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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Mar 03. 2023

보정

 이민자들의 최상위 신분을 상징하는 독수리 여권이 곧 만료된다.


 여권의 유효기간이 싱싱하지 않으면 여행은 고사하고 급할 때 낭패를 볼 수 있기에 제일 먼저 여권사진부터 준비하기로 했다. 한국에 있으면 적당한 보정과 함께 멋진 모습의 사진을 얻을 수 있는데 미국은 아시다시피 가까운 Walgreens에서 대충 사진을 찍는다. 십 년 전 여권은 그나마 한국인 사진관이 있던 동네에 살아 약간 보정한 사진을 제출했었다. 물론 국무부 서류지침에 보정은 금지한다고 적혀 있지만 다행히 사진은 통과되어 나보다 잘생긴 나를 여권에 남길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어느 나라건 입국심사관은 나한번 보고 여권한번 보고 헷갈려하며 입국시간을 지연시켰다.( 한국입국할 때는 예외였다. 아마 보정사진을 잘 알기 때문인지 1초 정도 쓱 스쳐 보고 스탬프를 찍었다) 나는 내 사진에 만족스러웠다.


늘 그렇듯 월그린 허연 벽면에 대충 서서 대충조명을 받으며 교도소 죄수 같은 내가 나왔다. 운전면허 갱신할 때도 DMV에 조악한 컴퓨터 사진으로 나보다 못한 내가 면허증에 찍혀 보기 싫었는데 이번에 나온 사진은 더심각했다.

 얼굴엔 십 년 전에 보지 못한 거뭇한 점들이 은하수처럼 박혀있었얼굴은 점점 우주를 닮아 팽창다. 눈꼬리는 쳐지고 눈코입은 선명한 선을 잃었다. 물론 카메라가 인간의 눈을 따라오지 못하기에, 입체 얼굴이 평면 얼굴로 나와 그런 것을 알긴 알지만 이건 해도 너무했다.




한국에 머물 때는 거소증이라는 교포들의 신분증 사진을 찍으러 사진관에 갔었다. 사진관은 넓고, 여러 가지 소품과 다양한 촬영장비 조명들로 가득했다. " 자 여기 보시고, 잠깐 만 고개를 숙이세요. 아니 좀 더" 사진사는 어색하고 못 미더운 내 고개를 바로잡으려 훌쩍 다가온다. "평소 고개를 이렇게 하셔야 잘 나와요" 나는 사진 찍을 때 항상 북한의 김여정처럼 턱을 드는 습관이  있다. 마음이 교만한가 보다.


"자, 찍습니다, 하나 둘 셋, 한 번 더 하나 둘 셋, 마지막 한 번 더 하나 둘 셋"


 웃고 싶었는데 웃지 못했다. 나는 웃을 때 입이 비뚤어진다. 사진사는 몇 장의 사진 중 고르라고 한 뒤 한 시간 뒤에 오라며 친절하게 사진 작업을 마무리했다.

 한 시간이 지나자 모르는 내가 창조되었다. 세상에 전혀 딴사람이다. 얼굴에 점은 사라지고 얼굴 폭도 좁아지고 눈은 조금 더 커졌다. 이 정도 얼굴이면  "나는 솔로다"에 출연해도 혼밥 먹는 일이 없을 것 같다.


" 어떠세요 맘에 드세요?"

" 네, 아주 좋아요"


나는 사진관을 나서며 왠지 성형외과 문을 나서는 기분이 들었다.


" 이래서 성형을 하는구나"


한국은 이렇게 멋과 외모가 중요한 나라고 미국은 쌩얼로 대충 산다.




그래도 미국인들에게 예외는 있다. 중요한 공적자리나 모임에서다.


오래전 내가 다녔던 학교에 박사과정 예비모임이 있었다. 당시 학교는 지원자들을 초대해 하룻밤 숙박하며 학교생활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지침서에는 정장 한 벌을 가지고 오라 했는데 내가 그만 세미정장 준비한 것이 화근이었다. 첫날밤 저녁은 총장이 주최하는 파티였다. 모든 지원자들과 교수들은 여러 원탁테이블에 나누어 앉아 호텔에서 공수해 온  음식으로 파티를 했다. 대형 학교식당에는 학부 음대생들이 연주하는 실내악이 울려 퍼졌다. 나와 금세 가까워진 존과 신시아도 정장을 입고 나왔다. 신시아는 삼 심대 미혼여성이었는데  첫인상은 카우보이 같았다. 그런 그녀가 달라졌다. 짧은 원피스 정장에 연한검정 스타킹과 하이힐을 신고 등장했다. 첫인상과 다르게 그녀는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 역시 사람은 옷이 날개야" 게다가 그녀는  옅은 화장에 금발머리마저 빛났다. " 역시 백인은 우월해" 나는 혼자 한국말로 중얼거렸다. 연회장은 영화제 시상식 같았다. 원래 멋쟁이였던 나는 그날 복장도 아니었고 백조도 아닌 미운오리새끼 같았다. 식사를 하는 건지 인내를 하는 건지 불편한 그 자리가 끝나는 시간까지 참 힘들었던 기억이 난다.  경우에 따라 외모는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보정 없는 쌩 여권 사진을 그냥 제출하기 싫었다. 나는 결국 맘에 드는 사진을 만들기 위해 더 많은 수고와 돈을 사용해야 했다. 마침내  보정한 듯 안 한 듯, 그러나 가장 나 닮은 사진을 다른 곳에서 얻었다. 사진과 신청서, 구여권을 동봉해 발송하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어릴 때는 미국에서 행정업무 할 때 빠르고 정확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모든 것이 더디고 확인도 하고 또 하고 그런다. 거기에 의심까지 더한다. 내가 잘 처리했나? 잘했겠지?


여권사진을 더 이상 쌩얼로 하기 싫듯 내면의 쌩얼도 이젠 보정이 필요해졌다.


더 나이 들기 전에

더 느끼고

더 만지고

더 보고

더 나누고

더 사랑하고 

더 생각하고

더 행복 해하며


내면 얼굴을 보정해, 아름답게 살다가  아름다운 모습으로 찬연한 이 행성을 떠나야지.



https://youtu.be/wDPQS201F_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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