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윤 또는 채소김
비건 지향의 삶을 산다. 여기서 ‘비건’은 동물을 먹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동물(비-인간)의 슬픔과 억압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을 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교육노동자로서 삶의 패턴은 방학과 비-방학으로 나뉜다. 이를 앞서 말한 비건 지향의 삶과 교육노동자로서 삶의 패턴을 연결 지으면 방학 때는 비건이다가, 비-방학 때는 비건 지향, 어쩌면 그냥 논 비건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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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비-방학, 실제적인 노동을 하고 방학보다 더 일상적이어야 할 시기에는 비건에 실패할까. 두 가지 이유가 떠오른다. 첫째, 과자 때문이다. 과자를 너무 좋아한다. 나는 헤비간식러이다. 특히 모니터 앞에 앉아서 ‘이러려고 교사된 게 아닌데’하는 일들을 할 때 나는 처절하게 간식이 필요하다. 간식 중독이다 싶을 정도로 끊임없이 입 속에 무언가를 넣어야 한다. 이러한 나를 더욱 주체할 수 없게 하는 시간은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고, 홀로 남은 교실에서의 시간이다. 왜인지 모르는 허기에 연구실에 비치된 과자들을 하나씩 하나씩 가지고는 교실로 온다. 한 봉지를 까서 먹는다. 금세 사라지는 달콤함과 솟구치는 달콤함에 대한 욕구. 또 연구실로 향한다. 또 사라져 버린다. 그렇게 왔다 갔다 하면서 미루고팠던 업무들을 해치우고 나면, 언제 뜯었는지도 모른 채 쌓인 봉지들이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오늘도 타자와의 새로운 관계에 대한 의지는 -나를 매번 타자로 만들어버리는-무의미한 공문들을 이기지 못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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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선택할 수 없는 관계 때문이다. 직업은 선택할 수 있지만, 그 직업의 공간과 함께하는 사람들을 선택할 수는 없다. 어느새 본인이 선택하지 않은 관계들에 둘러싸여 7일 중 5일을 보내고, 하루의 3분의 1을 보내야 한다. 랜덤으로 주어진 관계에서는 대화 또한 랜덤이다. 그런데 그 랜덤에는 생각했던 거보다도 더 많은 ‘꽝’들이 활개 한다. 이를테면, “나는 참새도 먹을 수 있어.”라던지, “뼈 해장국 먹고 싶은데..(비건인 나를 바라보며) 해장국에 있는 우거지 먹으면 안 돼?”라던지. 무자비한 대화와 관계들 속에서 조금이나마 무사히 버텨내려면 무뎌짐과 분리이라는 지혜가 필요하다. 흘려듣는 척 또는 분위기 맞춰 웃어넘길 수 있는 무뎌짐이 필요하다. ‘화자’와 화자의 ‘말’을 분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말에는 분노하되, 사람은 소중히 바라보는 그런 노력. 수양이 부족하다. 그 자리에서는 어설프게 웃고는, 집에 와서 분노하고 그 사람을 한없이 미워한 적이 많다.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다. 내가 선택하지 않은 관계들 속에서 ‘인싸’는 아니어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적어도 미워하지는 않는 관계를 만드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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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언제까지 환경 탓만 할 수는 없다. 주어진 공간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힐 수 있다. 다시 다짐해본다. 5일 중 3일은 연구실 과자 안 먹기. 이번 주는 이틀 남았다. 이틀은 꼭 이 다짐을 실천할 테야. 더불어 선택하지 않은 관계를 주체적인 관계로 바꿔볼 수 있는 비건적 대화를 시도해보기. 어쩌면 선택하지 않은 관계들은 블루오션 일지 모르니까. 선택하지 않는 관계에서 새로운 연결고리를 만들어보는 것. 비건적 삶으로 또 한 걸음 내디뎌보기로, 소소한 다짐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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