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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은 Nov 01. 2020

강과 구름 사이에 낭만이 흐른다.

6편 스코틀랜드에 서다.

스카이섬 포트리를 떠나 인버네스를 거쳐 숙소가 있는 세인트앤드루스까지, 오늘은 관광보다는 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이 길었던 여정이었다. 곳곳에 산재한 관광 포인트에 차를 세우고 잠시 산책을 하기도 했고, 털이 길게 늘어진 하일랜드 소를 찾느라 눈을 크게 뜨고 달리는 차창 밖을 내다보기도 했고, 네스호를 지나칠 때는 네시가 없다는 사실이 거짓으로 밝혀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괴한 생명체와 마주하길 바랬다. "이동"이라는 지루한 단어보다는 "드라이브"라는 로맨틱한 표현을 사용하고 싶을 만큼 경치가 참 근사했고 마음도 설렜다. 특히 아바타 촬영지처럼 사방이 무성한 숲으로 둘러싸인 환상적인 스코틀랜드의 A87도로와, 인버네스에서 세인트앤드루스로 향할 때 눈앞에 펼쳐진 노을은 무척 감미로웠다.


특별한 건축물 없이 그저 어마 무시한 자연 그대로의 경치가 기가 막혀서 틈틈이 차를 세우고 풍광을 즐기거나, 그때의 감흥이나 기분에 따라 즉흥적으로 계획된 일정을 변동시키면서 우리는 그렇게 자동차 여행이 주는 자유로움을 만끽한 채 드라이브를 즐겼다.


#에일린 도난 성(Eilean Donan)

인버네스로 향하는 길에 잠시 들른 에일린 도난 성. 호수로 둘러싸인 작은 돌섬 위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이 성은, 뺏기고 빼앗는 그리고 무너지고 복원되는 역사 속에서 현재와 같은 모습으로 자리 잡았다. 무채색의 멋스러운 느낌을 그림처럼 담아내고 있는 이곳을 바라보니 "낭만적인 폐허"라는 모순적인 단어가 떠올랐다. 영국의 침침한 날씨와 축축한 습지가 어우러져 스코틀랜드 특유의 쓸쓸한 감성이 마음 한켠을 스치고 지나갔다.


#네스 호(Loch Ness)

스코틀랜드 인버네스에 자리한 빽빽한 산림으로 둘러싸인 네스호는 깊이도 깊어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모든 호수를 합친 것보다 많은 양의 물을 함유하고 있다고 한다. 멀고 으슥한 물의 깊이 때문일까? 거대한 괴물 네시(Nessie) 살고 있다는 전설과 소문이 끊임없이 전해지는 이곳은, BBC  2년간에 걸친 수색 끝에 괴생명체가 없다는 공식적인 결론을 진작에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네시(Nessie)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역시  잠잠한 호숫가가 갑작스레 돌풍이 휘몰아치고 그 혼란한 틈 사이로 괴이한 생명체가 등장하는 망상에 한참을 잠겨있다가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발길을 돌렸다.


#인버네스

하일랜드의 대표 도시인 인버네스. 절벽 위에 앉아 네스강을 바라보고 있던 붉은색의 "인버네스 성"을 배경으로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인버네스 성"보다는 잔잔히 넘실대는 물결과 따뜻한 햇살이 어우러져 은은히 빛을 내고 있던 강물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아래로는 강이 흐르고 하늘에는 구름이 흐르고 그리고 그 사이 낭만도 흘렀다.

인버네스에는 흐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단출한 시가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그리그 스트리트 브리지(Greig St. Bridge)". 이 철제 현수교를 건널 때 느껴지는 예상치 못한 흔들림이 눈앞에 흐르는 많은 것들과 하늘을 향한 희망찬 첨탑과 어우러져 내 마음 역시 울렁대기 시작했다. 그리곤 물결처럼 넘실대는 이 다리에서 어린아이처럼 첨벙거리며 낭만의 세계에 또 빠져버린다. 관광객에게는 즐겁지만 사진작가로서는 좌절감을 준다는 이곳에서 나 역시 잠시 현실 세계로 돌아와 선명한 사진을 찍으려 애를 쓰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강 그리고 낭만, 이 두 개의 단어가 선명히 새겨지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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