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요즘 생각이 좀 바뀌었다. 한국에 와서 제일 처음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는 그 일은, 마무리하고 나자 맞는 생각이었다는 확신이 더 분명해진,늠름하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하는, 아직 머리밀고 훈련소에 갓 입소한 신병 같은 매화나무 였다.
추위를 이기고 가장 먼저 꽃을 피운다는, 겨울을 이긴 강인함 때문에 그 기개와 절개 때문에 선비나무라 부르고 매실, 사군자, 설중매, 매화향, 온갖 관련어들을 뿜어내는, 그 가운데 솔직히 말하자면 벚꽃에 없는 매화향을 가진 나무를 갖고 싶었다.
몇 번 들락거려 나만 단골로 생각하는, 장터에서 만난 마음씨 좋은 화원 사장님을 예약하고 찾았다. 한번 보고 살 거라고 전화로 부탁했는데 그는 이미 어림잡아 세 살 넘었다는 나무뿌리를 동여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나무를 묶다 말고 그는 옅은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매화는 시신처럼 누워 여기저기 가지치기를 당했다. 뿌리도 잘려 이동이 쉬워졌고 꽃은 피다 만 건지 흔적만 남았다.
이 매화는 주인을 닮았다. 사장님은 얼굴이 거뭇하고 키가 자그마했다. 손등은 나무껍질처럼 건조했고 작은 미소 말곤 표정에 변화도 없었다. 재작년인가 다른 화원의 젊은 사장에게 넝쿨장미 수십 개를 구입했는데 그때 나는 그가 나무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해맑은 청초 함이랄까, 젊은 남자에게 도시에서 보지 못한 순수함 같은 것을 느꼈었다. 지금 이 사장님은 나이 든 나무 같다. 어림잡아 칠십 대는 되어 보이는 그는 늙은 나무처럼 겸손하고 차분하다.
" 올해는 넘겨야 내년부터 꽃이 피고 자리 잡을 거예요"
처음에는 시신을 싸서 화장장에 가는 듯하다, 나무 포장을 다하자 밝은 그의 목소리 덕분에 분위기가 달라졌다. 사장님은 출가시키는 딸의 이삿짐을 싸는듯했다.
" 나무는 많이 심어봐서 잘할 수 있어요"
그의 걱정을 읽어 그런지 나는 분명하게 대답했다.
사장은 다시 말을 이어받았다.
" 퇴비는 밑에 깔지 말고 위에 주세요. 생명정이나 흙만 아래 깔고 물조임 확실히 하면 돼요"
몇 년 전 나는 한국 시골에서 난생처음 내 나무를 심어보았다. 그때 물조임도 알았고 퇴비, 생명정 이란 단어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가장 소중한 하나는 식물이 나와 다름없는 생명이라는 앎이었다. 그들도 듣고, 느끼고, 아프고, 웃고, 바람과 듀엣으로 휘파람 부는 것도 알았다.
" 아 그렇군요. 지난번에 퇴비를 밑에 깔고 이식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엔 잘해볼게요"
매화를 suv에 실었다.
키가 커서 뿌리를 운전석 유리까지 보내고 머리를 뒤쪽으로 했다. 나무 머리카락이 뒷문에 걸린다.
" 더 자를까요?'
" 아뇨, 아뇨, 아파서 안 돼요"
사장님에겐 어떤 형태의 헤어짐이고 나에겐 응급환자를 받아 앰뷸런스에 싣고 떠나는 기분이 들었다.
매화는 그렇게 집에 도착하자마자 어머니 품, 흙에 안겨 잠이 들었다. 그날따라 바람이 많이 불어 물조임 하고 나면 매화나무가 제대로 서 있을까 걱정도 되었다.
어린 매화나무는 직선만 아니라 곡선을 품고 있었다.
뿌리뭉치와 반대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휘어져있고 허리쯤 와서 하늘을 향해 곧바로 뻗는다. 키는 2m 50cm 정도. 강풍은 녀석의 위협이 되지 못했다. 지지대를 만들려 했으나 용하게 한반도를 강타한 폭풍과 호우를 견뎌낸다. 거실 대형 유리창 앞에서 손톱 물어뜯으며 녀석의 안부를 종일 물었다.
바람이 거칠게 지나고 정원에 고요가 찾아왔다. 매화 주변엔 재작년 내가 시카고 집에 가기 전 심어놓은 살구나무, 미니 사과나무, 배롱나무, 벚나무가 반갑다며 재잘거린다.
다행이다. 자기 몸의 곡선 때문에, 친구들 때문에, 어머니 덕에 첫날밤 바람을 이긴 것 같다.
어릴 때 나는 직선으로 살았다. 항상 자신감이 넘쳐흘렀고 세상 무서운 것이 없었다. 축구로 예를 들면 국가대표 민재처럼 거침없이 달리고 가감 없이 자신을 드러냈다. 야구로 바꿔 말하면 타석에 들어선 타자에게 언제나 강속구만 던졌다. 커브나 슬라이더는 알지만 사용하지 않았다. 열정적으로 일하고 당돌하게 표현하고 위아래 가리지 않고 솔직하게 행동했다.
하루하루 세월 따라 구속이 줄자, 따라오던 후배들이 내 자리를 차지하고 드디어 나는 아리랑 볼을 던진다. 나를 알던 일의 동지들은 속으론 조롱하며 표시 않고 비웃는다. "꼴좋다. 그러길래 묻어 살라고 했지?" 강속구 없는 투수의 항변은 난동이지 위엄이 아니다.
과거엔 직구 같은 직선만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 나는 곡선 앞에 서있다. 느림과 돌아가는, 익숙지 못한 삻의 기술을 배운다. 내 삶의 남은 시간 동안 태평양을 건너 다니며 나를 다시 정리하기 시작했다.
불필요한 마음의 물건들, 오랫동안 사용했던 나쁜 성격,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지 못한 어리석음, 내가 강속구를 뿌릴 때 실수로 내 공에 맞은 사람들은 얼마나 아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