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첨지 Sep 05. 2019

첨지스러운 나의 인도여행 - 산티니케탄 1

산티니케탄의 시장. 자세히 보면 사람들이 다 나를 쳐다보고 있다.

기차는 세 시간 정도를 달려 산티니케탄에 도착했다. 천장에 선풍기가 수십대 달린 유리창 없는 기차에서 햇빛과 바람의 원투 콤보에 신나게 얻어맞은 나의 왼쪽 얼굴은 따끔거렸고, 온몸의 피부는 끈적거려 샤워가 절실해졌다. 왜 그런 거 있지 않나, 바닷바람 맞으면 처음엔 포카리 스웨트 광고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마냥 좋고 시원한데, 나중에는 끈적하게 땀 차는 거. 그때가 딱 그랬다.


나의 친구 수딥은 산티니케탄에서의 숙소 예약을 도맡아 줬을 뿐만 아니라, 숙소까지 이동할 교통편도 준비해 주었다. 내리쬐는 햇살에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역을 나서는데 체구가 아담한 청년 셋이 다가와 다짜고짜 일본어로 "실례합니다 김민주씨인가요?"라고 말을 거는 게 아닌가. 인도에서 인도 청년들이 뜬금없이 일본어로 말을 거니 깜짝 놀라, 그렇다고 근데 니들은 누구냐고 물으니, 자기들은 수딥에게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학생이라고 답했다. 그리고는 숙소까지 데려다 드리러 왔으니 어서 오토바이에 타시라고 정중하게 말했다. 내 기차표를 예약해줬던 수딥이 기차가 도착할 즈음 내 마중을 나와 달라고 학생들에게 부탁을 한 것이었다.

평화로운 산티니케탄의 풍경

아니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마중까지 나오고 양손 고이 모아 인사를 하는지 참. 그렇게 멋쩍은 마음을 안고 탄 오토바이는 산티니케탄의 시장을 달려, 고즈넉한 거리를 지나 내가 묵기로 예정된 볼푸르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했다. 아담하고 착한 청년들은 나를 내려주고 꾸벅 인사를 한 후 사라졌다.


숙소는 대학 부속의 게스트 하우스로, 대학 관계자의 초대가 있어야만 숙박 가능한 곳이었다. 체크인을 하고 키를 받아 들어간 방 한가운데에는 침대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었다. 방의 네 귀퉁이에는 누군가 성스러운 의식이라도 치렀는지, 뭔지 모를 것이 흘러내린 노오란 자국이 선명했고. 방의 문은 제대로 잠기지 않아 바깥에서 안을 들여다볼 수 있을 정도로 큰 틈이 벌어졌다.

 

콜카타에서 나의 숙소 찾아 삼만리 스토리를 들은 수딥은 이렇게 말했다. “민주가 기뻐할 만한 소식이 있어! 산티니케탄의 숙소는 200루피 밖에 안 해!” 친구야… 가격은 좋은데 살짝 무섭잖아. 고마움과 원망스러움이 섞인 미묘한 감정으로 모기를 피하며 샤워를 하고 나와, 산티니케탄의 시골길을 걸었다. 푸른 하늘 아래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소들을 보자니 마음이 절로 평화로워졌다.


그 평화를 혼자 즐기기 아까워 사진으로 풍경을 담아 찍어 친구 몇 명에게 전송했다. 하지만 시골이라 그런지 인터넷이 많이 느렸다. 난 분명 3G 인터넷이 되는 심을 샀는데, 왜 G, E, PDME와 같은 듣보잡 인터넷이 뜨는 걸까. 여담이지만 한 친구는 이를 일컬어 G는 garbage의 약자요, E는 E런 씨X의 약자라 하였다. 참 적절한 표현이다.


산티니케탄의 시장 풍경

그렇지만, 산티니케탄은 내가 상상하던 인도의 시골마을 그 자체였다. 시장은 낡고 어지러웠지만 인도스러움이 물씬 느껴졌으며, 콜카타처럼 끊임없는 경적소리에 귀를 막는 일도, 사람에 치이는 일도 없었다. 조금만 걸어서 대로에서 벗어나면 차라고는 한대도 다니지 않고 소들만이 간간히 들판에서 풀을 뜯고 있는, 한적하고 탁 트인 공간이 나왔다. 인터넷이 안되면 뭐 어떠랴, 핸드폰에 담은 음악을 들으며 길을 걸으니 절로 행복해졌다. 이제야 내가 바라던 인도에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산책을 마치고, 일본 유학시절의 친구 아니샤를 만났다. 반갑다고 한차례 부둥켜안고 꺄악 소리 지른 다음, 그녀는 나를 군만두 푸드트럭으로 데려갔다. 콜카타의 노점상을 보고 그 위생상태에 경악하여 인도의 길거리 음식을 꺼리던 나에게, 그녀는 이곳의 음식은 정말 맛있으니 한 번 먹어보라며 권했다. 트럭 안을 슬쩍 들여다보니, 확실히 콜카타의 노점보다는 훨씬 깨끗해 보였다. 뜨거운 기름에 튀기니 나쁜 균도 다 죽겠지. 에라 모르겠다 하고 한입 베어 문 만두는 그냥 매우 뜨거웠다. 입천장을 다 데고, 조심스럽게 먹은 두 번째 만두에서는 한국의 맛이 느껴졌다. 집 앞 중국집에서 짬뽕과 짜장, 탕수육 소로 구성된 세트 1번을 시키면 따라오는 군만두의 맛. 바로 그 맛이었다.

내 입천장을 공격한 만두. 저 빨간 소스가 매우 매웠다.

만두 한 그릇을 뚝딱한 후, 150 루피를 주고 석류 한 봉지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인도에서는 밤이 되면 밖에 나가면 안 된다 들었지만, 산티니케탄에서는 많은 여자들이(대부분 학생인 듯하였다) 밤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아니샤도 이곳은 별로 위험하지 않다고 했다. 콜카타에서는 긴장하고 경계하며 다니느라 가방에서 핸드폰도 제대로 못 꺼냈는데, 산티니케탄에서는 긴장이 풀려 카메라를 어깨에 걸치고 다니며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아주 허술하게 들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소매치기를 하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불빛이 거의 없는 길에서 올려다본 하늘에는 별이 몹시 많았다. 숙소까지 데려다준 친구를 배웅하고, 기분 좋게 방 안으로 들어가 어찌어찌 문을 잘 잠그고 침대에 누웠다. 아 이제 인터넷 좀 하고, 친구들이랑 이야기 좀 하다가 자야지. 흐뭇하게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가, 시무룩하게 다시 집어넣었다. 방안에서는 인터넷이 터지지 않았다. 이래야 인도지!


작가의 이전글 첨지스러운 나의 인도여행 - 콜카타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