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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EMPRE Jun 19. 2022

[에세이] 투명하고 자유로운 흔적

 예전에 고시원 생활 경험에 대한 글을 써서 올린 적이 있다. 2017년에 서울로 올라와 한동안 고시원에서 지내던 시절 이야기였다. 그 글은 몇몇 커뮤니티에 퍼져서 소개된 적이 있었는데, 그중 몇몇 댓글이 좀 무겁게 짓누르는 느낌이었다. 어떤 사람은 그 글이 그저 예술하는 사람의 값싼 감성 표현 밖에 담겨 있지 않으며, 약자에 대한 진지한 관심은 담겨 있지 않은 것 같다고 했다. 고시원에 사는 눈이 퀭한 일용직들을 그냥 예술 소재로 쓸 뿐이라고 말이다.     


 그 글을 ‘예술’을 시도하는 글로 봐주었다면 그 나름대로 칭찬일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개운찮은 느낌이다. 글엔 내가 좀처럼 같은 고시원에 사는 일용직 아저씨들이 편하게 느껴지지 않아 한 마디도 건네본 적 없다고 썼다. 사실 나뿐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았지만, 그걸 글로 표현하는 건 한 차원 더 비정한 태도로 보였을 것이다.      


 그 고시원을 벗어난 이후 자취를 하다가, 대학원 진학을 위해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대학원 전 과정을 수료하고 다시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올라왔다. 이번에도 그때처럼 잠깐이나마 몇 개월간 고시원에서 거주하게 되었다. 낯선 사람들에겐 수줍음을 많이 타지만, 이번엔 좀 더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공동부엌 겸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옆에 와서 자기 먹거리를 꺼내와 먹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묵묵히 서로가 가진 몫의 음식을 먹다가 할 수 있는 최대한 넉살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다행히 아저씨는 대화를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고,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어 했다. 어쩌면 말동무가 많이 없는 사람일지 모르겠다.     


 그는 일용직인 듯하다. 무슨 직업인지 분명하게 이야기하지는 않지만, 그가 설명하는 자신의 생업은 일용직 건설 관련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나름대로 자신의 생업에 대해 자부심을 표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긍심이 필요한 법이다. 자긍심은 없어도 찾아야 하는 법이다. 그의 자긍심은, 자신이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어디에도 매여 있지 않아 형체가 없고 일종의 투명인간일 수 있지만, 그 대신 어디든 가보았다고 한다. 내 고향인 부산에도 자주 가봤고, 거기 어디 어디에서 일을 해봤다고 한다. 그리곤 과장된 톤으로 부산을 칭찬한다. 좋은 곳이었다고. 


 적어도 육로로 걸어갈 수 있는 곳 어디든 세상 곳곳에 흔적을 남겨놓았을 것이다. 우리가 지나치는 건물들 사이사이로, 건물을 직접 지어 올라간 사람들만이 반추할 수 있는 어떤 흔적들을 심어 놓고 왔겠지. 일용직의 특성상 어디서든 견고하고 단단한 '물질적인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내 방 옆 옆 방에 지내고 있었다. 여기에 온 지 몇 달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둘 다 그 고시원이 다른 어떤 곳보다도 더 좋은 곳이라는 데 공감했다. 사실 나는 경험한 고시원이라곤 하나밖에 없었지만, 적어도 예전 거기에 비해선 훨씬 밝고 환하고 습한 느낌도 없었다. 침대도 허리가 아프지 않고 제법 잘만 했다. 게다가 매달 내야 할 고시원비도 저렴했다.


 다 먹고 인사를 하고, 올라와 내 방에 누웠다. 그는 외로울까. 벗어날 수 없는 가난과 나이 듦이 고통스러울까. 그렇지만 그를 불행한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연민을 보이는 게 당장 바람직한지 확신은 못 하겠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런 ‘투명인간’들의 삶을 대하는 법을 정말 몰랐다. 어렴풋하게 퇴근하고 해진 어느 밤에 고시원 건너편에 있는 순댓국집에서 소주나 들이키며 좀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해보는 상상을 했다. 


 그렇지만 이후 그 아저씨를 마주친 적은 없다. 이름도 모르고 거처도 불분명하니, 그야말로 투명인간이 되었다. 얼마쯤 지나서 나는 딴엔 아직 어린 나이라서 받을 수 있는 전세대출금을 받아 밤손님처럼 그곳을 떠났다. 여전히 불명료하지만, 그래도 같은 대지를 밟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뭐라도 해야겠지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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