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디빌딩 대회장은 무대가 설치된 홀과 대기실로 나뉘었다. 무대 앞에는 심사위원들이 줄지어 앉아있고, 그 뒤로 관객석이 있는 구조였다. 메이크업과 헤어를 위한 공간도 마련되어 있었다. 대기실은 개인 혹은 그룹별로 대기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말이 대기지 바닥에 매트를 깔고 있는 구조라 흡사 도떼기 시장을 방불케 했다. 선수와 그를 따라온 코치와 서포터들은 매트만큼의 자신들의 영역 위에서 순서가 올 때까지 운동하거나 몸에 탄*을 바르고, 또한 음식을 먹거나 쉬고 있었다.
사실 여성 비키니 카테고리는 대회의 하이라이트이자 가장 마지막이라서 이렇게까지 일찍 올 필요는 없었다. 대회장에 일찍 도착한 것은 첫 출전이라 미리 분위기도 보고 적응하려는 이유도 있었지만, 코치도 이 대회의 운영에서 할 역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찌 보면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었던 것 같다.
아마도 빨리 자기 역할을 끝내고 나에게 집중하고 싶었을 코치는 그것 때문에 계속 신경을 쓰고 있었다.
그렇게 무대와 사무실에 오가며 나까지 초조하게 만들던 코치가 결국은 사고를 쳤다.
“미안한데 나 이 곳을 나가야해.”
“응?”
코치는 갑작스럽게 경기장을 떠나야한다는 말과 자세한 설명도 없이 대기장을 떠나버렸다. 나중에 들으니 주최측에게 강하게 항의를 하다 결국 퇴장당하듯 나가게 되었다고 한다.
눈 앞이 깜깜해졌다. 나만 잘하면 될거라고 생각했던 지난 3개월의 노력이 파도에 휩쓸린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그를 도와 나의 서포터 자격으로 온 이들도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자초지종을 들으러, 혹은 화난 그를 달래러 따라나가버리자, 나는 패닉에 빠질 것 같았다. 옆에서 차분하게 코치의 지시대로 마지막 순간까지 운동하고 식이 조절하는 다른 선수들을 보며 속에서는 천불이 났지만 그것을 배출할 수는 없었다. 나라도 최선을 다해 멘탈을 부여잡지 않으면 이 거짓말 같은 상황에서 퓨즈가 퍽 나가듯 내 안의 무언가가 꺼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나는 수상에서 멀어졌다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설사 심사위원이 편견을 갖지 않고 나와 그를 동일시하지 않더라도, 마지막까지 보살핌을 받고 초집중하는 선수들 사이에서 대회 자체도 처음인 내가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러려고 내게 그렇게 잔소리를 하고 정색하며 지적질을 한걸까? 뭘 위해서? 이렇게 허무하게 내 노력이 수포가 되야하는건가…’
그 순간 나의 목표는 변경됐다. 내 순서에 지난 3개월간 내가 준비한 것을 무대에서 보이고 끝까지 마무리하고 오겠다고. 그저 다른 이의 바보 같은 실수가 나를 우습게 만들게 놔두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생각을 애써 누르고 코치에게 건조한 문자를 보냈다. ‘최소한 내가 지금 어떤 걸 하고 뭘 먹어야 하는지는 보내줘.’ 납득하기 힘들 정도로 어이가 없고 화가 나면 오히려 머리는 차갑게 식는다는 걸 깨달았다.
15cm 높이의 대회용 신발을 챙겨들고 혼자 밖으로 나갔다. 남들이 보든 말든 무대 워킹을 다시 해보고 포즈를 연습했다. 아직 밖은 너무 밝았다. 내 순서가 올 밤까지 버틸 수 있을까 두려워 저녁에 오기로 했던 친한 친구 두어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비상 상황이야. 빨리 와서 나 좀 지지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