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거스 Jan 03. 2023

아침 8시부터 밤 11시까지

나의 근무시간

  몇 곳의 직장과 아르바이트를 거쳐, 일도 적당하고 월급도 적당한 곳을 찾기로 했다. 차비가 들지 않게 집 가까운 회사를 알아봤고, 한 소기업에 취직했다. 그 회사는 배관에 쓰는 다양한 밸브들을 조립·판매하는 소규모 공장이었다. 고졸 직원을 뽑고 있었기에, 나는 고졸이라고 했다. 따지고 보면 대학을 졸업한 건 아니니까.

  그 공장에서 경리업무를 하며, 틈틈이 부품을 조립했고, 필요할 때는 컴퓨터로 CAD 도면을 그렸다. 청소, 커피 타기, 소모품구매, 은행업무 등 온갖 잡다한 일도 물론 다 했다. 그곳에서 나는 ‘황 양’으로 불렸다.

  ROTC 출신 육군 대위로 전역한 사장님의 취미는 사냥이었다. 쉰이 넘었지만 젊음의 상징이던 지프차 코란도 밴을 세컨드카로 뽑아서 트렁크에는 큰 사냥개를 태우고 총을 쏘려 다니셨다. 또 다른 취미는 바이크 타기였는데, 날씨가 좋을 때는 국민경차 티코 네 대 가격의 일제 오토바이를 몰고 출퇴근하셨다. 잠깐 커피 한잔 하며 놀다 오는 곳은 OO은행 지점장실이었고, 조립할 일거리도 없는 날에 심심하다 싶으면 법원 경매로 나온 건물을 보러 나가곤 하셨다. 그분은 그때까지 내가 만났던 사람 중에 제일 부자였다.  

  공장 사무실은 층고가 높은 조립식 가건물이었는데, 출입문이 있는 벽 위쪽에 환풍기를 달아서 틀어두고 아무 데서나 실내흡연을 했다. 사장님은 담배 피우는 와중에도 입버릇처럼 ‘돈 아껴라’ 하셨다. 그러나 사장님 부인과 딸은 롯데백화점에 늘 쇼핑하러 다녔고, 카드명세서 청구금액이 수백만 원씩 나왔지만, 내 월급은 70만 원이었고 4대 보험은 가입해주지 않았다. 4대 보험은 돈 낭비일 뿐이니 병원비가 나오면 본인에게 청구하라고 했다.


  그 공장만 다녀서는 돈이 될 거 같지 않아 투잡을 뛰기로 결심하고 저녁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았다. 음악 사이트로 유명했던 ‘벅스 뮤직’에서 야간게시판관리자를 구하고 있었다. 본사가 부산 중심가 서면에 있었고, 낮에 일하던 곳은 전포동이라 걸어서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였다. 벤처기업에서 일한 경력 덕분에 면접 보고 바로 합격했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을 미리 말하고 양해를 구했고, 저녁 7시에서 11시까지 근무하기로 했다. 업무시간 외에 올라오는 문의에 답을 해주는 일이었다. 노래가사를 물어보는 사람도 있었고, 접속이 원활하지 않다고 항의하는 사람도 있었다. 대체로 정해진 답변으로 회신을 주면 되는 단순 업무였다.  

  그 벅스 뮤직 초창기 직원들은 오피스텔 한방에 매트를 깔아 두고 다 같이 이불 펴고 자는 방식으로 숙소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진짜 단체생활 그 자체였다. 사업을 시작하고 궤도에 오르려고 하는 단계이니 그 열악한 상황에도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예정에 없던 회식을 하는 날에는, 벅스뮤직 실장님한테 몰래 문자를 보내야 했다. 딱히 회식에 빠질 핑계가 없었기 때문이다. 투잡 뛰는 걸 알면 그 공장에서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장에 지각한 적이 딱 한번 있는데, 밤에 술 마시고 노느라 늦게 왔냐는 핀잔을 들었을 때 좀 억울하긴 했다. 내 딴에는 열심히 사느라 밤늦도록 일한 피로 때문에 그런 건데, 어쨌든 지각은 내 잘못 이니까. 아무 변명 못하고, 그냥 죄송합니다,라고만 했다.


  아침 8시 반부터 밤 11시까지 근 15시간을 일해도 내가 버는 돈은 110만 원 남짓이었다. 열심히 살아도 인생이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공장이든, 벤처기업이든 미래가 없어 보였다.

  앞으로 잘 살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까, 결국 학교로 돌아가서 졸업을 하고 제대로(?) 된 직장에 들어가야겠다고 결론 내렸다.

작가의 이전글 인터넷 벤처와 성인오락실을 거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