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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Sep 22. 2020

그리고 퀴랑(Quirang)에 서다.

5편 스코틀랜드에 서다.

#퀴랑(Quirang)

집 근처 언덕에서부터 피크디스트릭트, 스노우도니아, 글렌코 등 코로나가 이끈 산으로의 여행은 놀라운 감흥을 가져다주었지만, 가끔은 자연이 주는 비슷비슷한 느낌 때문에 지루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죽하면 꼬맹이가 "우리는 도대체, 왜, 맨날! 산으로만 가요?"라며 뾰로통하게 불만을 표현했을까. 이번 스코틀랜드 여행 또한 산과 절벽, 언덕의 경치를 감상하는 일정을 주로 소화했기 때문에 나 역시 이젠 웬만한 풍경 따위는 놀랍지도 않을 것 같았다. "올드맨 오브 스토르"를 트레킹 한 후 곧바로 "퀴랑"으로 향했던 지라 몸도 지치고 감탄할 마음도 지쳐서 더욱더 기대감이 낮아진 상태였다.

그런데 "퀴랑"은 좀 특별했다. 방금 전까지 스코틀랜드의 백미는 "올드맨 오브 더 스토르"라고 남편과 신이 나서 이야기했는데, 이곳에 오자마자 "올드맨 오브 더 스토르"에 대한 마음을 접어버렸다. 스코틀랜드에 가면 꼭 "퀴랑"에 가야 한다. 거대한 능선은 초록 물결처럼 하늘을 향해 요동치고, 뿌옇게 휘몰아친 습한 안개와 구름은 비현실적인 풍경을 더욱 얼얼하게 만든다.

"퀴랑" 역시 "올드맨 오브 스토르"를 탄생시킨 트로터니쉬 산사태의 결과로 생성되었다고 한다. 고원에서 미끄러져 내려온 평평한 풀밭과 들쭉날쭉한 절벽, 우뚝 솟은 바위 봉우리, 그리고 먼발치에 보이는 잠잠한 호수는 숨이 턱턱 막히도록 독특한 질감을 만들어낸다. 지상의 혼란으로 만들어진 이곳은 딴 세상, 비현실적인, 드라마틱한, 이런 단어들과 어우러져 마치 마법의 영역에 온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아름다운 이곳을 두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오물신"이 떠오르는 것이 좀 아이러니했지만 "퀴랑"은 마치 거대한 액체괴물처럼 걸쭉한 액체가 흘러내려서 땅 아래 퍼지고, 흘러내림 속에서도 그 형체가 보존되어 흐느적하게 살아움직이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이 위대한 신의 모습과 그가 품고 있는 경치는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장관이다. 트레킹 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지만 굳이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찾아 나서지 않아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그저 푸른 잔디를 디디고 살아움직이는 "퀴랑"의 품 속에서 멍하게 시간을 보내도 한없이 놀랍고 또 놀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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