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시시즘>
오즘 세상의 화두는 '나르시시즘'이다. 알음알이 은밀하게 꽤나 많은 사람들이 주변 누군가 나르시시스트가 아닌지 의심하고 손가락질한다.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는데 새삼스럽게 그제야 그 정체를 마주한 것만 같다. 다른 모든 것들이 다소간 힘을 잃고서야 그 정체가 명료하게 드러난 것 같다.
과거라면 권위적이고 위계적인 의식이 강한 꼰대로 받아졌을 못난 상사들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권위주의를 당연하게 여겼을 시절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수평적으로 변한 환경에선 그 도드라진 자기애가 너무나 돋보이게 된 거다.
온라인 상 악플러들이나 사이버렉카들도 마찬가지다. 과거라면 이들의 정체와 동기를 파악하기 위해 고민했겠지만 이젠 '나르시시스트'라는 단어 하나로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다.
저 숱한 논객들, 지식인들도 어쩌면 해당될 수 있을거다. 다른 거대 서사가 모두 끝나고 오로지 개인의 가치 창조와 자유만 남았을 무렵, 그러니까 대충 1990년대 중반 무렵부터 일종의 무례하고 거만한 논평이 일종의 개인주의적 가치관에 대한 확신과 자신감으로 받아들여진 적이 있다.
그렇지만 좀 점잖은 어조로 말하는 게 더 효과적인 시점에서조차 그 특유의 거만함과 무례함을 벗어던지지 못하는 모습은 나르시시즘이 의심되게 한다. 세월이 흐르고 많은 게 착오로 끝나고 모두가 나이가 들었는데도.
주변 사람들과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숱한 갈등도 대체로 누군가의 자기애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사실 상대방이 나르시시스트라고 생각하면 모든 문제가 꽤 쉽게 풀린다. 적당껏 상대하고 거리를 두면 되니까.
이런 분위기가 꼭 좋기만 한 건지는 모르겠다. 과거 '사이코패스'라는 단어가 처음 유행할 무렵 일종의 낙인찍기나 과한 자기 검열 같은 혼란들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선천적인 사이코패스와 달리 나르시시스트는 개인적인 환경이나 경험이 강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또 적당히 개선 가능한 자기애를 가진 사람을 지나치게 낙인찍거나 멀리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겠다. 그러니 어쩌면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