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순씨의 행복일기 #002

엄마의 첫 입원날

by 조이

2025년 11월 13일.

최종 진단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바로 첫 항암치료 날짜가 잡혔다.

첫 치료는 삼일 후인 11월 16일이었기에, 엄마는 그전에 영양보충을 하거나 심적 채비조차 할 수 없었다.


나는 11월 14일에 마침 출장이 있어 제주도에 머무는 중이었어서 부랴부랴 15일 아침 비행기를 끊고 부산으로 날아와야 했다. 최종 진단을 전해 듣고도 출장에 몰두해 있어 현실 감각이 없었던 내가 15일 아침 병원 앞에 내려 맡았던 공기는 어쩌면 그렇게 폐부까지 시리게 다가왔는지. 그렇게 춥지도 않았던 11월의 어느 날, 나는 앞으로 마주할 현실이란 공포에 그렇게 싸늘하게 압도당했다.


부리나케 1층 원무과에 달려가 엄마아빠를 찾았을 때, 둘은 입원 수속을 앞두고 짐을 정리하고 있었다.


“아빠! 엄마!”


주말이라 고요하던 1층에 내 목소리만 울려 퍼지자 놀라 돌아본 아빠 눈이 금세 새빨개졌고 엄마는 울음 삼킨 목소리로 겨우 날 부르더니 이내 화장실로 도망쳤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난 있는 힘껏 목구멍으로 슬픔을 꾹 눌러 내리느라 잠자코 서있었고 우리는 한동안 감정을 추스른 후에야 입원 수속 후 병동으로 향할 수 있었다.


항암치료 전 날은 입원만 하고, 다음 날 케모포트 삽입 및 1차 항암치료 후 퇴원하는 과정이어서 막상 그날은 환복 하는 것 외엔 할 게 없었다. 그런데도 그날의 위축된 엄마가 가장 짠하게 가슴에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환복하고 체중과 키를 확인할 때 큰 환자 복 안에서 유독 작아 보이던 엄마. 날 보면 애써 괜찮다는 듯이 웃지만 쉴 새 없이 불안해하면서 아빠와 나를 찾던 엄마. 항상 우리 집의 가장 씩씩하고 당찬 기둥으로 우리 곁에 있었던 엄마가 극적으로 대비되어 보이자 처음으로 엄마는 여리고 지켜줘야 할 존재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엄마아빠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병원 내 카페에서 부지런히 수다를 떨던 중, 아빠의 지인 가족이 깜짝 방문했다. 귀여운 아들도 같이 왔는데, 인사성은 밝았지만 수줍음이 많은 친구였다. 친구는 엄마를 위해 편지를 써왔다며 아직 미숙한 솜씨로 혼자 열심히 삐뚤빼뚤 쓴 카드를 내밀었는데 슬픔을 목구멍 밑으로 잘 눌러 내렸다 생각한 나도 내용을 보고 울컥할 수밖에 없었다.


“사모님 빨리 낫게 해 주세요. 기도할게요. OO이가“


엄마는 고맙다고 연신 이야기하며 친구를 꼭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나도 고인 눈물을 엄마 몰래 삼켰다. 우리 가족 모두 눈물이라곤 분할 때만 흘리는 타입이었는데(특히 엄마), 언제 이렇게 상시 대기 중인 수도꼭지를 장착하게 된 걸까? 평소에는 괜찮다 생각하다가도 예측지 못한 트리거에 눈물이 왈칵 터지는 건 사실 다들 애써 눈물을 삼키고 있었기 때문인 걸까?


한참의 대화가 끝나고 병동으로 돌아온 후, 나와 아빠는 엄마를 두고 집으로 향했다(보호자가 상주할 수 없었던 병동이어서, 하룻밤 집에서 자고 와야 했다). 그다음 날은 내가 하루 종일 엄마 곁에서 케모포트 삽입과 항암 치료를 돕고, 퇴근하고 온 아빠와 함께 다시 집으로 복귀하는 일정이었다.


나와 아빠는 그 다음날, 그리고 그 이후 일정만 교수님께 들은 대로 복기하며 캄캄한 차 안에서 서로 슬픔을 각자의 방식으로 이겨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아빠가 먼저 말을 꺼냈다.


“나랑 엄마가 같이 잘 살아보겠다고 결혼하고 여기 이사 와서 아등바등 쉼 없이 달려오기만 한 것 같은데. 이제 좀 재밌게 살아보려 하니 엄마가 아프다니까 내 마음 한 구석이 빈 것 같아. 계속 슬퍼”


“아빠, 엄마가 어떻게 된 것도 아니고, 그러니까 앞으로 우리가 더 힘내서 씩씩하게 같이 이겨내야지! 그런 게 가족이잖아. 아빠가 바로 엄마 곁에 항시 있으니까 더 힘내려고 해 봐. 나도 도와줄게!”


한없이 추락하는 것 같은 아빠를 나는 그땐 무작정 다그치기만 했지만, 사실 아빠가 엄마에게 얼마나 의지하는 걸 아는 나는 아빠가 지난 한 달간 얼마나 괴로웠을지를 간과할 수 없었다. 그제야 직시하면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아 외면해 왔던 아빠를 똑바로 보았을 때, 그 간 한껏 초췌해진 아빠가 눈에 들어왔다. 나보다도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에 잠식된 아빠. 이젠 그런 아빠까지 위태롭고 걱정스러웠다.


아빠를 애써 응원하며 집에 도착했을 때, 이상하게 그날 따라 집이 더 텅 빈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가 여기저기서 분주하게 집안일을 하고 있을 것 같았지만, 그 자리에 엄마는 없었다. 냉장고에 어떤 거 있으니 꺼내먹으라는 메모장, 전자레인지 작동 방법 포스트잇, 켜켜이 쌓여 있는 냉동밥 등 본인의 부재를 걱정한 엄마의 흔적이 보였지만 그것뿐, 사실 우리 엄마는 환자가 되어 병원에 누워 있었다. 어쩐지 그 사실이 이 집에서 온기를 앗아간 것만 같았다.


나는 아침부터 느낀 알 수 없는 추위에 계속 이불속으로 몸을 파고들며 잠을 청했다. 내일은 본격적인 치료의 서막을 알리는 케모포트 삽입과 첫 항암치료가 있는 날이었다. 나라도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했다.


그렇지만 본격적인 시작이라는 건 앞으로 내가 넘어야 할 감정의 고비도 가늠할 수 없단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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