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쭌쭌이 Feb 16. 2021

영어, 정말로 완벽해야 할까?

영어로 압박감을 받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어를 잘한다’의 기준은 무엇일까?


물론 이것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 그리고 더 나아가 내가 만난 대부분의 한국인이 생각하는 기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면 ‘원어민급으로 영어를 잘한다’가 영어를 잘하는지, 못 하는지에 대한 기준이 되는 거 같다. 심지어 내가 아는 지인 중에서는 영어를 막힘없이 잘하는 편인데도 자꾸만 본인이 영어를 못한다고 질책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한국인들이 느끼는 영어 부담감은 많이 큰 편이라고 조심스레 덧붙일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런 압박감에 시달리는 것일까. 조금만 깊이 생각해 봐도 답은 쉽게 찾을 수 있다. 지하철 역 광고, 인터넷 광고, 혹은 서점에 진열된 베스트셀링 영어 회화 서적을 보면 모두 한결같이 강조하는 게 있다. 광고 문구나 책 제목을 살짝 훑어보기만 해도 ‘원어민과 함께 배우는 영어’, ‘미국인들이 쓰는 진정한 영어’, ‘원어민처럼 발음하기’, 등 영어를 원어민처럼 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문구가 대다수다. 심지어 이런 광고들 중 일부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영미권 원어민이 직접 나서서 광고하기도 한다.


우리가 영어를 원어민처럼 해야 한다는 압박은 앞서 언급한 광고 문구나 책 제목에서만 오는 것도 아니다. 어릴 때부터 주변 어른들로부터 들은 말도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때로는 친구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오는 압박도 있다. 아무리 중고등학교 때 영어는 문법과 독해 위주로 배운다고 하지만 그렇게 공부를 하면서 다들 한 번쯤은 언젠가는 ‘진짜’ 영어를 해야 하고, 지금 배우고 있는 영어가 나중에 회화를 할 때 크게 방해가 될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을 것이다.


타일러가 광고하는 영어 강의. 이 말고도 '진짜' 영어를 강조하는 광고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정말로 영어를 제1언어처럼 구사하는 게 필수적일까? 사실 따지고 보면 한국은 영미권 나라도 아닌 데다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모국어로 쓰는 한국어도 영어와는 괴리감이 너무 큰 언어인데 말이다. 영어 발음이 완벽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사람들은 종종 외국인들과 소통을 잘해야 하기 때문에 영어 발음이 원어민 같아야 한다고 말을 한다. 이 사람들은 또한 만약 한국식 발음이 묻어나는 영어를 구사하게 되면 알아들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도 하며 괜히 초보자들에게 겁을 줄 때도 있다.


물론 영어 발음이 좋다면 외국인들과 소통을 하는데 지장이 덜 가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발음이 원어민 같아야 한다고 하는 주장에는 의의를 제기하고 싶다. 만약 영어 발음을 완벽히 하는 것의 진정한 목표가 커뮤니케이션 때문이라면 굳이 발음이 원어민 같지 않더라도 원어민과 어느 정도 대화가 가능하다.


당장 우리에게 익숙한 한국어를 예로 들자면 요즘 한국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나고 있고, 한국에 살고 있는 외국인도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그리고 이들 중에서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도 발음이 정말 한국인 같은 사람을 찾아보기엔 힘들다. 이건 역으로 말하면 우리가 외국인들과 한국어로 대화를 할 때 웬만한 건 다 알아듣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우리가 구사하는 영어가 원어민 영어랑 괴리감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어민들은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웬만큼은 다 알아들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진짜 목적은 영미권 원어민들 뿐만 아니라 지구촌 곳곳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영미권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온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다 보면 대부분은 영어에 모국어 악센트가 어느 정도는 묻어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인의 ‘영어를 잘한다’의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친다. 우리가 생각하는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발음도 영미권 (주로 미국) 원어민과 거의 똑같은 수준이어야 하고, 쓰는 표현도 실제로 영미권에서 쓰는 표현을 써야 하고 단어나 문법에서도 막히면 안 된다. 무엇보다도 말을 할 때 조금이라도 버벅거리면 바로 탈락이다.


교보문고 강남점 영어 학습 서적 코너.


그러나 내가 프랑스에서 만났던 외국인 친구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거 같지 않았다. 오히려 영어를 할 때 발음도 완벽하지 않고, 가끔씩 모국어 단어를 섞어서 말해도 영어를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나름대로 영어를 술술 구사해 나갔다. 심지어 한국 기준으로 이 ‘영어를 못하는’ 친구들 중 일부는 본인이 바이링구얼(이중언어구사자)라고 소개를 하고 다니곤 했다. 내가 한국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모국어가 한국어이고, 제2언어 (혹은 제1외국어)가 영어라고 소개했던 것이랑은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본인이 바이링구얼이라고 하는 친구들 중 절대다수는 모국어가 영어랑 공통점이 꽤 많이 있는 언어였다. 한 마디로 말해 한국인들은 모국어가 영어랑 접점이 거의 없는데도 너무나도 쉽게 영어를 못한다고 질책을 하는데, 유럽 친구들은 모국어가 영어랑 접점이 많이 있는데도 영어를 원어민처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사실상 없었고 본인이 바이링구얼이라고 자랑스레 여겼다. 그만큼 우리도 ‘영어를 잘한다’의 기준을 낮춰도 크게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영어 학원을 가면 영어를 잘해야 하는 진짜 목적은 공인 시험 점수를 잘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의사소통을 잘해야 하기 위해서라는 마케팅을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이 말은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 발음이나 표현 등이 원어민과 똑같아야 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이렇게 기준을 높게 잡다 보면 영어를 할 때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회화 연습도 덜 하게 돼서 영어 실력이 점점 더 떨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것이다. 차라리 영어를 진짜로 잘하고 싶다면 목표를 높게 잡지 말고 조금 낮춰 보자. 그래야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영어를 익히는 데 더 도움이 될 것이고, 더 나아가 외국인들과 영어로 대화를 하면서도 자신감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나만의 축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