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노아 Dec 29. 2022

모래성

  모래성 같다.

 이 생각이 한파처럼 마음을 스치고 지나간 것은 윌리엄 트레버 William Trevor 작품에  어색한 번역을 발견하고, 내 안의 집요한 추적병이 발작해 책을 뛰쳐나가 확인하다 결국 번역가가 맞고 내 해석이 틀리다는 사실에 시간을 낭비하고 나서였다. 존경하는 어르신 작가는 문학의 힘으로 작은 모래를 덩치 큰 괴물로 만들기도 하고 인간심연에 자리한 여러 상념들을 모래 조각처럼 표현했다. 그리고 번역가도 훌륭하게 밥값을 해냈다.   

   

 글이 모래성 같다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하고 있었다.


모래 같은 자음과 모음을 접착제로 붙여 단어를 만들고 단어들은 단문과 중문, 복문과 혼합복문으로, 구상이  형체가 되고 마침내 그 모래는 꿈꾸던 성이 된다. 요즘은 모래성의 창작 경계가 사라져 이전 작가들이 자주 만들던 중세모래성은 사라지고 젊은이 취향의 만화 같은 모래성이 자주 등장한다. 원조 수필가들의 어조는 판소리처럼 들리고 성악을 전공한 아이들이 트롯을 부르듯  글만 잘 팔리면 스타가 되는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현대인의 궁핍, 어쩌면 그것을 채워주는 것이 답이다. 


  독재정권을 타도하던 젊은이의 패기는 편의점 알바에 배달의 기수로 전향하고 돌멩이 들고 개혁을 외치던 세대는 기득권이 되어 그들이 타도할 세상의 사람들처럼 살아간다. 사회는 점점 소수 기득권 엘리트와 기계에게 밀려나고 서민은 좀비로 진화한다.  이제 어쩌나, 글을 쓰거나 영상을 만들어 팔아 사람 사는 세상에 사람이 되어야겠지...


 고전을 읽고 자라난 세대는 경쟁에 밀리고 그들의 글은 이제 팔리지 않는다. 이 세대도 약삭빠르고 정곡을 찌르는 의뭉한 사람의 글이 대중의 관심을 얻는다. 모래성은 점차 현대식 빌딩으로 진화하고, 그 글은 화려한 자태와 각고의 노력으로 탐스럽게 보이긴 하지만 전시회가 끝나면 시간과 바닷바람은 모래성을 지워버린다. 인과응보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모래성은 교보 바닷가에 전시되었다 알라딘으로 향한다. 수리수리 마수리 알라딘은 허물어진 모래성을 정리해 찬사와 관심은 털어내고 꽁초 주워 피는 소시민에게 헐값으로 전달된다. 모래성은 돌고 돌아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마침내 이야기는 우리처럼 나무처럼 서서히 썩어 흙으로 돌아간다.

 

 출판사는 이천만 원 손익분기점 게임에 손해 볼 장사꾼이 아니다. 그들은 눈이 밝아 밤새 눈에 불을 켜고 또다시 새로운 모래성주를 찾아 나서지만 그 역시 녹녹지 않다. 일군은 많은데 추수할 사람이 없다.


 수만 명 사람들이 매일 모래성을 쌓는다. 

 혹자는 백수탈출의 마지막 출구로, 어떤 이는 마음의 병을 치유하려 성을 쌓는다. 이 세상은 좋아요 구독이라는 신박한 알약만 있으면 살아갈 수 있게되었다. 우리 행성도 80억 개의 소리를 갖게 되었다. 사람 죽는 전쟁을 영상에 공유하고 이혼한 여인의 슬픔, 아기 낳는 소리, 신혼의 달콤함도 돈이 되면 공개하 돈 버는 비결도 그 아우성에 포함 시킨다. 직장에 사는 사람은 삶을 돌아볼 여유가 없고 집에 사는 사람 삶을 타개 할 뾰족한 수가 없다.


 타인에게 치유받고 타인에게 관심받아야 살아남는 새해를 또 맞이한다. 


 인간 모두가 신경증 하나쯤 가지고 있다는 스캇 펙(M. Scott peck. 미국정신과 의사, 작가)의 말은 차치하더라도 여기저기 고독으로 구멍 난 현대인 뇌의 불협화음은 오늘도 내속에서 치열하게 울린다. 무엇에 미친 건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은 종이 한 장 차이 같지만 그 결과는 상상보다 엄청나다. 천재작가, 천재 음악가들도 한편으론 병든 사람이다. 둔재들은 흉내 낼 수 없고 범접할 수 없는 고도의 상상력과 창의력, 집중력을 그들 뇌는가졌다. 그리고 그들은 그 재능으로 우리와 결이 다른 모래성을 쌓아 세상에 내어 놓는다.  바보천재다.


 몇 해 전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미륵사지 석탑을 방문했었다. 정성을 다해 복원한 사람들의 손길을 느꼈다. 두 개의 석탑과 오래된 터, 그 가운데 새로 제작한 석탑은 무료하고 아무 감흥이 없는 흔한 건물이었다. 어쩌면 우리는 현대식 석탑처럼 글을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흥도 없고 유산의 흔적도 없다. 머릿속 생각은 사사로운 일기처럼 마음의 요동을 정리하지 못한 채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수필"이라며 세상에 내어놓는다. 나도 그렇다.


조성진과 임윤찬은 범인이 갖지 못한 예리함으로 인고의 세월 동안 칼을 갈았고 손가락과 두뇌는 건반과 악보를 쪼개고 찢을 만큼 날카로워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왕좌의 자리에 한동안 앉게 되었다.


세월이 모래성을 흩어 놀 잠시동안...


 삶도 글도 모래성 같다.


그래서 언젠가 다 사라질, 알 수 없는 영원한 미래를,

그러나 그 안의 공허는 들키지 않으며,

그리고 우리를 속이고 타인을 속이며 삶을 다 아는 것처럼, 진리를 믿는 것처럼 가장하며 태연한척 살아야 한다.  


     

     


          

작가의 이전글 잉여인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