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홀로 맞이해야 했던 한국 공휴일들
지금은 너무나도 머나먼 옛날이야기 같지만, 2년 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을 가는 게 더 쉽고, 교환학생이나 워킹 홀리데이 등 해외 체류를 결심할 때도 비교적 덜 망설이고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글쓴이는 바로 그때 8월 한 달간 유럽 여행을 다녔고, 9월부터 그 이듬해 1월까지는 교환학생 때문에 프랑스 파리에 머물며 지냈다. 외국 문화를 직접 접해 볼 수 있었던 이 시기에는 내가 익숙했던 문화와 전혀 다른 문화에 대해 알게 되면서 신기해했지만, 생각해 보면 외국 문화의 다른 점을 알게 될 때마다 내가 결국에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기억했던 거 같다.
이 글을 쓰면서는 내가 재작년에 유럽에 있을 때 썼던 달력 앱을 보고 있다. 달력 앱을 보면서 깨달은 거지만, 여행을 다니면서, 그리고 교환학생의 신분으로 지내면서 맞이한 한국 특유의 공휴일과 명절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 우선은 8월 15일에 맞이한 광복절이 있다. 이날 아침 나는 유럽 여행을 다니면서 영국 런던에서 벨기에 브뤼셀로 가기 위해 유로스타를 친구랑 함께 타고 있었다. 유럽에 있는 동안은 이 날이 내가 처음으로 공휴일에 길거리에서 태극기를 보지 못하던 날이었다. 한편으로는 어색했고, 한편으로는 내가 정말로 한국을 벗어났다는 게 다시 한번 실감이 나기도 했다. 그러나 광복절은 항상 방학 때 맞이해서 원래 한국에 있을 때도 별 다른 점을 못 느끼기도 했고, 다른 도시로 이동을 하는 날이라 정신이 없어서 크게 신경 쓸 겨를이 없기도 했다.
그다음으로 유럽에서 맞이한 한국 명절은 추석 연휴였다. 이때는 SNS 등을 통해서 추석 연휴 때문에 고향에 내려간 사람들이 불평하는 글을 올린 것을 많이 봐서 그런지 런던과 벨기에에서 광복절을 맞이하던 때보다는 확실히 더 실감이 많이 났다. 그리고 아마 이때 유럽에서 처음으로 일종의 허전함을 느꼈던 거 같다. 한국의 2대 명절 중 하나인 추석 때 가족들이랑 같이 있는 게 아니기도 했고, 한국에 있었다면 텔레비전에서 계속해서 추석에 대한 소식을 틀어줬을 텐데 프랑스에선 (너무나도 당연하게) 추석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어서 내가 더더욱 다른 환경에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이때는 같이 교환을 갔던 가장 친한 친구랑 루브르 박물관도 구경 가고 H&M에서 옷 쇼핑도 했다. 물론 친한 친구와 함께해서 외롭진 않고 오히려 즐거웠다. 하지만 뭔가 허전한 건 여전했고, 루브르 박물관을 갔을 때도, 그리고 H&M을 갔을 때도 입구에 연휴 기간 동안 변경되는 운영 시간에 대한 공지가 안 보여서 한국에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시간이 많이 흘러 새해가 지나 1월 말이 되었고, 자연스레 외국에서 맞이하는 첫 설날도 찾아왔다. 이때는 같이 교환을 왔던 한국인 학생들도 다 돌아가 있었고, 나도 한국 땅을 안 밟은 지 반년이나 지나 있었다. 게다가 나를 맨날 놀리는 동생은 이때쯤 또 전화를 걸어 설날 용돈을 많이 받았다고 자랑했다. 용돈을 많이 받았다는 뜻은 다르게 이야기하면 친척들을 다 만났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자리에 동생은 있었고, 나는 없었다는 뜻이 되기도 한다. 동생 전화는 웃으면서 받았지만, 이미 머릿속에서는 이 사실들을 곱씹고 있었다. 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외로움은 더 커져만 갔고, 한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도 덩달아서 더 켜졌다. 10월 초에 나 혼자서 개천절과 한글날을 맞이한 것과는 또 다른 감정이었고, 설 연휴 기간에 외국 친구들이랑 같이 백화점 구경을 해도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었다.
오늘은 벌써 프랑스에서 돌아온 지 1년이 조금 넘는 날이다. 게다가 이번 주에는 설 연휴가 끼어 있기도 하다. 1년 전의 나와는 달리 현재의 나는 설 연휴를 한국에서 맞이하고, 방역 수칙을 지키며 조금 다른 설날을 맞이할 예정이다. 방역 수칙을 지켜야 한다는 점은 많이 다르지만, 적어도 가족들 옆에서 설을 맞이할 수 있다. 올해 맞이하는 설날은 작년과 달리 주변 곳곳에서 다 이야기를 해대서 더 피부로 느낄 수 있는데, 내가 작년 이맘때쯤 놓쳤던 이 감정이 무엇일지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