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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11. 2023

쓸쓸함에 대하여

 휴가지에서 가수 정미조의 "귀로"를 한국음악방송 앱으로 우연히 들었다.


 충격이었다. 칠순가까이(앨범발매 2016년 기준)된 사람이 어떻게 저런 소리를 낼 수가 있지? 연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마침 찾아온 이곳의 시원한 바람이 노래와 만나 사랑을 나누자 결국 쓸쓸함이 태어났다.


쓸쓸함은 묘하다. 몸속 어딘가 숨어 지내다 가슴이 저려오면 불현듯 나타난다. 난 지금 세상을 잊을 절호의 기회를 잡았는데, 가족들과 환희에 젖어 즐거운데 돌연 쓸쓸함이 등장했다. 노인의 노래 속에 쓸쓸함이 묻어서일까? 아니면 내가 지금 고독한 걸까?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다.






 시카고 미시간호에 내가 아끼던 작은 종을 밀어버릴 때도 그랬다. 

 그땐 한국행 티켓을 예약하고 부지런히 짐을 꾸리던 때였다. 일과 개인적인 계획을 가지고 일 년 살기를 막 이루려 하던 시기였다.  잠깐 미시간호를 산책하다, 그때도 문득 쓸쓸함이 뛰쳐나왔다.


" 혹시 내가 가서 영영 못 돌아오는 건 아닐까?"

" 설마 죽지는 않겠지?"

" 이 호수는 누가 돌보지?"


훗, 자조 섞인 조소와 온갖 잡념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헤집고 지나갔다. 가끔 나는 엉뚱하다.

산책 도중 집으로 달려 올라갔다. 내가 에밀레 종이라고 명명한, 인사동에서 소리와 모양에 부족함 없는, 고르고 고른 그 아끼던 미니 종, 절친이 생각이 많아 상념으로 고생할 때 인사동에 뛰어가 같은 종을 선물했고 그는 그 종소리를 듣자마자 념을 벗고 미소 지었다.


사실 며칠 전 미시간호에 911이 출동해 밀랍인형을 호수 속에 던져 넣고 대원들이 잠수훈련하는 것을 보았다.  그때, "참 죽고 싶게 생긴 호수에서 사람들이 자살 안 하는 것이 신기해" 하는 생각을 했다. 우리 같으면 자살자가 너무 많아 호수 주변을 철망으로 막아놓고 cctv와 순찰초소를 만들 텐데  여기는 시멘트 난간 빼곤 자연 그대로다.


결국 호흡도 정리하지 못한 채, 난 선착장 부근 나무로 만든 다리 맨 끝에서 바다 같은 호수에 종을 밀어 버렸다.


" 풍덩, 꼬르륵"


종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깊고 깊은 미시간호로 빨려 들어갔다.


인당수의 심청이? 아님 호수에게 약혼반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엉뚱한 충동은 그 일을 저지르고야 말았다. 어떤 심리기제인지 모르지만 속은 후련했다. 아니 마음에 쓸쓸함대신 단단한 안정이 찾아 왔다.


지금 휴가지에서 이 배부른 쓸쓸함을 막을 것이 무엇인지 난 잘 모르겠다.


       


 


 한국시골에 머물 때 앞마당 정원에는 오래된 감나무 한그루가 있었다.


 감나무는 늙었고 피부는 옆집 할머니 손처럼 거칠게 갈라져 있었다.  그해 가을, 나무는 노구를 이끌고 홍시를 주렁주렁 생산했다. 나는 그 수고가 안타까워 겨우내 따뜻하게 지내라고 천으로 된 나무 보온재를 주문해 정성껏 감싸주었다. 나무는 교통사고로 붕대 칭칭 감고 누워있는 응급실 환자처럼 겨울을 보냈고 봄이 오며 초록 간호사가 퇴원 신호를  보내자 이내 노란 붕대를 풀어주었다.

 

"그래 겨울은 힘들지 않았니?"

 나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니 피부 좀 봐라, 올해는 홍시 좀 적게 만들고 몸생각이나 해"

  나무는 또  아무 말 없었다.


"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내가 잘 돌봐줄게 올해도 잘해보자"


  갑자기 나무가 말했다.

" 난 너보다 나이는 많지만 친구로 생각해, 여러 가지로 고마워"


난 나무 말소리를 마음으로 들었다. 그리고 이내 묘한 쓸쓸함에 빠졌다.


 그때 감나무와 느낀 쓸쓸함, 미시간호에 종을 보내느낀 쓸쓸함, 하와이에서 어르신 정미조의 귀로를 들으며 느낀 쓸쓸함의 감정이 너무 똑같아 많이 놀란다.


쓸쓸함...


나는 우울이 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쓸쓸함의 맛은 쓴맛 같지만 에스프레소 한잔에 작은 쓴맛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알기에, 인생의 아픔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도 잘 알기에 나는 쓸쓸함이 나타나면 우울함 직전까지 만나다 헤어지고 마침표는 눈물로 찍는다.


그래서 궁리 끝에 한두 시간 멍하니 기댈 곳을 찾는다. 영화든, 지난 동영상이든 내 눈이 기대고 머리가 쉼을 얻도록 어떤 장치 앞에 시간을 보내고 다행히 무엇이 눈물샘을 자극하면 한동안 울면서 그곳에 머문다.


마지막 와인 한잔과 오래된 음악을 만난다.

내 젊음, 요즘 아이들과 비교가 되지 않을 찬란한 젊음의 시간으로 시간여행을 떠난다.  가만 생각해 보니 요즘 아이들 점점 기계를 닮아다.


금쪽같은 여동생이 안부전화로 수다를 떤다.
" 오빠, 별천지에서 천국생활 잘하시지?  빨리 한국에 좀 오셔, 이제 봄이야 시골집은 누가 손본대? 나 왔다 갔다 하느라 죽겠어" 평소 말없는 동생이 말 많아지고 수다를 떨 땐 그녀가 잘 있다는 신호다.     


" 엊그제 편의점에서 지인에게 택배를 보내러 갔어. 차에서 미리 앱으로 정보 입력 다하고 편의점 들어갔는데, 참하게 생긴 젊은 여직원이 택배 관련 질문을 귀신처럼 척척 대답하는 거야, 난 로봇인 줄 알았어"
" 숙련된 거지, 너 같으면  질문하나 받고 사장님 전화해서 묻고 대답하고 또 묻고 대답하다, 사장님 열받아서 문 열고 들어올걸?"
" 암튼 요즘애들 로봇 아닐까?"


라떼는  그때 구석기인 처럼 휴대폰대신 돌을 들었다. 원시인이다.


오래된 음악엔 뭔가 모르는 쓸쓸함이 배어있다. 그래서 요절한 김광석, 김현식을 만나면 눈물이 흐르고  살아있지만 죽은 것 같은 천재뮤지션 임재범을 들어도 눈물이 흐른다.

나는 늙어서 방송에 출연하는 가수들보다 젊음의 소리를 남겨두고 사라진 가수들을 좋아한다. 그들의 젊은 소리를 들어야 과거로 갈 수 있는 내 타임머신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쓸쓸함은 시간이 지나 희미해진 향수냄새처럼 이미 내 몸에 깊게 배어있다.  

   

          


https://youtu.be/-0 ulnpnou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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