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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클로이 Oct 30. 2022

네가 보디빌딩이라고?

나에게 보디빌딩을 권한 운동 모임 리더는 이전에 하던 일을 관두고 피트니스 쪽으로 아예  커리어를 바꾸는 전환기에 있는 듯 했다. 피트니스 관련 일을 조금씩 해왔지만, 정식으로 자신의 이름을 걸고 트레이닝을 시작하려고 보디빌딩 대회에 나갈 팀원을 찾고 있었다. 본인도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수상한 이력이 있지만, 피티 스튜디오를 열면서 ‘내가 키운 우승자 누구’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일테니 말이다. 그런 의미로 우리 운동 모임의 몇 명에게 보디빌딩 대회 준비를 권유했고, 그 중 나도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을 알게 된 후에도, 여전히 의아할 따름이었다. 


“이 그룹에서 운동을 제일 못하는 나에게 왜?” 


기분은 썩 나쁘지 않았지만 보디빌딩이라는 단어가 주는 생경함은 내게 물음표를 잔뜩 안겨줬다. 운동 관련 일을 하지 않는 일반인들이 ‘보디빌딩’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무엇이 떠오를까? 최소한 내게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는 우락부락한 근육을 가진 헐벗은 보디빌딩 선수들이었다. 그 뒤를 따라 아놀드 슈왈제네거 같은 인물도 떠오르고, 극단적인 운동과 식단 등 그 무엇하나 익숙하거나 만만해보이는 것은 없었다. 평소에 운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집이나 회사 근처 헬스장에서 보디빌더를 쉽게 만나보지는 못하니 말이다.  


생각해보겠다고 말했지만 그것은 거절에 가까운 ‘생각해볼게’ 였다. 보디빌딩은 정말로 나와  다른 세계의 이야기였으니까. 그 제안 직후 만난 친구들에게 이 이야기를 조잘대기 전까지는  말이다.


첫번째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보디빌딩 비키니 부문이면 섹시한 비키니입고 경쟁하는 거야? 와우!” 라며 반응을 보였다. 내게 보디빌딩 선수들은 그저 대단한 존재였지, 한번도 섹시하다는 시선으로 바라본 적은 없었다. 그렇기에 보디빌딩 선수, 또는 여성 비키니 선수를 조금은 야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에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보디빌딩이라는 것을 해낼 수 있을지 나의 신체적인 능력과 의지에 질문을 던지고 있던 차에, 친구의 반응은 당혹스럽고 조금은 언짢기까지 했다. 한참 후에 ‘피트니스 무대의 성 상품화 논란’ 같은 기사를 접하고나서 내가 생각하는 보디빌딩의 이미지와 그가 떠올린 이미지 사이의 갭을 이해했지만 말이다. 선수들이 어떻게 훈련하는지 보지 못하고 특정한 무대에서의 결과물만 봤던 관객 입장에서는 그런 식으로 볼 수도 있겠다고 느꼈다. 


두번째 친구에게는 쟈니 덤플링 에서 만두를 먹으면서 이야기했다. “하하. 너처럼 먹는 거 좋아하는 애가 보디빌딩이라고?” 친구는 그 무슨 실없는 농담이냐 듯 얼른 더 먹으라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친구는 내가 대회에 정말 나간다고 할 때까지도 운동 모임 리더가 입에 발린 말을 해준거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고민할 가치가 없는 질문인것처럼 무심한 친구의 반응에 순간 울컥했다. 


친구들이 “보디빌딩? 그거 너무 힘들지 않을까?”라고 조금은 부정적이지만 진지하게 고려했다면 "아무래도 그렇지? 내가 트레이너도 아니고. 하하 역시 못한다고 말해야지." 하면서 동조하고 말았을테다. 하지만 하필 너무 솔직한 친구들에게만 말한 탓일까. 예상과는 다른 반응들에 조금 발끈했다. 


내 자신은 ‘잘한다잘한다’ 해줘야 힘을 얻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순간만큼은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했다. 아마도 그때 회사에서 느끼던 한계와 답답함이 이곳에서 터진 거였으리라. 정량적으로만은 말하기 힘든 내 업무나 노력을 구글 애널리틱스 데이터 속에 욱여넣어 평가받는 데서 보이는 한계. 주니어와 상사 사이 나의 컨트롤을 벗어난 상황들... 그런 마음 속 답답함이 한순간 여기에 투영됐다. 내 친구들도 나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나와 1도 연관없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니 장난처럼 받아들인 것인데, 나의 상황이 나를 예민하게 만들었다. 더이상 보디빌딩이 문제가 아니었다. 



‘왜 내 한계를 네가 정해? 내가 이걸 할 수 있다면 어쩔건데?’


그렇게 이상한 오기가 발동한 나는 운동 모임 리더에게 연락을 했다. 만나서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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