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호코 커피농장
월급날이었다.
일과를 마치고 마을 사람이 놀러 와 오랜만에 옛날통닭 한 마리 시켜서 “파주 막걸리가 최고야 “ 하며 병을 따는데 미얀마에서 전화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 웬일일까.
“ 사모님, 지금 농장에 불... 불났어요!!!”
늘 침착한 저민의 떨리는 목소리다.
“”뭐?? 불이라구??”
“네 지금 불타고 있대요!!”
“어디서?? 어디서 불이 난 거야???”
“서쪽이요 사모님 , 그런데 바람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계속 불어서 불이 번지고 있어요”
“도난이 끄려고 하는데 안된대요”
눈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사람만 안 다치면 된다는 생각이 스쳐갔다.
“저민!!!! 농장에 아무도 있지 말고 그냥 다 나오라 그래! 불 끄지 말고 그냥 다 나가서 대피하라 그래!!!!”
옆에서 저민의 아내인 끼끼에의 흐느낌 소리가 들려온다.
“ 울지 마 울지 마 끼끼에,, 저민!!! 울지 말고 나오라 그래!!!!”
전화를 끊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요한과 나는 애써 진정하며 말을 아끼고 있다.
아니 말을 아끼는 것이 아니라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서늘해진 어둠이 내린 마당으로 나가 장작을 피운다.
그토록 따뜻하게 보였던 장작불이 하나도 이뻐 보이지가 않는다.
거나하게 술이 올라서야 요한이 한 마디 한다.
“와 진짜 이제는 하다 하다 불도 나는구나. 괜찮아. 항상 아슬아슬했지. 군부랑 반군이랑 싸우고 마을 사람들은 피난 가고 농장 애들도 피난을 보낼 때 사실 말을 안 해서 그랬지 항상 아슬아슬했지”
요한은 웃음을 지며 울고 있다.
몇 년 전 친구네 고향집에 불이 났다.
화목난로에 불이 붙었는데 팔순 노모는 장애가 있는 막내아들만 데리고 빠져나와 화를 면하고 모든 것을 잃으셨다.
옷 하나 양말짝 하나 건지지 못하고 다 잃었다.
마을회관에 기거하는 동안 동네 사람들이랑 친구들이랑 물심양면으로 도와 새 집을 짓고 몇 달 만에 다시 집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는 충격으로 식사를 잘 못하셨지만 지금까지 잘 지내고 계신다.
농장에 불이 났다는 전화를 받고 친구의 노모를 생각했다.
사람만 안다치면 된다는 생각만 했다.
커피농장은 불이 자주 난다.
커피나무뿐 아니라 모든 나무들이 불에 취약하지만 한번 불이 붙은 나무를 살리기는 어려운 일이다.
며칠 동안 요한과 나는 아무 말도 없이 집과 회사를 오가며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더군다나 불을 목격한 직원이 폭발이 세 차례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기 때문에 군부와 시민군의 교전이 치열한 지역의 특성상 누군가가 지뢰를 매설한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어떤 조치를 취할 수도 없게 무기력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망한 건가.
이제 끝인 건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갇힌 두려움과 답답함에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데 죽으라는 법은 없는 법.
그리고 이윽고 고향으로 피난을 갔던 앙앙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