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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Jul 26. 2020

스노도니아(Snowdonia)

웨일즈에서 가장 높은 산인 "스노든(snowdon)". 이 산의 이름을 따서 그 일대가 "스노도니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만큼 스노든산은 그 명성에 걸맞게 웅장하고 장엄한 자태를 드러냈다.

란베리스역에서 산악열차를 타고 스노든산 정상 부근에 도착했다. 산꼭대기까지 운행하는 열차는 코로나 여파로 중단되었기 때문에 열차에서 내린 후 40여분을 걸어올라 정상에 다다를 수 있었다.

구름이 연기처럼 피어나 산 전체를 휘감은 자리에서 뿌옇게 떠오른 스노든산을 마주하니 태초, "태초"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시간과 공간, 그리고 하늘과 땅이 생겨난 맨 처음. 세상이 열리던 그 신비로운 첫날의 모습이 저렇지 않았을까? 하늘과 땅이 산이라는 공간으로 경계가 무뎌지면서 하나로 뭉개진, 사람의 힘이 미칠 수 없는 신기하고도 묘한 곳이었다.

거대한 자연을 바라보고 있자니 나의 존재가 참 작게 느껴졌다. 험한 산길을 걸으며 다리 아프다고 툴툴대다가, 숨 막히는 경치를 보며 환희에 절어있다가, 사소한 말씨름으로 금방 또 불만스럽다가, 그렇게 수많은 감정의 변화를 품은 채 나약한 몸뚱아리를 이끌고 오르내린 스노돈산은 나와는 다르게 무서우리만큼 굳건하고 묵직했다. 그 자체로 존재하는 자연은 놀라운 힘이 있다. 나의 삶을, 나의 하찮은 욕심과 요동치는 감정의 변화를 부끄럽게 만드는 힘. 한껏 나약한 인간의 삶으로 그리고 보잘것없는 미물로 금세 또 돌아올 테지만.. 잠시나마 깨닫고, 더 나은 내 모습을 그려보고, 또 삶의 의미를 묻는다.

웅장한 산속에서 티끌 같은 나의 존재를 확인하고 내가 작아짐으로 위안을 얻는다. 나의 보잘것없음을 깨닫는 것으로 내 삶이 편안해진다. 너무 욕심부리지 말자. 그냥 현재에 감사하고 성실하게 묵묵히 살아보자.

얼굴에 닿을 듯 눈앞에 아른거리는 구름을 헤치고 희미한 듯 강렬하게 또다시 제 자신을 웅대하게 드러낸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상태로, 늘 그렇듯 한 자리에 버티고 있는 그 모습 그대로. 그리곤 그 앞에 서있는 참으로 적나라한 모양의 나를 포근하게 에워싼다.


태초에 스노든이 계시니라. 감히 성경의 구절을 바꿔보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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