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전부터 동네 화실에서 그림을 배우다가 올해부터 혼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그림이 쌓이니 전시가 하고 싶어졌어요. 제 그림들을 모아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작업노트와 전시기획서를 써서 갤러리 한 곳에 투고 메일을 보냈습니다. 비전공자이지만 그림을 좋아합니다. 그림그리기는 .. 상처를 회복하는 데에 도움을 주고, 내 내면과 이상향과 내가 바라는 사랑의 모습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저를 건강한 방식으로 사랑해주고 지지해주시는 저의 든든한 편들이 제 블로그를 구독하고 있기에 그 분들께 제 그림들 포트폴리오와 작업노트를 살짝 공개합니다. :D
*작업노트
저 개인의 인생과 자기 자신과 세상에 대한 통찰을 담았습니다. 가슴아픔, 자신감, 젊음과 늙음, 상처와 치유 그리고 회복, 사랑, 비정함과 냉정함, 거친 서정, 음악, 영화적인 장면과 순간들... 에 대해서 그렸습니다. 순수하게 자신에게 몰입할 수 있는 시간들을 가지며 무척 기뻤고 그림으로 나를 표현하면서 내 안에서 움트고 있는 감정과 사유 그리고 영혼을 성숙시켰던 것 같습니다.
모두 제 방의 제 책상 위에서 아크릴 과슈 물감으로 스케치북에 그린 작품들입니다. 거의 대부분 밤에 그려졌으며 음악을 들으며 힘을 받았습니다. 과감하고 번개에 맞은 듯한 발상을 놓치지 않고 그때 그때 구현해보려 노력하였습니다.
다음부터는 그림과 짤막한 그림 설명입니다.
1) A wife waiting her husband – 남편을 기다리며 단잠에 빠진 여자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려보았습니다. 소파를 푸른색으로 칠해서 정신적인 분위기를 유도하였어요.
2) Wildfires for next season – 다음 계절을 위한 들불, 이란 뜻으로 표면적인 뜻 그대로의 의미와 은유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집니다.
3) First Kiss with Vampire – 저의 중편소설 <으스스한 뱀파이어 자매 이야기>에서 스스로 영감을 받은 그림입니다. 칵테일의 이름이라던가 제품의 이름을 짓는 것에 흥미를 갖고 있습니다.
4) The Fasho – 그루비룸의 노래 “Fasho”를 듣다가, 한국호랑이의 전설에 이 노래를 접목시켜 보았습니다. 지금은 멸종위기이거나 동물원에서 그 자유와 생명이 위기인 한국호랑이의 장엄함과 존엄성, 권위, 신비를 다시 부여해주고 싶었어요.
5) 죽음직전. (이탈리안식 죽음) - 코드쿤스트의 음악을 듣다가 영감을 받아 그려보았습니다. 비내리는 밤인데 눈 오는 밤 같기도 합니다. 저의 소설속 설정을 그려본 것인데 다른 풍경 같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입니다. 나일 수도 있고 관객일 수도 있습니다.
6) American History – 미국의 힙합 아티스트들의 역사를 tale(이야기)형식으로 풀어보았습니다.
7) Free – 저만의 캐딜락을 상상하며 그렸습니다. 제가 반한 뮤지션 드니 윌리엄스의 노래 “free”를 들으며 작업했어요. 나의 상상속에서 나는 미국 서부의 어느 도시에 있었고 잠깐 차를 세워 두었습니다. 가로등 불이 켜졌고 밤은 멋진 블루였습니다. 나는 혼자였습니다. 새로운 사랑으로 충만했고 그리운 것은 없었습니다.
8) American Eagle - Suddenly an image passes like a flash in my head. American Eagle. The first propaganda painting. I've been listening to a lot of American music recently and have been greatly influenced by it. The eagle's head was a bit big, but it seems to have been roughly implemented.
9) I Love You Forever – 유복하고 풍요로운 어떤 오후를 그려보았습니다.
10) Universe – 우주에도 리듬과 멜로디, 음악이 있지 않을까 상상하며 그린 그림이에요.
11) My favorite Jay Park - 제가 존경하는 뮤지션 박재범님을 그렸습니다. 그런데 영어단어 favorite 에서 e를 빠트렸네요. 영어공부 열심히 해야지. 허허.
그림을 그릴때 저는 블루라는 색을 좋아해요. 자연, 인간의 깊은 내면, 예술의 비탄과 서정을 담은 블루로 종이를 적실 때 가슴에 무언가 물밀듯이 밀려옵니다.
가톨릭 블루 (네이비색) 도 좋아해요. 그 격조높은 아름다움과 .. 높은 신분의 사랑 같은 느낌을 표현할 때 저는 행복한 것 같아요.
그림그리기와 글쓰기는 서로 다른 점과 닮은 점이 많은데요. 글쓰기는 뭔가 무뎌지지 않게 칼을 날렵하고 예리하게 만드는 작업같고, 그림그리기는 자기 내부의 본성을 표현하는 데에 철학적 지성만큼 감각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 같아요. 취향이란 말은 너무 소비자적이고 수동적이고, 저는 작가의 입장에서 생각해서 감각이란 말을 사용했는데요. 감각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길러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계속해서 단련시켜야 하는 소질인 듯 해요.
요 며칠전에 서울 종로에서 소설가 선배님들과 저녁식사를 하며 즐거웠는데요. 저는 작가 동료들만큼 화가 친구도 갖고 싶어서, 제가 알고 있던 화가 두분과 디자이너 한분께 "sunday pancake club"이란 창작자 모임을 함께 하자고 말했었어요. 서로에게 영감과 힘, 자극이 되는 관계가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그런데 이 모임이 결성이 안되서 아쉬워요. 저는 혼자 작업하는 개인플레이어(소설가로서 아마추어 화가로서) 이지만, 교류할 수 있는 창작자 동료가 필요해요. 흐엉.
객관적으로 저의 그림실력, 역량이 아마추어적이라서 갤러리랑 전시 계약까지는 못 맺을 것 같은데요. 취미로라도 그림그리기를 오래 이어가보고 싶어요. 시간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해서, 다양한 문화예술 관람 경험을 쌓기 보다, 문학과 그림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문학에서는 저는 아마추어는 더이상 아니고, 직업이 소설가니까 소설가로서 레벨업해서 뭔가 한국의 동세대 네임드 소설가들과 겨뤄보는게 목표이고요.
또, 저를 고통과 슬픔에서 구원하고 위로해줬고 창작의 영감이 되는 음악을 너무 좋아해서, 작사가로도 활동해보고 싶어요.
한 이주일 정도, 저를 "다양한 문화예술 경험을 하자" 하고 (엄청난 무지에서 나온 선의로) 권유하신 사람들이 많아서 괴로웠어요. 저는 ... 취미로 예술을 하는 사람이 아니고 작가인데, 되게 무례하구나 싶었어요. 왜냐면, 나라는 사람과 나의 인생을 그들의 뜻대로 조작하려는 것 같아서요. 예를 들면 나는 사과인데, 나를 똥으로 만들려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곤란했었어요. 근데 그 사람들 자체가 본인들이 되게 선하고 정의롭고 옳다고 생각해요. 이 사람들을 겪으면서 저는 종교적 맹신에서 빚어지는 무지에 충격을 받았고 동시에 어떤 깨달음을 얻었어요. (무지한) 선 속에 악이 있을 수도 있구나.
음, 이 사람들이 교회사람들인데요. 종교적으로 선입견은 가지지 않으려 생각하지만.. "일부" 개신교 사람들은, 정말 쉣더퍽인것 같아요. 지적으로 레벨이 너무 낮아요. 근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해서 "왜나면~" 이 말을 입에 달고 사시더라고요. 그런데 제가 마음이 약해서, 이 일부 개신교 인들이 가난한 사회적 약자 들도 있고, 진짜 본인들이 무례하고 무지하다는 걸 모르고 언행하는 것 같아서, 또 일부 개신교인들은 총명하고 자기 지성으로 생각하고 나를 놓아주려 해서, 이 교회사람들과 어울렸었어요. 근데 이제 안 다닐려고요. 서로에게 더 큰 괴로움이 되기 전에, 작별해야 맞는 것 같아요.
조금 더 설명을 해보자면, 저는 저의 작업을 하는 작가이고, 내가 좋아하는 좋은 사람과 사랑을 하고/받고 싶은 여자이고, 평준화 당하고 싶지 않은 성실하고 특별한 재능인데. 교회사람들이 바자회도 하고 백일장도 하고 치유농업 파티도 열고 하면서 너무 많은 것에 저라는 개인을 구조를 위해 희생시키려 해서 놀랐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어요. 아.. "선"이라는 것은, 어떤 말과 행동이 더 better, suitable한지 판단하는 지성이 없다면 악이 된다.. 성당은 그냥 성경공부하고 미사 보고 나면 흩어져서 자신의 인생을 살고 자기 가능성을 추구하고 고유성을 존중하거든요. 근데 교회는.. 너무 실망스러웠어요. 한국교회만 이런가? ㅠㅠ 내가 교회를 잘못 찾아와서 이상한 교회에 온건가 싶기도 했어요. 작고 소박한 사람들에게 애정과 연민을 느껴왔는데, 본인들의 지적 무례함을 인지못하고 저를 너무 상처줘서 ... 어디 말할 데도 없고 여기다가 끄적끄적 해봅니다. 제 기독교 동료가 왜 집단으로서의 교회를 경계하고 멀리하게 되었는지 이해하게 된 며칠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