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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노아 Apr 26. 2023

전화 목소리

미국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가족은 애견루디 돌봐준 공로로 표창장을 수여하고, 부상으로 내가 좋아하는 애드빌과 아스피린, 그리고 근사한 선물들을 쏟아냈다.  군에서 위문품 받던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루디는 목욕하다 진드기 감염사실을 알았고 다리에 머리를 처박고 꼼짝 않던 진드기는 떨어지지 않았다. 수의사는 일단 진드기 약을 발라놓고 하루정도 기다린 후에 떼어보자 했고 그 하루동안 나는 원인 모를 죄책감에 시달렸다. 진드기 사건으로 가족 모두는 근심에 빠졌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목소리를 들은 것은 행운이었다.  


 그날은 근처에서 우연히 발견했던 유명 체인점 ㅇ 냉면집에서 포장 주문하려고 전화를 걸었다.  " "네, ㅇ 냉면입니다" 자동차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리는 젊은 남자 목소리는 성우처럼 단단했다. 아니 기름진 목소리가 아름다웠다. 나 역시 순간적으로 놀람을 자제하고 그의 목소리에 맞춰 차분한 톤으로 주문했다.  목소리에 홀리는? 특별한 순간이었다.


' 야~, 시골에 어찌 저런 목소리가 있나?"


아무래도 시골은 도시에 비해  대꾸가 투박하고 불친절한 사람이 많았다.  

 

" 알바생이나 그 집 아들이겠지 뭐"


동생은 별감흥이 없어 보였다.  아마 머릿속엔 루디 진드기 걱정으로 꽉 차 있는 듯했다.


 냉면집엔 손님이 없었다.


지난번 처음 방문했을 땐 사장님이 직접 요리도 하고 홍보도 하고 계산도 했는데 뽀얗게 생긴 젊은 청년이 나와 잘 준비된 음식을 들려주며 계산을 했다.


" 전화 목소리 참 좋으세요~"


"네?"


살짝 놀라는 표정으로 나를 흘끗 바라보곤 잠시 부끄러운 미소로 "감사합니다"  대답했다.

그는 전화 목소리만큼 반듯하게 생겼다.





 미국 이민초기에 가장 어려웠던 것은 미국인들과 전화하는 것이었다.


 한국인은 각진소리, 직선 같은 목소리가 나고 미국인은 둥근 소리, 곡선 같은 소리가 난다.  당연히 그 소리가 기계 속에 들어가면 서로 충돌한다. 사진을 찍고 얼굴이 나 같지 않다고 느끼는 이유는 기계의 눈으로 읽어 그렇고, 음성을 녹음하고 남 같다 느끼는 이유도 기계의 귀로 기록해서 그렇다.


 게다가 우리 한국인의 목소리는 크다. 그래서 성악도 잘하고 혁명의 함성도 잘 지른다. 아파트에 가보면 아이들 노는 목소리가 늦은 밤까지 쩌렁쩌렁 하늘을 찌른다. 하지만 미국애들은 일찍 자거나 노는 목소리 에도 염소소리가 난다.


 인터넷에 문제가 생겨 AT&T에 전화한 것이  문제였다. 나는 문제를 장황하게 설명했고 테크니션은 주로 듣고 있었다. 그는 중간중간 간단한 기술적 질문을 하고 이것은 해 보았냐 저것은 해 보았냐 확인을 했다. 나의 컴퓨터 지식은 유져 수준인데 그의 질문은 좀 고급이라 이해하기 어려웠 이민 초기라 언어보다 사회 시스템을 이해하지 못했다. 요즘은 '미국영어는 사회 시스템을 알아야 쉽다"라고 주장할만한 정도는 되었지만. 그때는 Debit card의 Cash back 개념도 몰라 당황할 때였다.


"워워워, Calm down " 그는 통화하다 말고 소리 낮추고 천천히 말하라고 했다. 나는 흥분하면,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지 않고 마구 말을 쏟아낸다.  이 치명적 약점 고치느라 수십 년 애썼다. 삶의 빠르기를 "Adagio"로 맞추니 해결되었다.   그때 나는 내가 목소리가 크고 말이 빠르다는 사실을 처음 제대로 알게 되었다.


 "아버지 때문이야" 피식 웃었다. 아버지는 목소리가 크고 말이 많고 어머니는 작은 소리로 차분하게 말하는 분이었다. 나는 그 중간에 있는데 하루는 아버지 같다가 다른 하루는 어머니 같았다.


 나는 그 후 미국인과 전화할 때 목소리를 깔고 천천히 말하는 습관이 생겼다. 그 시작으로 전화 말고 영어를 말할 때도 배에서 음을 내려고 노력했다. 나는 영어 말할 때와 한국말할 때 음성이 다르다.  





 냉면은 참 맛있었다.


청년은 포장도 정성껏 야무지게 해 주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그는 무엇을 해도 성공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음식을 먹다가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울렸다. 이 지역 번호라 일단 받았다.


 "여보세요?"


" 아, 선생님. 저는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ㅇㅇㅇ입니다.

작년에 폐축사 스레트 철거를 문의하셨는데 올해 지자체 지침이 나와서 안내드리려고 전화했습니다"


감동이었다. 작년 문의사항을 메모했다가 한 해가 지나도 확인을 해 주다니...


그와 한참을 상담했다. 그는 친절했고 전화목소리 역시 차분하고 잘 생겼다. 나는 그를 만난 적도 없고 전화로만 두 번째였다. 전화를 끊자 갑자기 대한민국 청년의 미래가 밝아보였다.


식당, 동사무소뿐 아니라 여기저기 저렇게 책임 있고 예쁜 청년이 많겠지?


정부, 언론, 공무원, 회사, 군대, 학교, 산업현장에도...


 청년에게 희망을 보는 것 기성세대의 죄책감일?


 

전화목소리는 기계가 분석한 내 민낯일지 모른다.

   

https://youtu.be/3gC66SRQjM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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