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호코커피농장
고향으로 갔던 앙앙이 농장으로 돌아오는 길은 검문이 심했다.
원래 다니던 길은 막아놔서 많이 돌아서 와야 했는데 젊은 남성들은 검문을 통과하기가 까다로웠다.
앙앙의 고향 가족들은 앙앙이 농장으로 돌아가는 것을 한사코 막았다고 한다.
정부군과 시민군의 교전이 심한 곳이어서 하나뿐인 아들이 잘못될까 부모는 만류했고 하나뿐인 딸을 부모에게 맡기고 일터로 떠나야 하는 앙앙의 발걸음도 떼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저민은 마을의 교전이 사그라들었으니 일단 복귀를 하도록 앙앙을 설득해 주었다.
마을의 유지인 우쪼소가 앙앙을 마중 나가 데리고 와 주었다.
불에 탄 농장의 모습을 보고 앙앙은 망연자실했다.
농장에 남았던 앙민테가 지뢰 같은 폭발음을 들었다고 하니 농장 안으로 들어가는 것 또한 불가능하여 모두가 손 놓고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루, 이틀, 사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지뢰를 누군가가 매설했다면 그것이 정부군이든 시민군이든 누가 그 농장에 들어갈 것이며
이 건기에 불타버린 나무를 자르고 물을 주고 수습하지 않는다면 나무는 다 말라죽고 말 터인데 이제 정말 끝인 것일까. 하루하루가 괴로웠다.
지난 10년간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모든 순간이 물거품이 되는 것인가 멍해졌다.
대사관에 연락을 취하고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청해놨지만 진척이 없었다.
며칠 뒤 미얀마로 다시 전화를 걸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 저민, 앙앙, 우리를 위해 농장으로 와줘서 고마워. 하지만 우리는 이 위험한 농장에 계속 남아 있으라는 이야기를 할 수는 없어. 여기는 직장이기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있어 달라는 말은 못 해. 떠나려면 언제든 가도 좋아. 원망하지 않아. 하고 싶은 대로 해. 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워.”
“사모님, 사장님과 함께 10년 저도 농장에서 꿈을 키웠어요. 그런데 불이 난 것을 보니까 이제 꿈이 다 사라진 느낌이에요. 사장님 사모님 얼굴을 보고 말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만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까 전화로 말씀드려서 죄송해요. 이제 농장에서 돈을 벌 수도 없잖아요. 다른 일을 해볼게요.”
“ 그래, 그렇구나… 그래 맞아. 우리가 붙잡을 수는 없지”
전화를 끊고 한참을 어두워진 아파트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려야 했다.
집으로 돌아와 요한에게 말했다.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민, 애 많이 썼는데 다른 일 할 게 있으면 해도 돼. 하지만 잘 알아보고 해. 그때처럼 사기당하지 말고. 새로운 사람을 구할 동안 우리 일은 좀 봐줄 수는 있지?”
“네 사장님 그럴 거예요. 평생 사장님과 같이 하고 싶어요”
“그래 고마워 저민”
전화를 끊고 마음이 쓸쓸했다.
요한과 맥주 한잔을 마시고 멍하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한국에서 화분에서 키우던 커피나무가 상태가 좋지 않아서 가지를 자르고 다시 키웠던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뿌리가 죽지 않았던 나무는 다시 씨눈이 생기고 싹이 나왔다. 그리고 그 싹은 새로운 가지가 되어 새 나무로 갱신을 했다. 핸드폰 카메라 사진을 찾아 사진을 저민과 앙앙에게 전송했다.
요한이 말했다.
“나무를 자를 수 있으면 잘라서 다시 키울 수 있어. 지뢰만 없다면 나무를 살릴 수도 있어.
“그리고 불이 난 모습을 보면 활활 타오른 게 아니라 키가 큰 그늘나무는 손상을 받지 않았어.”
그것만 확인해 보면 될 거 같아”
“네, 그늘나무는 괜찮아요”
하지만 농장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는 이상 더 세밀한 확인은 어려웠다.
대사관의 연락을 받고 저민이 대사관에 다녀온 이후 다시 통화를 했다.
“사장님, 대사관에서 군부에게 연락해서 지뢰가 있나 없나 확인해 주는 일은 우리 애들에게 너무 위험한 거 같아요. 반군에게 미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 그러면 너희의 생각은 어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솔직하게 말해봐”
“저희는 우리끼리 지뢰가 있는지 없는지 들어가 보면 좋을 거 같아요. 기다란 대나무로 훑고 들어가면서 지뢰가 없으면 들어가서 나무를 자르고 다시 들어가서 자르고 이렇게 한 라인, 한 라인 하면 한 달 정도면 끝낼 수 있을 거 같아요.”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앙민테가 폭발이 있었다는 곳에 가봐도 폭발의 흔적이 없어요. 지뢰였다면 흔적이 남아야 하잖아요. 아닐 수도 있으니까 앙앙이 들어가 본대요”
직원들도 나름대로 인터넷에서 찾아보고 그런 방법을 연구해 낸 것이다.
요한과 나는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잠시 후 “ 그래 , 한번 해보자. 우선 A1만 몇 라인만 해보도록 하자”
그리하여 앙앙은 대나무 빗자루를 들고 커피나무 숲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