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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따뜻한 스피커 Aug 16. 2022

불안함에 이름을 지어주고 손님처럼 인사나누기

불안함의 종류는 다양하고 우린 다 불안해

사실 이름을 짓고 불러주기는 명상법 중 하나다.마음 챙김 명상에서는 감정들에게 이름을 불러주라고 권한다. 슬픈 감정이 찾아오면 "슬픔, 너구나. 어서 와." 하고 이름을 불러주는 것이다. 불안과 두려움에게도 "안녕, 불안. 안녕, 두려움." 하고. 고통스러운 기억과 함께 분노가 일어나면 얼른 이름을 불러 준다." 안녕, 기억. 안녕, 분노. 어서 와. 또 왔네." 하고 인사를 나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가 주인이고 감정은 손님들인데 자신의 집을 영원히 내줄 필요는 없다.
 - 류시화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중에서


 최근 나의 전문분야인 스피치 코칭 관련 첫 단독 저서가 출간되고 출판사와 두 번째 책 계약까지 마쳤다. 늦었지만 무명의 인생에 이 정도면 감사하고 즐거운 이벤트임에 틀림없다. 불행도 행복도 줄줄이라는 말처럼 여름 특수를 맞은 '아카데미'까지 학생들의 스피치 수업이 쉴 틈 없이 열리고 있으니 아쉬움 없이 행복을 느끼는 순간들만 있어야 한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 밀려오는 이 불안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뭐긴 뭔가! 그것은 바로 '나'라는 사람의 페르소나가 그저 한가지로만 설명되는 것은 당연히 아니기 때문인 거다. 안 그런가?

 

좌충우돌 스물 하나, 스물셋. 자신의 꿈을 불안하게 직시하며, 얄짤없는 세상에 도전의 방망이질을 계속하고 있는 두 아들의 엄마가 나이고, 얼마 전 암에 걸렸다고 소식을 전해온 남동생의 누나가 나이며, 이렇게 하루하루 따박따박 살아내야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문제들 앞의 생활인이기 때문인 거다.


며칠 전 무덥고 습한 주말 여름밤 남편과 아들들과 영화를 보고 차를 타고 돌아오는데 갑자기 왈칵 마음이 쪼여오고 눈물이 치밀어 올라왔다. 시종일관 정신없이 싸워대는 이 영화는 최근 인기 1위 라는데 그럴 리가 없는 둘째가 영화를 보다가 잠이 든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이내 나의 오지랖 정신 지평은 20대 청년들의 막막함과 분투에 가 닿았고 이윽고 심연의 줄기는 나의 20대까지로 뻗어져 오버랩이 되었다. 부모님의 사업실패로 변두리 허름한 동네로 이사를 가고 길고 긴 출퇴근 시간을 짓 이기면서 직장을 다녔었다. 매달 받는 월급은 부모님께 고스란히 생활비로 내놓았던 시절. 나의 빼앗긴 20대. 하지만 그 불안하고 초라해 보이던 20대 때 나는 사람들에게 매일 백번 씩 실망하면서도 인생의 질문들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지금은 나의 가치관이 된) 이윽고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게 되었고 한 남자와 가장 뜨겁고 진실된 사랑을 했다. 하지만 잊을수는 없다. 그 과정마다 막막 막연하고 끝도 없이 번민으로 울며 불면증에 시달리던 수 많았던 어둠의 밤들을. 20대는 그렇게 나의 불안함의 극치 달리던 시간이었다.


우리 집 둘째는 요즘 아침 8시부터 오후 2시까지 매일 6시간씩 강남의 한 PC방에서 손님 응대, 청소, 요리, 서빙 설거지 알바를 하고 있다. 알바가 끝나면 신성한 노동으로 지친 둘째는 자취방에 도착하면 하염없이 잠이 든다고 한다. 그리고 잠이 깨면 도전 중인 오디션 준비를 한다. 자신의 꿈을 향한 대가를 치르느라 몸에서 김이 난다나. 그래도 우리 부부는 함부로 나서지 않는다. 고등학교까지 사랑과 음식으로 먹이고 입혔으니 이제 스스로 자신의 선택에 책임지는 삶을 살게 해야 한다. 사실 뭐 실제 돈도 별로 없는 우리 부부는 각자의 일을 통해 번 돈을 다시 우리 스스로의 공부에 투자하고 있으며 여분의 돈이 있다면 기부를 선택했다. 그런데 말이다. 정말이지 차라리 주는 것이 가장 쉽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켜보는 것이 가장 어렵다. 어제는 둘째가 아르바이트하는 곳에 하도 구경을 오라고 해서 난생처음 PC방 견학을 했다. 그리고 아들이 주방에서 손수 끓여내어 온 신라면을 먹었다. 라면은 맛있는데 주방에 쌓이는 아들이 해야 할  설거지들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달려가서 해주고 싶어서 가슴이 매였다. 유난스럽다 하지 마라. 난 엄마다.   

다양한 먹거리?!요리라곤 모르는 우리 아들이 만드는 것들이다!!세상에!!어제 아들이 끓여준 신라면을 먹으며 난생처음 경험한 pc방 풍경


'심리학이 불안에 답하다'라는 책에 자극과 성취도에 대한 유명한 쥐 실험이 소개된다. 쥐에게 임무를 주고 그 임무를 잘 수행하면 전기충격을 가하지 않고, 잘 수행하지 않으면 전기충격을 가하는. 여러 강도로 실험을 해본 결과 중간 정도 크기의 전기충격을 받을 때 쥐가 가장 빠르게 임무를 달성했다고 한다. 재밌는 것은(?) 전기충격이 너무 약하면 즉 불안도가 너무 낮으면 오히려 성취도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시험이 다가왔는데 너무 긴장이 안되면 오히려 집중을 못해서 시험을 잘 못는 경우가 그렇고, 스피치 발표를 할 때도 긴장감이 없는것이 좋은것이 아니고  발표의 질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책 따뜻한 스피커의 보이스 스피치 코칭 중 1장 스피치누구나잘할수있다 p.35)


물론 불안도가 지나치게 높으 성취도가 최저로 떨어진다. 불안의 노예가 되어 나 자신을 통제할 수 없게 되고 특정한 것을 '탐닉' 하게  불안은 불안을 낳는다.


세대를 초월해서 우리를 항상 방문 중인 '불안'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항상 옵션이다. 작가 류시화의 말처럼 인사를 건네자. "안녕, 불안 또 왔니. 어서 오렴. 이번에는 나와 어떤 이야기를 나누어볼래." 그 존재를 인정하고 이름을 불러주고 받아들임으로 인해서 이내 마음이 50프로는 편안해진다.

한 학자는 우리가 불안한 이유는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아서라고 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잘 모를 때 안정감이 없고 불안하다.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내가 누구인지 알면 나의 존재에 대한 단단한 인식이 있으면 불안하지 않고 그 불암함의 길이도 짧다.

또한 불안할 때는 우리의 시야가 좁아서 그럴 때가 많다. 불안한 현재를 바라보는 눈을 들어 크고 넓 보자. 지금 일어나는 일은 내 인생의 아주 일부분일 뿐이니까. 과정이니까.


시야넓게 열리는 순간은 새로운 환경 새로운 사람 새로운 배움이 일어날 때이다. 오히려 에너지를 끌어모아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하면서 불안함과 잘 사귀는 방법을 하나 더 추가하자.


꿈꾸느라 불안한 20대도, 잘하고 있는가 의심이 드는 30대도, 무엇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는 40대도, 돈도 없고 체력도 약한데 어떻게 살아야 하나 막막한 50대도 오늘 인사하라. 


안녕 불안 안녕 두려움. 어서 와. 또 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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