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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 Jun 19. 2021

[에세이] 공동체 절벽

공동체를 잃어버린

아마 과거에 NL계 외곽에서 활동했을 나이든 활동가 한 분이 협동조합 설립 운동을 활짝 웃으며 소개한 적이 있다. 늘그막에 마지막으로 시도하는 공동체 복원 운동이라고 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왠지 나는 그 모습이 짠하게만 느껴진다.

 

 이런 공동체 복원 운동을 하면서도 유독 '성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기억에 남는다. 성품론. 《NL현대사》 저자는 NL계의 성품론이 그야말로 한국적인 공동체의 정서를 담고 있었다고 말한다. 인간적인 유대감과 결속력이 중요하다는 것. 어디에서든 인간적인 한계를 두려는 성품론이 어느 정도는 일본의 적군파와 달리 결정적인 선을 넘지 않게 해주었다고 이야기 하기도 한다. 그 말은 정말일까?


 정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NL 운동권 활동은 아마 저 무렵에도 조금씩 흔들리던 토속 공동체에 대한 보완물 역할을 해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느끼기엔 그런 방향이 어느 정도는 근래의 마을만들기 사업처럼 공동체를 복원해보려는 움직임과도 연결고리가 있지 않나 싶다.


 아마 협동조합에 대한 기대도 그런 맥락에서 생겨난 걸거다. 안타깝게도 협동조합은 대안 공동체 모델로서 그다지 비전이 밝아 보이지 않는다. 협동조합 설립 수 자체가 갈수록 줄어드는 모양새고, 지원사업이 없으면 활동을 멈추기 부지기수다.


 사실 이런 식의 대안 공동체 만들기, 마을만들기 사업은 무엇이든 포부에 비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다. 많은 경우 자금이 문제고, 애초에 수익사업으로 생각하고 들어오는 인원도 문제가 된다. 더 근원적으론 서로가 공동의 배경과 운명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 이질감을 극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에 모이는 구성원들이 기성사회에서 인정을 받지 못해 밀려난 사람들, 인정에 목마른 사람들이라는 분석이 있다. 그 분석에 따르면 이런 공동체 내의 갈등 양상도 더 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공동체를 복원해 보려는 노력은 그것이 무엇이든 썩 성공적이지 못 했다. 마을만들기, 도시재생, 협동조합 등. 더 나은 길은 있을까? 이들을 보완해서 되살릴 방법은 없을까.

 

 나는 중간단계의 공동체가 꽤 중요하다고 생각하기에, 지금처럼 기존 공동체가 형해화 되어 개인들이 각자도생의 삶을 살게 된 사회가 마뜩잖다. 공동체는 거대한 경쟁적 자유주의의 세계에서 자기 자리를 갖지 못하고 내몰린 자아에게 안정적인 인정의 토대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공동체에 참여하고 공동 목적을 위해 힘쓰는 동안 사람들은 나름의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자연스러운 목적과 의미를 제공해주는 공동체를 찾을 수 없다. 정부사업이나 활동가의 운동처럼 공동체 만들기 자체가 목적인 사업들은 그런 인위적인 목적이 안기는 이질감을 벗겨내기 어려울 것이다.

 

 이제는 정말 공동체 복원의 가치는 실현 불가능한 것인지 씁쓸함만 느낀다. 잃어버린 공동체를 계속 그리워하며 살게 되겠지.


 협동조합을 만들어서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책을 만들어 가겠다는 나이든 활동가의 열정에 지지를 보낸다. 그런 활동이 성취를 보이길. 하지만 그것이 잃어버린 그 무언가를 되찾게 하기엔 다소 역부족일 것 같아 우려스럽리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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