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거스 Dec 21. 2022

인터넷 벤처와 성인오락실을 거쳐

휴학이 답이었을까

  2학년 1학기가 시작됨과 동시에 현실이 시궁창 같다는 기분이 계속되었다. 전공교과목에 적응할 수 없었던 거다. 나는 이과 출신인데 이과 수업을 듣지 못하는 상황이라니. 수업에 집중할 수도 없었고, 그런 게 다 부질없이 느껴지기도 했다. 도저히 학교를 다닐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재수를 하던, 전과를 하던, 빨리 벗어날 방법을 찾다가 일단 휴학을 먼저 해보기로 했다. 

  사실 이때 9살 난 사촌동생의 갑작스러운 죽음 때문에 세상이 더 비관적으로 보였다. 그때 나는 셀로판지 같은 정신력의 소유자였다. 바스락거리고, 투명하고, 얇고, 쉽게 구겨져 자국이 남는 셀로판지 말이다.  

    

  2000년대에는 닷컴과 벤처 붐이 일었다. 휴학하고 처음 한 건 구직사이트를 뒤지는 거였다. 배우고 일하며 돈도 벌 수 있는 곳을 찾고 싶었는데, 그때 홈페이지를 만들던 작은 벤처기업에서 면접을 보고 일하게 되었다. 누구 하나 일을 가르쳐줄 사람 없이 진짜 스스로 공부해서 일을 해나가야 했다. 이십 대 중반의 사장님은 열심히 영업을 뛰며 홈페이지 작업을 수주해 왔고, 내부에서 디자인팀과 프로그램팀이 홈페이지를 제작했다. 스스로 알아가야 한다는 건 둘째 치고, 그곳은 직장치고 돈이 안 되었다. 전포동에서 사직동까지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고, 점심은 회사에서 다 같이 차려먹는 식이었다. 화장실 한편에 만들어둔 간이 싱크대에서 식기류를 씻어야 할 정도로 환경은 열악했다. 

  직원과 사장 모두 20대라는 점에서 그 시대를 상징하는 면도 있었지만, 그 이면에 작은 회사들이 그렇듯 임금은 짜고 체계도 없고 복지는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사장님도 시행착오 중이었고, 우리 모두 시행착오 중이었다.


  일단 돈을 많이 벌고 싶었던 내가 그다음 찾아낸 일자리는 주야로 교대근무 하는 오락실이었다. 남포동 뒷골목 지하에 자리한 그곳은 점잖게 성인오락실이라고 불리는 어두운 형님들의 세계였다. 찐 조폭 아재들이 거기 있었다. 지금까지 만나온 사람들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의 인간군상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도박을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광범위하다는 것도 놀라웠다. 자갈치시장에서 새벽부터 생선 날라 번 돈을 가지고 바로 오락실로 퇴근하는 사람이 있었고, 아침 산책 나와서 들르고 저녁 퇴근하며 들르고 출퇴근 도장 찍는 할아버지(그 할아버지는 진짜 도덕선생님 같이 생긴 분이었다)도 있었다. 저녁 약속시간이 애매하게 남아서 들렀다가, 한방 터지는 바람에 자리를 못 뜨고, 아내와 아이들이 기다리다가 결국 오락실로 찾으러 왔는데도, 그 자리를 못 비우고 가족들을 돌려보낸 가장도 있었다. 밤이건 낮이건 오락실에 사는 죽돌이, 죽순이들이 있었는데 자기들끼리 어느 자리가 좋은지 정보를 교환하거나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매일매일 오락기를 당기러 왔다. 김밥과 생과일주스 같은 걸 시켜 먹으며 죽치고 있는 게 일인데, 잘 터지는 기계에 그들끼리 자기들만이 아는 표식을 해둔다고 했는데, 아무 의미 없는 짓이었다. 오락기는 겉 껍데기는 그대로 두고, 속 알맹이를 통째로 바꾸는 구조라서, 게임을 하러 온 사람들은 절대 이길 수 없는 구조다. 한방씩 터지게 하는 것도 다 미끼다. 돈은 도박장만 버는 것이란 걸 알았다. 

  그때 부장님이 니 이름 낯익다며, 내가 따먹으려다가 못 따먹은 아가씨 이름이 oo이었다고 했다. 그런 표현이 자연스러운 곳이었다. 같이 아르바이트하던 부산대 오빠는 돈이 된다며 학비 충분히 벌어서 나갈 수 있다고 계속 같이 일해보자고 했으나, 나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평발인 발바닥은 타들어 가는 거 같았고, 담배연기로 숨은 쉬기 힘들었다. 

  지하 오락실의 자욱한 담배연기보다 더 힘들었던 건, 이렇게 살아서 희망이 있을까, 희망이 없는 게 아닐까, 내가 이걸 해서 뭐 해, 돈 많이 벌어서 뭐 해, 그런 회의감과 절망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용역과 파견은 우리를 어떻게 착취하고 있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