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순씨의 행복일기 #003

by 조이

11월 15일, 엄마가 첫 항암치료를 받는 날이 밝았다.

나는 새벽 6시에 일어나 엄마가 있는 병실로 향했고, 주치의 선생님의 회진을 준비했다. 엄마는 긴장과 불안속에 밤새 잠을 한숨도 못잔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런 엄마 손을 꼭 잡고 오늘 하루종일 내가 곁에 있을거라고 미약한 위안이나마 심어주는 것밖에 할수 없었다.

“TCHP 항암치료라고 해서, 앞으로 6회 동안 퍼제타-허쥬맙-디탁셀-카보플라틴이라는 약물이 들어갈 거고요. 그게 끝나면 최종 CT, MRI로 경과 확인 후 수술하고 12회 동안 표적항암만 진행할 거에요. 선항암할 동안 부작용은 설사, 탈모 등이 있을 수 있구요. 수술 후에는 호르몬 약도 복용할건데 환자 분은 트리플 양성임에도 호르몬은 약한 양성이어서, 그냥 예방 차원에서 약 먹는 거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아침을 먹자마자 회진 온 혈액종양내과 교수님은 앞으로 치료에 대해 조곤조곤 설명해주셨다. 대강 알고는 있었지만 쉽지 않은 긴 여정이 될 거라 생각하며 담담히 듣고 있던 찰나, 엄마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호르몬 약한 양성이라면 안 좋은거 아닌가요?”


암 진단 후 엄마가 모든걸 부정적이고 극단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단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새삼 또 이렇게 겁에 질린 엄마가 안쓰러워서 가엾다못해 짜증이 났다.


“엄마! 그건 선생님이 유방암 케이스가 다양하다보니 그에 따라 치료과정이 달라진다고 말씀하시는거잖아”

“보호자분 말대로 그걸로 인해 예후가 달라진다거나 그런게 아니구요. 호르몬제를 왜 예방적 차원에서만 먹는 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드린 겁니다“


엄마는 선생님이 상세하게 설명을 늘어놓고 간 이후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트리플 강한 양성이어야 좋다는데 어쩌면 좋아를 연신 반복하며 울먹이다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진 않았는지 화장실에서 한참 수도꼭지를 틀다 왔다.


그렇게 다사다난한 아침이 지나고, 엄마는 케모포트 심기 전 간단하게 심장 초음파를 하고 케모포트를 심는 수술을 위해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실에 홀로 들어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며, 엄마 제왕절개하면서 배도 두번이나 쨌는데 이것 쯤이야 잘할 수 있어 하고 외쳤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 무섭고 걱정이 됐다. 지금까지 엄마를 간호하면서 차라리 내가 저 아픔을 감당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고 몇 번은 생각했던 것 같다. 아무리 간병인들이 옆에서 위로하고 안심시켜주어도 환자 본인이 겪는 심리적, 신체적 고통은 오죽할까.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처럼 얻어맞은 암이라는 재난이 얼마나 공포스러울까, 힘듦의 반이라도 떼올 수 있었다면..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케모포트 삽입을 무사히 마치고, 병실에 돌아와 꿋꿋하게 저녁도 먹었다. 아침보다 밝게 웃으면서 힘내는 엄마가 안심됐지만, 오른쪽 쇄골에 도드라진 삽입 흔적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그래서인지 엄마가 케모포트 삽입은 물론 아예 암환자라는 사실 조차 잊고, 주변 사람들 때문에 웃음을 애쓰는게 아닌 진심으로 행복하게 웃을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랐다. 그때쯤 행순씨의 행복일기를 써봐야겠다 하고 어렴풋이 생각한 것 같다.


아무튼, 석식 후 저녁부터는 네 가지 약물이 순차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첫번째 항암이다보니 표적 항암은 1시간씩, 일반 항암은 각각 1시간, 30분 이렇게 들어갔는데 2주기부터는 표적 항암의 양과 시간을 절반으로 줄인다고 하셨다.


처음 약이 들어갈 때 확실히 센 약물 같다하고 잠깐 미간을 찌푸리는 것 외에는 엄마는 대체적으로 약을 잘 맞았다. 중간에 넷플릭스도 보고, 목욕탕 아줌마들과 수다를 즐길 여유도 가질 만큼.


문제는 두번째 약인 허쥬맙이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들어가기전에도 오한이나 구역감 같은 부작용이 있는 약이라곤 들었으나, 속도가 4단계까지 올라가도 엄마가 꽤 평온하길래 괜찮은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핸드폰에 정신 팔려있던 나를 엄마가 나지막히 불렀을 때 뭔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나 뭔가 몸이 이상해.. 몸살 같구..”


엄마 얼굴이 수상하게 상기되어 있어서 엄마 의견을 물어볼 것도 없이 스테이션에 간호사 선생님을 찾으러 나갔다. 간호사 선생님을 모시고 온지 겨우 30초도 채지나지 않았는데 엄마는 온몸을 말그대로 사시나무처럼 떨면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몸이 너무...너무 떨려 너무 떨리고 이상해...”


말 끝조차 제대로 맺지 못하는 엄마를 보며 나도 생경한 풍경에 순간 온몸의 피가 식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최대한 따뜻하게 엄마를 감싸주고 꼭 손을 잡아주면서 엄마 불안해도 내가 옆에 있을께, 엄마 떨림이 가라앉을 때까지 내가 계속 지켜볼께하고 되뇌이는 수 밖에 없었다. 간호사 선생님은 금방 수액을 중단하고, 오한과 떨림이 잦아드는 약물을 사이드로 주사해주셨다.


하지만 또 다른 문제는 때마침 퇴근하고 엄마를 찾아 온 아빠였다. 딸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으니 훨씬 안정된 모습의 엄마가 반겨줄거라 기대했던 아빠는 낯선 엄마의 모습에 본인의 마음이 먼저 무너졌던 것 같다. 아빠가 병실에 들어오기 전 내가 먼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마주한 아빠는 몇 분은 초점이 흔들리는 동공으로 괜찮다괜찮다만 중얼거리며 앉아있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그 순간 아빠는 공황이 올만큼 두렵고 마음이 무너졌다고 했다. 하긴 지금까지 애써 둘이서 부정적인 결과를 들어도 아슬아슬한 모래탑을 쌓으며 괜찮다고 믿고 있었을 텐데 눈으로 직접 본 엄마의 아픈 모습은 얼마나 충격이었을 지. 그건 공들였던 모래탑이 와르르 흩어지며 미처 준비하지 못한 우리 가족에게 상황의 심각성을 낯낯이 드러내주는 순간이었다.


다행히 엄마는 부작용 방지 약물을 맞고, 그 이후 남은 약까지 씩씩하게 잘 맞았다. 우리의 놀란 모습이 엄마는 더 걱정되었는 지 다 약물이 그만큼 효과적이어서 그렇겠지 그만큼 잘 들을거야 라는 말을 해줬다. 지금 이 순간까지 서로를 더 걱정하고 가여워하는 마음이란. 나는 간병하며 이런 가족적 순간을 경험할 때마다 진정한 사랑이란 서로를 추앙하고 갈구할 때가 아닌 서로를 애틋해하고 가련히 여길 때 발현되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연민의 삼각지대에 갇혔다.


그렇게 모두가 서로를 안쓰럽게 여기던 첫 항암치료가 막을 내리고, 나는 출근을 위해 먼길을 올라가야 했다.

그리고 그때부터가 엄마아빠 앞에서 꾹꾹 눌러놓았던 내 불안과 슬픔이 스믈스믈 새어나오는 시작이었다.


나는 결국 올라가는 기차 안에서 간병 휴직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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