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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룬 May 27. 2024

어른의 영어

교과목 영어에서 나만의 영어까지.


   초보 강사 시절의 일입니다.

아직 학원이 분주해지기 전,  수업 준비도 하고 음악도 들으며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던 어느 오전에 학원 문이 빼꼼 열리더니 할머니 세 분이 들어오셨습니다.

여기가 바로 영어 학원이냐 물으시던 그분들은 큰길 건너의 특수학교의 어르신 반 학생들이셨습니다. 학교에서 배우는 영어 수업이 제법 어렵고, 복습하는 방법도 잘 모르겠는 데다, 시험도 본다는데 걱정이 너무 된다셨죠. 손주들이 이럴 때 학원을 다니는 게 아닐까 하며 용기를 내어 학원을 찾아오신 것입니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잘하고 싶다시면서요.

비공식적으로 주 2회 중학교 1학년 과정의 오전반이 생겼습니다.

학생들끼리 정한 조건은 ‘70세 이상, 지각 결석 및 불평을 하지 않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음’이었습니다. 약속을 단단히 한 여덟 명의 학생은 이후 6개월간 빠지지 않고 수업을 들으셨습니다. 중학교 과정이었으나 수업은 알파벳, 단어, 문장의 반복 쓰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열 번을 쓰자 하면, 손이 굳은 학생들의 수업 시간이 다 끝나버리곤 해 반은 쓰고 나머지는 숙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대답을 잘하는 학생도 있었지만, 대답을 놓치고는 내내 화를 내는 학생도 있었습니다. 서툴기가 다를 바 없지만 꼬박꼬박 선생님하고 부르시며 그렇게나 조심스러워하셨고요. 시험을 잘 보고 싶은 마음이 다섯 번이 훌쩍 넘는 과제물에 충분히 담겼습니다. 하지만 과제나 시험 결과와는 상관없이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 그 자체가 즐거워 보였습니다. 오늘 배운 문장이 내일이면 잊히지만, ‘오늘도 배웠다’는 사실에 즐거워하고 아쉬움 없이 뿌듯해하던 학생들이었습니다.  


   입시생 신분을 졸업하고도 각종 시험을 대비하느라 정신없이 영어 책을 쌓는 모습이 대부분의 현실이지만, 잠시 숨을 고르자며 멀리 있던 이야기를 떠올립니다.  


   분명한 사실은, 어른이 되면 훨씬 더 재미있게 영어를 공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미’가 가능해지는 이유는 목표, 공부 방법, 교재를 자신의 마음에 들게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그 선택 중에는 잘하지 않아도 된다, 안 해도 된다가 있을 수도 있겠고요.


   그래서 학교를 다니는 동안의 공부가 그렇게도 힘든지도 모르겠습니다.  

학생 아닌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그저 그 시기엔 공부만 하면 된다 말하지만, 애초에 그 공부라는 미션은 선택하지 않았는데 눈앞에 놓인 것이니까요. 해야 돼서 하게 되는 일은 귀찮고 싫고 어렵습니다.

   다만 지금 당장 아쉬운 제도를, 세상을 뒤집을 수 없으니 학생들은 일단 바꿀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봅니다.

  주어진 공부를 하는 과정이라도 학생의 의사가, 개인의 선택을 담을 수 있길 바랍니다.

배움은 인간을 성장하게 하고, 영어는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가는 도구임이 확실합니다. 자신의 뜻을 더하는 이 단순한 성의는 공부를 복잡한 목표이기보다 가치 있는 동기가 되도록 할 것입니다. 날마다 문장을 반복해서 쓰던 할머니 학생들처럼, 오늘의 배움이 신나고 뿌듯하게 느껴지는 공부를 모두가 하게 되길 바랍니다.


   영어는, 유난히 유창함을 기대받는 영역이고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그 쓰임이 끝나지 않으니 오히려 시작이 더 어렵게 보이는지도 모릅니다. 그럴 때는 무겁지 않게 교과목의 하나인 영어로 출발하면 됩니다. 수학이나 과학처럼 배우고 익히며, 필요한 학습을 해내고, 목표한 점수를 받는 경험을 쌓길 바랍니다. 단어를 외우고, 영어 지문을 읽어내는 동안 영어 공부? 하던 대로 해보자는 담담한 마인드가 자라날 것입니다.  영어 과목을 공부하다가 외국어로서의 영어에 대한 관심이 늘 수도, 새 언어를 배우며  낯선 문화에 대한 호기심이 일어날 수도, 영어 아닌 다른 언어를 공부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상하지 못한, 기대하지 않던 방향으로 배움은 확장될 것입니다.

   

   어른이라면, 학창 시절 철저히 외면했던 그 영어를 다시 공부하고 싶다면, 지금껏 피해왔건만 먹고살기 위해 더 이상 숨을 수 없게 되었다면, 남들 다 하는 그 공부 나도 한 번 해볼까 싶다면, 아이에게만 하라고 하지 말고 나도 해볼까 싶다면! 지금 서점으로 가 마음에 드는 중학생 교재를 사서 시작하십시오. 어른의 이해력은 학생의 이해력보다 훨씬 폭이 넓어 분명 그때보다 수월할 것입니다.  하루 다섯 개씩 단어를 외우기 시작하되, 어른답게 성실하게 공부합니다. 교재 한 권을 끝내고, 다음 교재로 넘어가면 됩니다. 그저 생각하기를 미루지 않고, 깊어지기를 두려워 말고, 반복하기를 즐기시길 바랍니다. 6년 아닌, 6개월 만에 영어 공부다운 공부를 하고 있을 테니까요. 거기까지 갔다면 그다음은, 더욱 유창해지거나 대단해지거나 이쯤이면 되었거나 다른 언어를 만나 다시 처음이 되거나 하겠죠. 어떤 모습이든 당신의 선택이 이뤄낸 결과일 것입니다.  


어른인 여러분의 선택으로 즐거운 공부가 지속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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