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일 년에 한 번 이상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몸에 이상이 온다. 올해는 이번여행으로 기본을 채우게 된 셈이라 은근히 신이 났다. 여정은 시카고에서 하와이 직항도 있지만 LA에 들려 친척집에서 자고, 작년에 골프내기에서 "지면 니 아들 한다"라고 했던 그 친구와의 관계-나는 필드에서 그를 아부지라고 불렀다-를 바로잡기 위해 복수의 칼을 들고 약속을 잡았다.
다행히 비수기라 공항은 한가했고 조금 작은 항공기 내 옆자리엔 흑인 청년이 앉았다. 그는 가벼운 눈인사만 하고 책을 펼쳤다. 책 읽는 모습이 그 또래 흑인치고는 특별해 보여 그의 행색을 스치듯 살폈다. 피부는 부모가운데 한 명이 혼혈인 듯 밝은 색을 가졌고 눈도 남자치고 예쁘게 생겼다. 세미정장 차림에 뿔테 안경을 쓴 그는 어수선한 이륙 시간에도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나는 이륙을 즐긴다.
안전벨트를 매고 승무원이 안전절차를 설명하는 동안 창밖을 바라본다. 여행할 때 나는, 국내선은 창쪽을 고르고 국제선은 통로 쪽을 택한다. 국제선은 어차피 시차의 강을 건너기에 창밖은 큰 의미가 없다. 나는 시차를 건널 때 비행 중 절반은 동면한다. 미국은 국내선 비행이 한국보다 조금 길어서 재미있다. 낮고 빠른 기장의 마지막 이륙 안내 멘트가 나오고 항공기는 미끄러지듯 출발해 몇 분 간 택시웨이를 따라 출발선까지 덜덜덜 느리게 걸어간다.
항공기가 출발 라인에 서자 엔진은 굉음을 내며 자신의 최고 에너지를 매연과 함께 토하듯 내뿜는다.
땅에 살다 물에 들어간 수톤짜리 고래가 이번엔 날기 위해 달린다. 비행기는 이륙과 착륙이 가장 위험하기에 나는 이 위험한 순간의 스릴을 온몸으로 받아들인다. 역사에서 사라진 초음속 콩코드 여객기는 활주로에 떨어진 작은 부품 하나로 이륙 때 타이어가 펑크 나 화재가 발생해 공중에 뜨자마자 추락하는 참사를 겪었다. 그리고 여객기의 초음속 비행은 인류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바퀴가 땅에서 떨어지자 공중부양하듯 순간 쾌감이 몸에 툭하고 다가온다. 어쩌면 죽을 때도 이 기분을 느낄지 모른다. 비상飛上이다.
내가 어릴 때 어머니는 의상실을 운영하셨다.
어머니는 하루종일 일만 했다. 봄이 오고 산천이 개나리와 진달래 천지로 변할 때도 작업실에서 재단을 하고 있었고 나는 밖에 핀 꽃을 재잘재잘 설명해 주었다. 우리 집엔 숙식을 겸하는 누나들이 많았다. 그중 가장 예쁘고 나를 자주 업고 다니던 누나 몸에선 향수대신 담배냄새가 났다. 옛날 옛적에 여자가 담배 피우는 것은 사회가 허락하지 않아 누나가 담배 피우는 모습은 보지 못했지만 누나는 항상 우울해 보였다. 저녁이 되면 우리 가족과 누나들은 함께 밥을 먹었다. 달랑 아들만 둘 인 집에 누나들은 말 그대로 찬란한 식구였다. 누나들은 일요일에 예뻤다. 가족모두 교회를 가야 했기 때문이다. 긴 생머리에 샴푸냄새가 좋은 둘째 누나는 다리가 길고 늘씬해서 동네 총각들이 자주 휘파람을 불기도 했다. 하늘거리는 원피스에 살색 스타킹을 신기라도 하면 하늘에서 갓 내려온 천사 같았다. 나이가 들면서 내 이상형은 둘째 누나 같은 여자가 되었다.
매일 저녁식사가 끝나면 작업실은 어두운 조명을 안고 조용히 잠들었다.
식구들이 연속극을 보는 동안 동생과 나는 재봉틀에서 늦게까지 놀았다. 아마 일곱 살 즈음이겠다.
" 부웅, 붕. 부웅"
나는 수동 재봉틀 발판 위에 앉아 버스운전대 만한 휠을 돌리며 운전하고 동생은 재봉틀 윗판에 앉아있는 유일한 취객 같은 승객이었다. 그땐 버스운전사가 되고 싶었나 보다. 입으론 엔진소리를 내고 상판에 앉은 동생은 '오라이"하고 취객이 차장 흉내를 냈다. 그때부터 나는 탈것을 좋아했고 지금도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배, 비행기, 놀이기구, 타는 것은 모조리 좋아한다.
재봉틀 타기는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나의 유일한 승객이던 동생이 재봉틀 상판 위에 앉아 있다 손톱이 바늘에 끼는 사고를 당했다. 누구 탓이라 할 것 없이, 야밤에 동생은 피로 흥건한 손가락을 수건으로 부여잡고 아버지 등에 업혀 병원에 달려가야 했고, 그 사고로 나는 작업실 출입금지에 체벌을 받아야 했다. 그때부터 나는 과실치사를 고의살인으로 해석한 아버지가 싫었다.
비행기가 고도를 잡고 성층권을 날 때 나는 화장실 가며 자리에 놓아둔 흑인청년의 책을 보았다.
"Naked Lunch"
윌리엄 S 버로스 작품이다. 저 책은 나도 아주 오래전 보았다. 마약중독자였던 저자가 마약중독자의 의식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중심으로 구성해 시니컬한 유머 코드도 많았다. 내가 먼저 그에게 말을 걸었다. " 책은 재미나?" 그는 갑작스러운 동양인의 접근에 잠시 놀란 듯했지만 이내 덴젤 워싱턴 닮은 미소로 대답했다. "아주 흥미로운 책이라 착륙 때까지 다 읽을 것 같아" 역시 사람의 지성은 옷차림이 아니라 말투에 있었다. 그는 음료를 제공받아 마시는 동안 나와 한참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시카고 다운타운 노스웨스턴 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는 의사였다.
개를 동반한 애견인을 만나면 초면이라도 쉽게 가까워지듯 책을 가진 독서인 만나도 역시 동지의식을 느낀다. 결국 그는 나 때문에 비행하며 책을 다 읽지 못했다. 나 역시 하늘아래 펼쳐지는 아름다운 신세계를 관람하지 못했다. 그 대신 그가 내리면서 악수를 청한뒤 "정말 오랜만에 즐거운 대화를 나눈 것 같다"라고 말했을 때, 나는 삶의 쉼표에서 만난 긴 호흡의 멋진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 삶의 들숨인지를 새삼스럽게 느꼈다.
LA는 얼마 전 폭설과 폭우의 기상이변으로 화제가 되었던 도시지만생애처음 미국 왔을 때 도착한 곳이기 때문에 나에겐 고향 같은 도시다. 그때 나를 맞이하기로 했던 친구는 늦잠을 자서 세 시간이나 늦게 나왔고 지금 나를 맞이하는 친구는 이미 공항에 도착해 자기 위치를 문자로 날려주신다. 그때 친구는 게으른 놈이고 지금 골프장에서 아부지라고 부르는 이 친구는 부지런한 놈이다.
부지런한 친구보다 더 좋은 친구는 남을 자기처럼 대해주는 사람이다.
나는 공항을 나서며 오랜만에 상쾌한 기쁨을 느꼈다. 친구를 만나서도 좋지만 아직 하와이행 비행이 남아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