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날 day인데 다르게 느껴진다. 늘 그래 왔지만 나에게 다른 날은 주중과 주말이었다. 금요일부터 주말을 즐기는 미국 분위기 때문에 주말엔 항상 이웃집 마당에서 고기 굽는 냄새가 나고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우연히 운 좋게 백인동네에만 살아서 그런지 나에게 미국은 백인의 나라였다. 나는 그들에게, 우리가 베트남 바라보듯 내가 취급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백인인 척 살아왔다. 오래전 이십 년 만에 한국을 처음 방문할 때도 국적기를 기다리는 검정머리 동양인이, 그것도 한국인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놀랐고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도 놀랐었다. 지금은, 한국에 장기거주 해보고 , 내가 뼛속부터 한국인이고 백인거죽을 뒤집어쓴 채 살아왔다는 과거에 허탈하게 웃는다.
그럼에도 미국에서 새해를 맞는 것은 항상 슬프다.
어딘가에 소속되지 못한 느낌이 서럽기도하고 객지라는 생각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하다. 여행을 마치면 집으로가고, 산을 정복하고도 결국엔 집으로 돌아간다, 하여 인간은 어디든 자신 있게 떠난다.
삶이 여행인 것은 진즉 알았지만 돌아갈 본향이 우주의 원소라는 사실에 흠칫 공허한 순간도 있었지만 복잡한 논리의 추론 끝에 나는 오래전, 신앙의 본향을 선택하기로 했다. 호스피스 공부 할 때 "God, s embrace"라는 문장을 알게 되었고 미국인들 죽음 앞에서 그 문장을 사용했다. 내 죽음 저편 본향이-"신의 품"이라면 우주 끝 어디라도- 기독교의 파라다이스가 아니어도 상관없음을 그 무렵 알게 되었다. 우리가 모르는 것은 모른 채 사는 것이 더 골치 아프지 않다는 것도 나이 들어가며 새삼 깨닫는다.
굳이 여러 사람에게 인정받고 살아가는 방식이 필요하진 않아 보인다. 누군가 나를 무시하거나 나를 무시하는 듯하면 무심으로 응대하면 되고, 누군가 나에게 관심 갖고 존경하면 환대해주면 그만이다. 마음으로 살지 말고 혼으로 사는 것이 여기 지금 행성에서 필수인 것은 타향에서도 깨닫는다. 누구-타인-에게 일희일비하던 시간은 청년 때까지면 충분하다.
세모에 택배알림이 왔다.
오늘 택배는 아마존 아닌 가구회사 사무용 의자다. 요즘 재택근무로 책상에 앉는 시간이 많아졌는데 서재엔 엔틱 antique의자가 멋있지만 장시간 일하기는 힘들었다. 가족을 졸라 마련한 것이라 산타선물 받는 기분도 들고 새해부터 책상에서 돈 벌어 가족의 기쁨이 되라는 무언의 압박도 느낀다.
기능을 고려해 주문한 의자는 조립품이다. 시카고 ikea가 집에서 좀 멀긴 해도 굳이 그곳 물건을 고집하는 편인데 거기 물건의 약점도 조립하는 것이다. 난 성질이 급해 항상 조립에 취약하다. 늘 그렇듯, 설명서를 건너뛰고 직감으로 조립했다. 늘 그렇듯 또다시 나사를 푼다, 왜 평생 이 짓을 반복하는지 모르겠다. 설명서에 순종하기로 선서하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처음부터 다시, 이런, 설명서 글씨가 너무 작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확대해서 영어 설명을 읽는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의자 아랫도리가 갖추어지고 척추가 모습을 드러냈다. 쉽네, 이십 분 정도 가조립하고 오분 정도 숨을 불어넣어 마무리했다.
세모에 의자가 생겼다.
네모에는 장편소설이나 써야겠다. 아니 브런치부터 써야겠다. 나는 휴대폰에서 조오타, 띵~ 하는 소리를 은근히 좋아한다. 나같이 삼, 사십 명에게 노출되고 이십 명 정도 좋아요 해주면 딱 조오타. 너무 유명해지면 출판사에서 책 만들 자고 전화 올까 봐 피곤하다. 나는 나만 알고 남에게 알려주고 싶지 않은 착한 식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