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는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다. 6살 무렵 그런 곳에서 어린이집에 잠깐 다닌 적이 있다. 평범한 대로변의 3층 한 층을 쓰는 영세한 어린이집이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많이 이상한 곳이었다. 사실 나는 전학 온거라, 그게 그 전 어린이집에 비해 이상하단 걸 잘 알 수 있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어노는 쉬는 시간인데, 너무 시끄럽다 싶으면 원장선생님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 회초리를 들고 위협했다. 그러면 나보다 거길 오래 다닌 아이들은 익숙한 듯 낄낄거리며 미끄럼틀 아래, 장남감 더미 속, 피아노 아래 등등으로 꼭꼭 숨었다.
초반에 그런 숨기 좋은 곳을 몰랐던 나는 한발 늦은 다른 아이들과 붙잡혀서 벌을 받아야 했다. 그때도 지금도 도무지 왜 벌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더 노하우가 있고 힘 센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을 거칠게 밀어내며 자기가 찾아낸 은신처에 꼭꼭 숨었다. 이건 정말 잘못되었다 싶었는데, 그 나이에 그걸 누구에게 호소할 수 없었다. 그런 이상한 곳이었다.
그런 어린이집에서, 한번은 자기 꿈을 그리는 수업이 있었다. 나는 그 때 꿈을 하나 정하지는 못했고, 그다지 꿈도 야심도 없었다. 그래서 다른 아이들이 고르지도 않고 어른들이 이상하리만치 추천하지도 않는 걸 골랐다. 뭐였냐면 공사판 인부였다. 그때 나는 인부들이 의사나 경찰만큼 우리 주변에 자주 보이는데, 왜 어른들은 그 누구도 그걸 장래희망으로 권하지 않는지 궁금했다.
물론 좀 더 나이가 지나서 알게 되긴했다. 초등학생 때 친구들이랑 귀가 중이었는데, 학교 보수공사 중이던 아저씨들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너희는 열심히 공부해서 이런 일 하는 사람이 되지말거라."
어쨋든 나는 미숙한 솜씨로 공사판에서 안전모를 쓰고 짐을 나르는 인부를 그렸다. 수업은 곧 노래 "당신은 누구십니까" 하는 노래를 둘러 앉아 부르는걸로 이어졌다. '나는 ~입니다'에서 자기가 그린 장래희망을 말하도록 되어 있었다. 내 차례가 되자 나는 좀 전에 그린 칙칙한 공사판 그림을 세워보이며 "나는~ 공사 일꾼입니다~"하고 노래를 읇조렸다.
그러자 선생님의 얼굴이 이상한 표정이 번졌다. 지금 생각하니 그건 비웃음이었다. 그런 얼굴로 "그 꿈은 괴상하구나"하는 답가를 해주었다. 해맑고 활기찬 동요풍 노래로 활짝 웃으면서.
그 날 하루 종일 기분이 이상했다. 20년을 훨씬 넘은 지금도 생각날 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