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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by 배지

나는 이사를 할 때마다 늘 조금 짜릿하면서도 시원섭섭한 마음이 든다. 짜릿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내 삶의 엄청나게 큰 부분을 차지하는 기존 삶의 터전, 가족의 주거공간 자체를 버려버리고 새로운 곳을 향해 가기 때문인 것 같다. 지친 일상에서 내가 터덜터덜 걸어 들어가면 언제든지 나를 푹 안아주던 그 공간을 떠나 새로운 공간으로 나아간다는 것. 이것은 정말 큰 변화이고 그곳을 바꾼다는 것은 정말 짜릿한 일이다. 그런 와중에 시원섭섭한 마음은, 필요에 의해서 이사를 가기는 가지만 필요한 일이라는 사실과는 별개로 내 마음은 그동안 살았던 공간에 대한 애정이 남아있어서 일 것이다. 매일같이 내가 들어갔던 나의 집. 이사 한 그 바로 다음날부터는 나의 집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집에 되어버리는 것은 법적으로 명백한 일이지만 어쩐지 미련이 많은 나는 심적으로 그것이 명백하지 못하다.


올해 초 나는 집 이사를 했다. 내가 떠나보내야 했던 집은 내 생애 최초로 살았던 내 명의의 집이었다. 그 집에 들어가서 살 때만 해도 정말 나는 그 집에서 평생 살아야지 하는 마음으로 영혼을 갈아 넣어가며 전체 인테리어까지 했었다. 수전과 타일 하나하나 손수 골라가며, 벽지와 바닥을 자식 옷을 해 입히듯이 소중하게 집을 수리했다. 몇 달에 걸쳐 새집으로 만들고 나만의 취향까지 가득 넣어서 완성했던 집이라서 너무나도 사랑이 가득 담긴 집이었다. 어쩌면 남편보다 더 사랑.. 아직도 그 집에 이사를 들어가고 그 밤을 지나 처음으로 맞이했던 그 아침이 생생하다. 아이들은 각자의 방에서 고요하게 자고 있고 나는 아이유의 가을 아침을 스피커로 틀고 내가 열심히 발품 팔아 만들었던 세라믹 아일랜드 식탁에서 스크램블 에그를 하며 아침을 차리고 있었다. 그 청량하게 맑고 살짝 차가운 아침공기까지 완벽했던 그날, 정말 이대로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싶었다. 내 인생에서 어쩌면 가장 완벽한 순간으로, 의미가 있는 한 분기점을 지나는 그런 날 같다고 생각했었다. 물론 계속 살면서는 그런 기분, 그 설렜던 마음은 차차 잊혀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하게 또 주택 갈아타기를 하게 되며 그 집을 떠나던 그 이사 날 만큼은, 이사를 들어가며 설레고 한 없이 기뻤던 그날의 딱 그 무게만큼, 너무나도 아쉬웠다. 거짓말 좀 보태서 지금 나의 팔 하나 누가 잘라낸 것 아니냐고. 멱살을 잡고 물어보고 싶은 마음일 정도였다. 그렇듯 정말 이사는 참 애틋한 구석이 있다.


주민등록초본을 떼어 보면, 태어난 순간부터 시작되는 개인의 주거지 역사를 알 수 있다. 그 종이 한 장에 내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는 낯선 동네의 주소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이 주소들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나의 부모가 어쩐지 앳된 얼굴로 신혼집을 처음 들어가 설레어했을 그런 모습이 먼저 상상된다. 아, 내가 태어나기 전에 신혼집은 구해졌을 테니까 엄밀히 말하자면 신혼집 주소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럼 나의 부모가 3kg대의 조그마한 나를 안고 처음 들어갔을 집의 주소부터는 확실히 알 수 있겠다고 해야겠다. 어떤 이유로 나의 부모는 그다음 집, 또 그다음 집을 구하고 이사를 하고 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곤 했을까. 그 무렵 내 부모의 젊고 싱그러웠을 얼굴이 새삼스레 궁금해진다. 개인들의 역사 속에서도 이사는 꼼꼼히 기록되어 역사와 역사를 이어간다.


이사는 늘 긴장감이 감돈다. 무엇인가 미리 다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막상 또 이사 갈 집 계약서를 잘 작성하는 것 이외에는 할 일이 없다. 포장이사라는 서비스가 발달하기 전에는 대체 어떻게 이사를 했었던 건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그냥 마음만 분주하게 걱정만 하다가 막상 당일이 되면 안녕하십니까! 하고 싱글벙글 들어와 주는 기운 센 아저씨들을 보며 마음을 탁 놓게 된다. 이번 우리 회사 이사를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거대한 인원의 모든 걸 한 번에 싹 잘 옮길 수 있을까? 갑자기 터전을 옮기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고 걱정을 했지만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 우리 회사는 아무 문제 없이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이사를 잘 해내고 새로운 주소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다.


우리 회사의 이사 후 2주 차, 나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튼 우리 회사가 참 마음에 든다. 구사옥에서의 장점도 많았지만 새로운 공간으로의 이동 자체가 사람에게 활력을 주는 기분이다. 점심 먹을 공간들만 해도 기존에는 다 아는 곳이라 발걸음 가는 대로 가면 어디가 많이 기다리고, 이런 걸 먹고 싶을 때는 어디로 가면 되는지, 같이 먹은 사람이 서로 묻지 않아도 다 아는 그런 곳이었는데, 이제는 점심 식당을 한 곳 가려고 하도 두뇌를 풀가동해야 한다. 직장인의 소중한 점심 한 끼 실패하고 싶지 않다면 미리미리 검색도 해야 하고 리스트업도 해야 한다. 과거처럼 그냥 습관처럼, 되는대로 살 수가 없는 것이다. 회사 이사를 오는 바람에 두뇌 활동을 더 많이 하게 되어서 분명히 우리 회사사람들의 머리는 더 좋아졌을 것이다. 일상의 활력과 예기치 못한 아이큐 증진을 던저준 우리 회사의 이사. 과연 우리 회사는 5년에서 7년 후에 다시 새로운 사옥이 지어진 곳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그때의 그 이사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할까? 마흔 중후반의 내가 어떤 마음으로 다시 우리 회사 이삿짐을 포장하고 있을지, 참 궁금하다. 그때도 나는 아마 섭섭하면서도 또 설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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