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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오라비행 Aug 03. 2019

나의 소울푸드, 국수

수요윤 또는 채소김


 국수에 관한 기억 1. 내가 나의 보호자를 내 머릿속에 형상화할 수 있었을 때부터, 우리 가족이 매주 주말마다 가는 바지락 칼국수 가게가 있었다. 매번 그 집에 갔던 이유는 바지락이 크다는 이유였다. 그때는 보호자의 취향이 절대적으로 옳은 거라고 믿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다는 건, 그냥 좋았다. 그래서 바지락 칼국수가 좋았다. 큰 사발에 나오는 칼국수를 작은 접시에 옮겨 담아서 호로록호로록 먹었던 매주 주말이 떠오른다. 어떤 특별한 이야기나 사건은 없다. 직접 밀고, 말고, 자른 면이라 면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았다는 것, 뽀얀 국물을 마실 때면 국물이 내 목을 천천히 지나가며 따뜻하게 해 주었다는 것, 국숫집 사장님과 소담 소담 매주의 일상을 나누시던 보호자의 모습 정도. 그렇게 칼국수 가게 나들이는 주말의 일상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엔가 다시 주말이 왔고 우리는 늘 그렇듯 국수 가게에 갔다. 하지만 가게는 문을 닫았고, 그다음 주에도 그 후에도 계속 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공유했던 주말의 일상은 사뭇 달라졌다. 종종 다른 국수 가게에도 찾아가 보았지만, 매주 가는 특정한 장소는 더 이상 없었다.

 국수에 관한 기억 2. 나의 보호자는 잔치 국수에 대한 자부심이 있으시다. 자부심의 근거는 바로 국물이다. 국수 국물을 낼 때 온갖 야채들과 멸치를 넣으시고는 오랫동안 팔팔 끓여서 국물 맛을 내신다. 특히 없어서는 안 되는 칼칼한 맛을 위해 꼭 청양고추를 넣으신다. 더불어 국물요리에 대한 암묵적 철칙이 있는데, 국물은 깔끔하고 맑아야 한다는 것이다. 빨간색이 우러나오는 물질은 넣지 않으신단다. 이를테면 홍고추나 고춧가루. 그래서인지 하나도 매워 보이지 않는 우리 집 국수는 늘 예상치 못한 매콤한 매력이 있다. 얇은 국수면을 여러 가닥 집어 숟가락 위에 돌돌 말아 올리고, 국물에 살짝 담가 국물이 숟가락에 자작하게 적셔지도록 해서 먹으면, 온기와 칼칼함이 입에 감돈다. 오늘같이 마음이 답답하고, 얼어붙는 날에는 실한 야채들과 청양고추를 우린 잔치국수가 먹고 싶어 진다.

 국수에 관한 기억 3. 나의 보호자는 콩국수를 참 좋아하신다. 여름이면 콩국수는 무조건 당연히 먹어야 하는 계적 음식이다. 그리고 콩국수를 드실 때면 꼭 말씀하신다. “콩국수는 얼음 없이, 소금 없이 먹어야 해. 그래야 콩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제대로 된 콩국 수지.” 제대로 된 콩국수는 뭐고, 제대로 안 된 콩국수는 뭐란 말인가. 날이 너무 더우면 얼음을 넣을 수도 있고, 간을 좀 넣고 싶으면 소금도 넣을 수 있는 거 아닌가. 자기 먹고 싶은 대로 먹으면 되는 걸 괜히 ‘제대로 된’ 콩국수니 ‘제대로 안 된’ 콩국수 운운하시니, 불편하다. 난 내가 먹고 싶은 대로 먹을 거다. 내가 좋아하는 콩국수는 얼음 없이, 소금 없이 먹는 콩국수다. 이렇게 먹어야  콩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거 같다. 가족과 콩국수 한 사발 할 계절도 이제 코앞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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