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는 ‘시작’이다
“친구야, 나 드디어 회사 잘렸다.”
핸드폰 너머로 들리는 친구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하지만 나는 그 순간 담담할 수 없었다.
이런 뭣 같은 것들이..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서 가장 성실하고 가장 진실되며 가장 정직한 친구를 자르다니.
이러언 납뿐 놈들. 그 회사 3년 안에 망할 거다. 걱정 말아라.
운전 중이었지만 나는 핸즈프리로 허공에 대고 욕을 욕을 해댔다. 아니 해줬다. 친구를 위해.
너무 착해서 욕도 잘 못하는 친구를 위해. 조금이나마 속 시원~하라고.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라고.
난 욕 같은 건 얼마든지 자신 있으니까.
“뭐 더 필요한 거 있어?”라고 묻고 싶었지만 사실 묻지 못했다.
뭘 해줄 수 있을지 나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월급 많은 일자리를 새로 구해줄 수 있을까? 몇 년 편히 쉬라고 돈을 쥐어줄 수 있을까?
여행 다녀오라고 비행기 티켓을 끊어줄 수 있을까?
아니면 어려서 못 다녀왔던 유럽 배낭여행을 같이 가줄 수가 있나?
몇 날 며칠을 회사도 안 가고 집에도 안 가고 친구와 함께 있어줄 수 있나?
아무리 생각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보였다.
그래도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친구라면.
아무리 생각해도 길 잃은 친구는 내가 꼭 필요해.
나 밖에 없어.
지금 길 잃은 내 친구 녀석이 어디다 하소연하겠나? 어디다 속 시원하게 털어놓겠나?
집에 있는 아내에게 가슴속 응어리까지 다 보여줄 수 있을까?
너무 슬프고 억울한 자기 마음을 자기보다 더 불안해하고 있을 아내에게 다 보여줄 수 있을까?
아니면 다니던 회사에 남은 이제는 전 동료들에게 다 얘기할 수 있겠나? 적어도 내 친구는 그렇게 못할 것 같다. 남은 사람들이 미안해하고 부담스러워할까 봐 착하디 착한 내 친구는 그렇게 못할 것이다.
아니면 부모님에게? 오 노~.
아무리 생각해봐도 지금 내 친구에게 필요한 건 바로 ‘나’밖에 없다.
친구의 얘기를 한없이 들어줄 수 있는 건 바로 우리 ‘친구’들 밖에 없다.
길 잃은 친구에게_수요 산악회
“수요일에 만나서 남한산성 둘레길 갈까? 밥은 내가 살게.”
친구가 회사를 그만둘 때 즈음 나는 매주 수요일이 조금 한가했다. 프리랜서라 일이 없으면 반드시 회사에 있을 필요는 없었다. 항상은 아니더라도 대체로 수요일이 친구와 시간을 보내기 가장 좋았다.
우리는 남한산성을 가고 불암산을 올라가고 남산에 오르거나 여러 공원들을 걸어 다녔다.
또는 싱글 친구의 집에 모여서 수요일 하루 종일 빈둥대며 새새거렸다.
우리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 배정받기 전 겨울방학을 불싸르는 13세 소년들과 같이
한심하고 편안하고 아무 생각 없이 행복했다. 수요일만큼은 그랬다.
처음엔 회사 떠나서 앞으로 뭘 해야 하나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등등 머릿속이 꽉 찬 상태로 불안해하던 내 친구는 어느새 편안해졌고 걸음걸이도 가벼워졌다.
이제는 그 친구도 재취업에 성공하여 언제 그랬냐는 듯이 편안히 회사 잘 다니고 있다.
나도 이젠 수요일에 일이 많아져서 우리는 더 이상 수요 산악회를 할 수 없지만
2019년의 수요 산악회는 정말 큰 일을 했다. 우리는 행복했고 건강해졌다. 살도 빠졌다. 많이 걸었나 보다ㅋ.
누구라도 길 잃은 친구를 만난다면
함께 걷자.
술 한잔 함께 기울이는 것도 좋지만 함께 걷는 걸 더 추천한다.
힘들 땐 기댈만한 친구만큼 좋은 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