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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스피커 Jul 31. 2022

신념 나부랭이가 준 이득

알아주지 않아도 지키는 신념이 있는 자는 행복해. 독립출판이 낳은 기적.

글쓰기는 시간 내기, 에너지 쓰기, 집중하기, 삶의 절제로 놀지 못함 등 고통이 따르는 노동이다. 더군다나 전업작가가 아닌 나처럼 온종일 아웃풋이 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치열한 하루 끝에 글쓰기까지 한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취미 변태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좌뇌를 쉬게 하고 감성지수를 올려주며 현실의 갑갑함을 잊게 해주는 그 좋은 드라마, 더운 여름밤 마음에 맞는 친구들과 둘러앉아 상사 부하 남편 등을 안주와 함께 한입에 털어 넣으며 들이키는 뼛속까지 시원한 생맥주 한잔을 마다하고 글 따위를 쓴다니.


그런데 지난 4개월간 바로 내가 그러했다. 올봄과 여름의 거의 모든 고단한 저녁들과 모든 주말을 갈아 넣어 만든 나의 개인저서인 '따뜻한 스피커의 보스코(보이스&스피치 코칭)'의 책을 지난주에 끝냈다.


마라톤 선수가 달리기가 쉬워서 달리는 게 아니듯 글쓰기가 쉽다면 나는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모순이다.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서 계속 쓰고 있는 것이다.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지 모르지만, 글을 쓰지 않으면 다른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상상력이 완전히 고갈되지 않는 한 내가 무턱대고 할 수 있는 일이 글 쓰는 일인데.
글을 잘 쓰는 비결을 묻자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의 작가 마크 트웨인은 말했다. "나 자신이 글 쓰는데 소질이 없음을 발견하는 데 15년이 걸렸다. 하지만 글쓰기는 포기할 수 없었다. 계속 써야만 했다. 왜냐하면 그때 이미 나는 유명 작가가 되어 있었으니까."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꾸준히 글을 쓰는 사람들은 매일 고백하고 찬양한다. 글을 쓸 때의 내 외면의 번민과 고통의 다리를 건너기만 하면 어떤 노동과도 비교할 수 없는 치유와 보람의 열매가 그렁그렁하다고.

삶의 모든 것이 글쓰기고 글쓰기의 마침표는 '치유'라고 매일 쓰는 작가들은 말하며 주기적으로 글쓰기를 찬양하는 글을 올리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긍정한다. 그러나 나의 경우는 아직 그렇지는 않다. 아마 글쓰기를 추앙할 만큼 양과 질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해서일 것이고 글쓰기보다 더 찬양할 것들이 내 삶에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혼자 추정해본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떤 것이 진정 좋아지고 즐기는 수준이 되려면 꾸준히 해서 실력이 늘거나 어떤 식으로든 증명이 되어서 희망이 보이거나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꾸준히'라는 것이 양도 한계도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어서 나만의 루틴으로 계속 의미를 부여하며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우리는 변함없이 성실한 사람들을 알아주고 믿는 것이리라. 희소하니까.

나도 희소 한자가 되고 싶었다. 그 어렵다는 첫 개인 책을 꼭 쓰고 싶었다. 그러나 장애물은 엄청났다. 일단 중년의 체력은 저녁 8시가 넘으면 연기가 되었으며, 인간관계와 책임져야 할 가정사가 그러했고 연약한 마음의 소유자인 나는 갖가지 고민으로 집중력 저하까지 드러나 나의 발목을 잡았다. 모든 것을 예상한 나는 이 작업의 유료 코치를 골대 앞에 세워두고 그 코치에게 묻지도 않은 나의 일상을 보고하며 나를 지켜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매주 한 개 또는 두 개씩 골인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리고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이 브런치에 매일은 아니어도 필이 올 때마다 써두었던 힌트 같은 글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았었다면 이 작업은 4개월이 아니라 1년은 족히 걸렸을 것이고 당연히 아직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브런치 작가였던 것이 고마운 부분이다.

 

2년 전 공동저서를 쓴 이후에 한 번도 잊지 않고 품고 있던 소망 또는 욕구가 있었다. 나의 페르소나중 어떤것이라도 좋으니 '중간 끊김'없이 엮어 끝을 낸 개인저서를 갖고 싶다는 욕구였다. 부족하고 연약한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서사가 있고 오프닝과 클로징이 있다. 그것을 다 써보고 싶었다. 손수건 같은 한 조각 말고 그래도 한 계절은 덮을 수 있는 이불 한채 같은 책을 쓰고 싶었다. 이번엔 끝을 보자! 4개월 내내 내게 외쳤던 신음이자 구호였다. 지난주 드디어 드디어~! 책의 3교 퇴고 그리고 오타와 오류까지 최종 점검을 마치고 드디어!다 끝. 났. 다.


이번 책 쓰기를 하면서 가장 심각했던 내면적 갈등은 사실 어떤 방식으로 출판을 하느냐였다. 편집자와 디자이너까지 섭외하며 독립 서적을 낼 것인가. 아니면 기획 출간으로 투고를 할 것인가. 하지만 최종적으로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 작은 신념을 따르기로 했다. 나 같은 무명의 출간 작가는 책 판매와 마케팅 시 작가의 부담이 엄청 큰 현 출판계의 현실을 남편의 기획출판 과정을 보며 직접적으로 알게 되었고, 출판사의 나름의 속사정도 좀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윽고 마음을 단순하게 정리했다. 단순한 음식과 단순한 생각정리는 의외로 큰 힘을 발휘한다.

시끄러운 에너지는 잠재우고 좋은 에너지는 모아 나의 책에 질을 높이고 노하우를 더 눌러 담는 것에 쓰기로. 결국 독립 서적을 내기로 한 것이다. 좋은 콘텐츠인데 아깝지 않냐고 나의 책 쓰기 코치나 주변에서 투고라도 해보라고 여러 차례 권유했고 잠깐 흔들리기도 했지만 나는 결국 내 마음의 선을 넘지 않았다. 독립 서적. 꼭 필요한 사람이 주문을 하고 주문 후 제작이 되는 방식이라니. 정말 매력적이지 않은가. 그 누구에게도 '억지'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자부심. 이 책이 갖고 싶거나 꼭 필요한 사람에게 가 닿을 거라는 그 바보 같은 순수 나부랭이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내려놓음의 미학인가? 기적이 일어났다. 책의 퇴고를 하는 동안 브런치에 쓴 나의 글을 보고 한 출판사가 출간 제안을 한 것이다. 현재 계약을 앞두고 있다. 완전히 그러할 수는 없겠지만 그 책은 내가 마케팅도 판매 부담도 갖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돈받고 쓰셔야죠" 출판사대표의 이 말은 내 귀를 의심하게 했다.고생 끝에 낙? 간혹 고생 끝에 고생?! 그러나 그 고생은 격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니 항상 고생을 너무 고통스러게만 여기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아직도 솔직히 어리둥절하다.

기적은 항상 이런식이다.99펀센트의 노력과 1프로의 기적이 오늘도 아마 세상 곳곳에 일어나는 중일것이라 믿는다.


나의 개인 첫 책 표지가 결정되었다. 따뜻한스피커 단톡방에 있는 따뜻한 스피커들과 영어 원서 스피치팀, 그리고 가족들과 귀한 인연의 디자이너들 등의 의견을 취합했다. 즐거웠다. 출세했다. 표지 투표도 다해보고.

따뜻한 스피커의 보스코 (출간 등록 전)


따뜻한스피커의 보스코의 목차


한 사람이 자신의 첫 개인저서를 내어 놓는다는 것. 자신의 삶이든 업이든 페로소나 하나를 한 호흡으로 쓴 책을 바느질하여 세상에 밀어넣어 본다는 것. 그것은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내가 부족하다' 는 것을 세상 만방에 드러내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취소하기에는 이제 늦었다. '나'라는 재료를 갈아 넣어 만든 자기 계발서인 나의 책. 그 안에 녹여져 있는 정직한 성찰들이 간절히 가 닿길 바랄뿐이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으니까.


이제 좀 쉬나 했더니 두 번째 책을 시작해야 한다. 출판사의 편집자가 보내온 이메일의 내용 중 '내 글을 많이 손댄 것 같아 미안하다' 는 말이 있었다. 근데 나는 왜 이렇게 그 말도 좋은지. 전문가가 손대준다는데 바랄것이 없다. 맞다. 나는 줏대없는 무명작가다. 신념은 무슨. 가만 보니 고집도 신념도 없는 내 본모습도 괜찮은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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