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꿈에서 종이를 열 번 접었다
구불구불 종이를 펼치면
방에 홀로 남아
접었다 편 종이의
반듯한 주름이 떠오른다
어제는 금요일이고
엊그제는 목요일
내일은 일요일
이번 주는 꼭 산책을 가야지
도착 예정인 택배를 받아
새로 산 티셔츠를 입은 나는
공원의 풍경이 된다
10대 때의 일이다
동묘시장에서 가득 쌓인 옷가지들 속에서
마음에 쏙 드는 티셔츠를 발견했는데
누구도 찾지 못하게 구석에 구겨 넣은 적 있다
너무 낡은 티셔츠
나만 알지만 나도 모르는 빈티지
왜 그랬을까?
지나온 길은 돌아보면 참 그림 같은 풍경인데
공원에서는 누군가가 누구와 누구를 말리고 있다
“반말은 하지 맙시다.”
바둑판이 엎어지고
검은 돌과 흰 돌이 빗발친다
바닥은 그림자놀이를 하는 것 같고
누가 침을 뱉으면 침 묻은 그림자
누가 넘어지면 그림자는 납작 엎드린다
“괜찮아요?” 한수 물러난 그림자에게
가만히 손을 건네면
저녁은 붓 칠이 끝난 물통 속으로 물들어 간다
어둑해진 복도는 귀가하는 이에게
접힌 마음을 쥐어준다
복도의 센서등이 꺼질 때마다
함께 사라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접었다 편 마음의 주름을 매만지면서
돌아보면
저 멀리 켜지는 센서등 하나
조용히 어두워진 복도에
프레임으로 남겨진 나는
반듯한 주름을 따라서 종이를 접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