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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 Mar 14. 2022

[에세이] 셋방 벌레

 풀밭과 가까운데 사는 동안 방아깨비와 메뚜기는 자주 잡았지만, 여치는 왠지 생소하고 징그러운 벌레였다. 방아깨비나 메뚜기와 달리 외피가 단단해 보이지 않아 더 징그러운 녀석이다.  


 좀 더 도시다운 곳에 이사하고 우리 가족은 셋방살이를 했다. 엄마가 열면 안 된다는 문을 실수로 열었을 때 주인 아줌마 집의 호화로운 거실이 나오던 그런 집이었다. 


 일하러 간 엄마는 자주 늦었고 밤이 늦으면 나는 누나와 함께 엄마를 걱정하곤 했다. 어느 저녁에 섬뜩할 만큼 녹색이 선명한 여치가 그 셋방에 들어왔다. 바깥 세상의 온갖 흉함을 두른 듯 징그러운 녀석이었다. 어디서 온 걸까. 때가 낀 창문의 구멍 뚫린 방충망 너머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높겠지.


 녀석이 날뛰자 초등학교 저학년이던 나는 누나와 함께 안전한 모기장 안에 들어가 벌벌 떨었다. 그렇게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날따라 엄마는 너무 늦었고 날은 어둑했다.


 TV엔 볼만 한 방송이 나오지도 않을 시간, 갑갑하게 갇혀서 얼마나 긴 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른다. 우리는 엄마가 없으면 안 되는구나. 그런 무력함을 느꼈다. 


 그 무렵 엄마의 나이는 아마 지금 내 나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마침내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는 우리의 아우성을 듣더니 곧장 더러운 걸레를 주워 여치를 단숨에 잡아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렇게 그 날 밤은 잦아들었다.


 시간이 지나고, 우리 집은 그 날보다 더 북적이게 되었다. 그 날의 나보다 두 배 넘게 나이든 막냇동생은 매번 지하방에서 컴퓨터로 게임을 하곤 했다. 어느 날 동생 녀석이 큰 소리로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큰 일 났다며 호들갑을 떤다.  


 내려가 보니 나보다 덩치가 더 큰 동생이 한 구석에 있는 벌레를 보고 오도방정을 떨고 있다. 꼽등이였다. 동생은 특유의 과장된 표현법으로 조그마한 꼽등이가 마치 무저갱이의 괴물인양 묘사했다. 니는 저런 게 뭐가 무서워서 그러노.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솔직히 나는 그 날의 엄마만큼 무덤덤하게 벌레를 잡을 용기가 안 났다. 


 나는 동생이 보는 앞에서 가만히 있어 보라며, 벌레를 잡기 적합한 도구를 찾았다. 버려도 되는 것. 어제 치킨 시켜 먹을 때 딸려 온 콜라의 빈 패트병이 보인다. 나는 패트병을 거꾸로 들고 벌레를 강해게 내리쳤다. 녀석이 날뛰자 나도 움찔했다. 다행히 꼽등이는 단 두 방에 죽었다. 


 이런 일은 별 것 아니라는 듯 동생 앞에서 대담한 척을 했다. 앞으로 니가 직접 잡으라고 다그치기도 했다. 솔직히 나도 꼽등이는 징그러웠다. 아무렇지 않은 듯 태연하게, 그러나 꼽등이 감촉이 하나도 안 느껴질 만큼 휴지를 잔뜩 뽑아 감싸서 버렸다. 그 옛날 젊은 엄마는 어떤 용기로 살아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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