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사 1개월 차.
생각해 보면 입사한 직후부터였다.
나를 전도하려던 전무에게서 벗어나지 못했다.
다른 직원 대부분은 그녀를 빨간펜선생이라고 부르며 모두가 적대적으로 대했지만,
이제 막 입사한 나는 그렇지 않아서였을까.
매일 아침 전무님 실에서 티타임을 가지며
전무님의 흘러 온 인생- 예를 들어 가족사, 결혼사, 아이 출생사를 들었다.
그 사이에 있던 역경들을 하느님이 보우하사 어떻게 해결했는지,
기도 끝에 어떻게 해결됐는지를 들으며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은덕임을 알아야만 했다.
중간중간 번뜩이는 그녀의 눈을 보며
방언이 터질까 조마조마했던 건 나였고
그런 안절부절못함을 보고 내가 넘어왔다 여긴 건 그녀였다.
2주 동안 전투적인 전도와 방어가 창과 방패처럼 오갔고,
3주 차부터는 조금 시드는가 했기에 그녀의 실패로 매듭 짓는가 싶었다.
그리고, 입사 3주 차부터 전무님은 나를 이전 대표에게 데려갔다.
아직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만 10번 정도 반복했을 뿐인데
정신 차리고 보니 이전 대표실 가운데에는 내가 앉아있고,
양 옆에 전무와 이전 대표가 앉은 채
나에게 고민을 토로하고 있었다.
주된 고민은, 이전 대표의 입지 상실.
듣자 하니 그렇다.
이전 대표는 원래 의료 쪽은 상상도 못 하던,
모 예술대학을 졸업해서 그림이나 만지고 영상이나 찍으며 가끔은 광고도 하고 전시도 하던,
그럼에도 먹고살기에 너무 부족함이 없는 금수저 태생이었단다.
그러다가 어떤 놈(?)에게 국가 과제 따기 좋은, 즉 국가 예산으로 사업하기 좋은 아이템이
VR과 의료기기라는 말을 들었고 그 꾀에 속아 의료기기로 업종을 변경했단다.
그 이후로 실제로 국가 과제가 뭐 작성만 하면 턱~ 턱~ 하고 붙어버려서
50억은 우습게 예산을 받았다고.
기분도 좋고 이런 횡재를 안겨준 어떤 놈에게 자문비를 비롯한 여러 방법으로 10억 가까이를 주고,
그 어떤 놈이 소개한 의사들이랑 친분도 쌓으며 한 사람당 2억씩 주고,
행사랍시고 중국, 미국, 유럽을 오가며 여행도 하고 아주 즐겁게 썼단다.
그러고 보니 아뿔싸,
국가 예산을 다 써버렸네?
이대로 이 꿀 아이템을 버릴 순 없고, 이제 투자로 방향을 틀어야 하는데
본인은 투자라고는 영 재능이 없고 투자 쪽으로는 인맥도 없어
또다시 그 어떤 놈에게 투자브로커를 소개 받아서 이 회사의 공동대표로 들여놨다고 한다.
원래는 사장정도만 해주려고 했는데
그날따라 투자브로커가 데려간 룸살롱도 너무 마음에 들었고 술도 취한 나머지,
투자브로커가 양 옆에 여자 두 명을 채우고 나 공동대표해 줘이 잉~~라고 함께 애교를 부리자
그만!
그 꾀에 또 속아 넘어가 공동대표를 시켜줬단다.
그리고 그 공동대표가 실제로 투자를 어마어마~하게 받아와서
참 공동대표 해주길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했단다.
그러고 이제 또 전과 같은 청사진만 그리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뿔싸.
믿는 도끼에 발이 찍히고 말아서 그만!
그 공동대표가 이제 의료기기 회사인데 영상이 뭐 그리 중요하냐며,
이 인력에 급여가 나가는 것보다 외주 맡기는 것이 훨씬 계산에 좋다며,
원래부터 함께 해왔던 대표의 직원들을 전원 해고 해버리자고 했단다.
자신의 오른팔과 왼팔을 잘라 어떻게 하려는거냐며 분노를 표하는 그의 이야기를 경청하다..
나는 보았다.
그의 미소를.
할렐루야.
하느님.
여기에 의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다가 있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