 영국 중부 지역에 그의 생가가 보존되고 있는데, 영국에 "Stratford"라는 지명이 많아서 이를 구분하기 위해 "Avon 강이 흐르는 지역"이라는 의미의 "upon-Avon"이라는 단어를 덧붙였다고 한다. 덕분에 셰익스피어의 출생지에 걸맞은 꽤 낭만적이고 문학적인 느낌의 그럴듯한 지명이 탄생한 것 같다.
누군가의 생가를 찾는다는 건 그 누군가가 자라난 환경과 그에 따른 성장과정을 어렴풋이 헤아려보고 싶은 마음에서인데, 그렇기 때문에 그가 거닐었을 정원, 그가 보았을 강가, 그가 다녔을 학교, 심지어 꽃 한 송이나 돌멩이 하나까지도 의미를 부여하게 된다. 이 소소한 주변의 것들이 "셰익스피어"에게 커다란 예술적 영감을 주었으리라! 코로나로 인해 그의 생가에 들어가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 마을을 돌아보고 주변을 산책하며 셰익스피어의 지나간 시간을 마음대로 되돌려보는 것도 충분히 뜻깊은 일이다.
호수처럼 고요한 에이번 강가와 이름 모를 들풀이 차분하게 늘어서 있는 산책로를 거닐어 그의 생가로 향한다. 가끔은 샛길로 통한 무성한 숲에서 숨을 고르기도 하고, 평화로운 오리 가족의 나들이도 구경하며 서두를 것 없이 찬찬히 걸어본다.
잔잔한 산책로를 벗어나면 널찍한 공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에이번강 풍경이 펼쳐진다. 우아한 듯 여유롭게, 무심한 듯 당당하게 강물 위를 활보하는 수많은 오리와 백조가 인상적인 공간이다. 산책로가 사람의 것이라면 강은 완벽히 그들의 소유처럼 보였다.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방문하는 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에이번강을 따라 몇 날 며칠 산책만 해도 좋을 것 같았다. 사람들의 분주함과 새들의 힘찬 날갯짓, 흐트러짐 없이 그대로 멈춰 선 채 그들을 감싸 안은 포근한 자연을 바라보면서 고요함과 활기참, 잠잠함과 떠들썩함을 동시에 느껴본다. 그리곤 "산책"과 "영감"이라는 단어를 되뇌인다. 셰익스피어는 이곳을 산책하며 어떤 영감을 하나 주웠을까?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챙겼을까? 또는 누군가와 사랑에 빠졌을까?
강가를 벗어나 16세기에 성행했다는 튜더 양식 건물이 늘어서 있는 한적한 골목으로 들어섰다. 골목의 끝자락에 굳게 문이 걸어 잠긴 허름한 목재 골조의 집이 눈에 띈다. 셰익스피어의 생가를 향해 마음이 따뜻해지는 산책로를 거닐어 마지막으로 다다른 그의 집에서 "로미오와 줄리엣"이 나지막이 떠오른다. 그 찰나의 안타까운 결말보다는 그들의 풋풋하고 로맨틱한 사랑이..!
그래, 셰익스피어 하면 4대 비극보단 "로미오와 줄리엣"이지. 그리곤 출발할 때처럼 또다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사랑에 빠진 앳된 미소만 마음에 챙겨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