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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Jan 03. 2023

기자는 말했다

 "오버하지 마!"


 우리 아들 별명은 강 과장이다. 아들은 이 별명을 싫어한다. 우리 아이들은 나와 다른 세상을 산다. 한국인의 탈을 쓴 미국인이다. 당연히 세대차뿐 아니라 생각차이도 대단하다.

 아들은 고등학교 다닐 때 자기네 학교 카운티에 학생수가 2억이라고  말했다. 영어를 한국어로 잘못 번역해 생긴 불상사다.


" 정말 2억이라고?"


 "그렇다니까?"


" 내기할래?"


" 아빠가 틀리면 컴퓨터 바꿔줘"


 " 넌 틀리면 뭐 할 건데?"  


 " 난 아무것도 안 할 거야"


휴대폰으로 번역기를 돌렸다. 자 봐봐, 네가 틀렸지? 아들은 억이란 오류로 억 소리 나게 터졌다.

(꿀밤 맞기가 내기 벌칙이었다)


 어제 한국 ㅎㄱㄹ신문 사회면 기사 사진란에 -18이란 숫자 사진을 싣고 날씨가 춥다는 기사를 보았다. 나는 여기서도 한국의 도시날씨를 한 번씩 보는 편인데(homesick말기라) 중부지방 예보는 -10도 정도이고 내가 살던 시골은 -8도였다.  지금 한국시간 새벽으로 보니 서울은 -8.9도 시골은 -4.8도다. 기사를 자세히 읽어보면 강원내륙산지가 -15도 이하라는 전망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그냥 추운 날씨가 될 것이라는 내용을 호들갑 기사로 낸 셈이다.


 여기서 한국을 보면 하늘에서 땅을 보는 기분으로 사회를 내려다보게 된다. 고국 뉴스엔 우리 동네 시카고 불난 것부터 총격사건, 폭설에 이르기까지 다 나온다. 여기가 한국인지 한국이 미국인지 헷갈리지만 한국뉴스로 여기 미국을 보는데 사실은 늘 사실과 다르다. 한국에서 미국을 인터넷으로 보고 쓴 기사라서 그럴 것이다.




우리 한국 사회의 엔진 engine을 20대에서 40대라고 보면 세대 의식에 과장병이 감염되어 있음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불철주야 구독자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의 과장 인플루엔자 influenza가 현역 메이저 일간지 기자들에게도 고스란히 담겨있는 듯하다. 의도적인 과장, 모르고 하는 왜곡, 검증되지 않은 오류가 신문기사에도 방송원고에도 회사 보고서에도 묻어있다.


 사실 관계 확인은 발로 뛰어야 하는데 커피숍에 앉아 인터넷으로 검색해 기사를 쓰다 보니 그런 경우가 있을지 모른다. 독자는 당연히 레이더에 나타나는 noise를 걸러내는 작업을 해야 한다. 나는 상식이라는 필터로 세상의 소음을 걸러내고 특별히 관심이 있을 때만 검색에 들어간다. 검토를 마치면 상당수 기사들은 억 소리 나게 꿀밤 맞을 내용들이다.


 



그 기자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때 나는 한인들이 제법 많은 지역에 살고 있었고 어이어이 한인 관련 일을 도와줄 때였다. 지역에 한인주도 행사가 마련되었고 한인뉴스에 나올만한 기사거리가 제공되어 한국 메이저 일간지 미국지사 기자가 등장하셨다. 그때만 해도 나는 기자가 높은 사람인 줄 몰랐다. 기자 나이는 사십대로 보였고 나이에 걸맞지 않게 배가 불뚝 튀어나왔고 머리는 어제 감은 듯 보였다. 마치 형사 콜롬보처럼 바바리코트에 작은 수첩도 들고 나타났다. 여기까진 기자 같았다. 그런데 입을 열자 말투가 기자 말고 형사 같았다. 취재가 아니라 취조하듯 건방지게 물었다.  

 

 마지막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기, 이러지 말고 여기 행사 내용 좀 요약해서 이메일로 보내주세요"   


 그는 취재를 마무리 않고 밥만 드시고 한인 지역유지들과 큰 소리로, 미국인들은 그의 큰 목소리가 날 때마다 그를 쳐다보았지만, 낄낄 거리며 농담하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다음날 그와 몇 차례 통화 하고  아예 기사를 써서 보낼 테니 수정해서 내라고 말했다. 나는 신문을 흉내 내 난생처음 기사를 썼다.


 드디어 신문이 나왔다.


 맙소사, 우리 행사 소식은 내기사 토씨하나 다르지 않게 그대로 나왔다. 아무 수정도 하지 않은 내 원고 그대로.

 성형외과 의사는 어디 가고 약품판매원이 수술한 셈이다. 형사 같던 그는 검사처럼 전화했다.


" 기사 나왔고요. 수고했습니다"





 가끔 한국방송에서 기자들이 질문하는 모습을 본다.


 말투도 어눌하고 기본적인 예의가 없는 태도를 본다. 군대를 다녀오셨으면 다나까도 배웠을 것이고 상대를 자기 회사 이사님 정도로 생각하고 질의를 시도하면 좋을 텐데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가끔 영어로 진행하는 인터뷰에는 한국기자 누구도 손을 들지 않는다. " 아, 영어울렁증이.."

그게 우리나라의 현주소로 보인다. 아직도 국제사회에서 자기 의견을 명료하게 영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청년.


 지금 세대는 뭔가 좀 달라지면 좋겠다. 

 기성세대가 그전 기성세대에게 물려받은 유산을 답습하듯 아무런 변화의 동력을 만들어 내지 못하면 "그 나물에 그 밥" 이란 소리를 듣게 되고 똑같이 나이가 들면 역시 꼰대-늙으면 가는 명문 대학-학생이 될지 모른다. 지금 세대는 너무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이전 세대가 돈만 밝히다 자식에게 그 사상을 물려주었으니 자업자득이다.    

 

새해에는 우리나라의 생각 있는 공무원들과 돈은 없어도 저력 있고 사려 깊은 청년들이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가지만 변화시켜 성숙한 시민사회 만들기를 소망해 본다.



   

     

https://youtu.be/qJzRzdsGhC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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