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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an 02. 2023

요이, 땅!

  아버지는 내가 달리기 시작할 때 항상 "요이, 땅"이라 했다.  


 어른이 되어서야 "요이"가 "마음을 먹다, 준비하다" "땅"은 "북소리, 대포, 총소리"라는 일제의 잔재임을 알았지만 어릴 땐 그저 느낌으로, 뛰어 나가면  될 것 같아 무작정 뛰었다. 평소에 엄하고 우리에게 말수 적은 아버지는 달리기 할 때마다 함박웃음을 짓고 칭찬해 주었그 덕분에 나는 포레스트 검프가 되었다. 내 고등학교 100미터 달리기 성적이 10초에서 11초 사이니 육상부 코치가 눈독 들인 것도 우연은 아니었다.


 나는 아버지의 미소가 좋아 달리기 시작했고, 유치원 다닐 땐 크리스마스에 "그 어리신 예수"를 교회에서 빼어나게 불러 교사에게 껌 한 통을 받았다. 그때 그 껌이 너무 달콤해서 나는 노래가 단맛임을 단박에 알았다. 나는 달리기와 노래를 잘했다.   


 새해가 시작되면 항상 시작을 알리는 아버지 목소리가 하늘에서 들린다.


 " 요이, 땅!"


 여기는 중부시간인데 굳이 동부시간 뉴욕 새해 방송으로 새해를 맞았다. 역시 해는 동해에서 시작하는 것이 최고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날인데 굳이 구분해서 보내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사는 게 지루해서 인간은 시간을 분초단위로 쪼개 계산하며 수지타산을 맞춘다. 난 단정하고 새로운 것을 좋아해서 글씨체 "나눔 바른 고딕체" 같은 새해를 좋아한다.


 






새해 첫새벽부터 새로 산 의자에 앉아  부지런히 그것을 찾고 있었다.


 서랍을 뒤지고 아무리 찾아도 없다. 옷주머니부터 아무리 뒤져도 찾을 수가 없었다. 1월 1일이란 숫자와 시간은 찾았는데 그 년이 없다. 2023을 아무리 찾아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 보내온 달력은 책상 앞에 없어서 안 보이고 내가 앉은 주변에서 첫 2023이란 숫자를 찾을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헤매다 겨우 노트북에서 찾았다.  노트북 우측하단에 2023-01-01이라 적혀 있었다. 혼자 중얼거렸다.


"토끼?"


 휴대폰 달력에 한 달 한 달 들춰가며 가족 생일부터 기록했다. 지난해는 가족 한 명의 생일을 잊고 지나가 큰 낭패를 보았다. 생일은 우리 가족에게 가장 중요한 날이다. 다른 명절은 무심코 지나쳐도 생일엔 내가 항상 이벤트를 해주기 때문이다. 해가 갈수록 이벤트는 시시해지고 나를 찾는 사람들도 줄어든다. 물론 나도 찾는 이가 적어진다. 서로 직장을 공유하거나 이익을 공유할 때 친구지 이익집단을 떠나면 관계는 항상 시들해진다.


 난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수준이 낮건 높건 삶을 공유할 수준이 맞아야 미래 관계는 지속된다고.  가까운 친구는 올해 꼭 이혼할 거라고 각오를 말한다. " 넌 새해인사가 이혼에 대한 다짐이냐" 그는 웃었다. " 이혼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용기가 필요한 거지. 알잖아 한국은 법이 까다로워 이혼 못하고 여기는 돈이 많이 깨져 힘들잖아" 하긴 그렇다. 미국은 아프거나 이혼하면 가진 거 거의 날아간다. 그러니 오래되고 불편한 무언가 바꾸려면 돈이 많이 든다.

그래도 친구는 이혼을 원했다. 나는 친구 부인도 알고 친구도 안다. 둘은 나에게 서로 상대를 비난한다. 나는 둘 다 이해 하지만 결국 친구 편을 든다. 하지만 재판장이 되면 5:5라고 말할 것 같다. 친구는 자기가 100% 억울하고 친구 아내도 역시 마찬가지다. 부부문제는 51:49라는 것이 내 최종생각이다. 100:0은 없다.


 부부문제와 달리 새해는 모든 것을 쉽게 정리해서 좋다.


 나는 올해 죽을지도 모른다는 가정하에 옷가지부터 연락이 닿지 않는 오래된 친구 이름까지 내다 버린다. 올해 연하장이나 카톡으로 안부 전하지 않는 놈들은 벌써 그들의 주소록에서 내 이름 지운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자기에게 크게 보탬이 되지 않아도 자기보다 난놈, 아직 살아있는 활어를 선호한다. 오래된 선배가 대학총장 후보가 되었다. 연락할까 하다가 포기했다. 구질구질하다.


 나는 구정을 쇠지 않는다. 오랜 외국생활에 "Lunar New year"를 " Chinese New year"라고 쓰는 표현도 싫거니와 내 부모가 실향민이라 친척이 별로 없는 명절을 자주 보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에게 구정은 그저 빨간 날이다.  어려서 우리 집 새해명절(신정 구정 두 번)엔 떡 만둣국을 만들어 먹었다. 어머니는 만두소를 만들고 아버지는 만두피를 만들고 우리 형제들은 만두를 만들었다. 명절밥상엔 만둣국, 녹두빈대떡, 도라지, 잡채, 불고기, 동치미가 항상 올라왔다. 돌아가신 어머니는 혼자 말년 일 때도 거동이 불편하신데 아들이 한국에 들어오면 꼭 이북식 만두를 정성껏 상에 올렸다. 내가 첫 숟가락을 뜰 때까지 늙은 어머니는 나를 쳐다보다 내가 첫술에 고개를 끄떡이면 비로소 안심하고 말했다.


" 이번엔 좀 짜게 된 것 같았는데 괜찮아?"


세월은 어머니를 땅에 묻었지만 내 어머니는 아직도 내 안에  멀쩡히 살아계시다. 내가 불효자라서 죽을 때까지 어머니를 마음에 모시고 살아야 한다. 달력에 어머니 기일보다 음력생일을 양력으로 바꿔 적었다. 난 어머니 생일이 기일보다 더 좋다.  올해 어머니 생일은 내 아들과 같은 날이다. 살아계실 때 좀 잘하지... 마음이 아프다.


요이, 땅!

올해는 조금만 더 성숙해지면 좋겠다.


이젠 요이땅할때처럼 빠르게 달리지 못한다.


우리 개가 나보다 더 빠르다.


내가 느려도 지구는 빠르게 비행하고


우리는 빠르고 시끄러운 이 행성에서

더  빠르고 더 시끄럽게 나이를 먹는다.


https://youtu.be/CsKZmUcQOz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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