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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멸다 어질 현 Apr 25. 2024

아빠랑은 얘기 잘하며 가던데, 엄마랑은 얘기 안 하네

단편으로 전체를 정의하지 말라!

등교 길 골목은 인도가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학교까지 이어지는 골목으로 들어가는 차량은 제한하지만 그 골목길에서 나오는 출근 차량은 막을 수 없다. 그래서 교통지도를 하시는 어르신들이 계시다. 얼마의 시급을 받고 아침마다 나와 주시는 고마운 분들이다. 


작년에는 아이 아빠의 출근시간이 늦어서 아이 등교를 담당했었다. 그리고 올해는 근무지가 바뀌면서 아침 시간은 오롯이 나의 몫이 되었다. 아침을 챙기고 엄마와의 등교를 하던 3월 첫날부터 교통안내 어르신 한 분이 아는 척을 하신다. 

"아빠랑 얘기 정말 잘하면서 가던데"

"아빠랑 어쩜 그렇게 말을 재미있게 하고 가는지.."


수년간 야근을 해오던 남편은 아침 출근 시간이 늦었다. 

늘 12시가 다 되어야 집에 오기에, 평일에 아이가 아빠와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시간은 등굣길이었다. 

사실 아침 식사 시간과 등교를 준비하는 동안에 얘기를 나눠도 되지만, 

딱히 열심히 대화를 나누려는 의지를 아이 아빠가 내비치는 것을 본 적은 없다. 

눈 뜨자마자 핸드폰을 붙들고 보고 있는 아이 아빠

아이 준비가 늦으면 빨리 준비하라고 재촉만 할 뿐, 소파에 앉아 핸드폰을 보고 기다린다. 

그리고 문 밖을 나서면...............


학교까지 가는 7분이 아이가 그간 하고 싶었던 얘기를 아빠에게 쏟아낼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다! 


주로 포켓몬 이야기이다. 

"다음 게임은 뭘로 준비할까?"를 고민하는 아이 아빠는 아이보다 더 열심히 포켓몬 게임을 한다. 

아들을 위해서 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몰래 슬쩍 게임을 열어 포켓몬을 잡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다. 

포켓몬 게임만 너무 잔뜩 해서 다른 곳에 관심을 돌리고자 체스를 시작하게 만들었다.  

다행히 체스에 관심을 갖는다.

그래서 아들과 아빠가 나누는 대화 주제가 포켓몬에 이어 체스로 넓혀졌다. 결국 둘 다 게임...

그렇게 작년 학기 중 평일에 아빠와 대화를 나누는 유일한 시간, 둘만의 등굣길이 완성되었다. 


아빠와 재잘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나 보다. 

교통 안내 어르신은 작년에 보신 두 부자의 모습을 수차례 내게 되뇌어 말씀하셨다. 

"아빠와 얘기 잘하고 가던데"

"아빠랑 어쩜 그렇게 말을 많이 하던지"


인사와 간단한 대답만 남기고 학교를 향해 열심히 걸어갈 뿐 딱히 다르게 대꾸할 말이 없었다. 

두 남자가 무슨 대화를 하는지 나는 뻔히 알고 있기에... 포켓몬과 체스 게임.....


그러던 오늘 


"아빠랑은 얘기 잘하던데 엄마랑은 얘기 잘 안 하네"


헉.

이건 무슨 말도 안 되는 정의인가. 


평일에는 아빠와 대화 나누는 시간이 10분도 안되는데?! 

그래서 등교시간에 최대한 열심히 쏟아낸 건데?!

그것도 대부분은 게임 이야기로....


졸지에 엄마와는 대화를 꺼리는 아들을 만들어버리셨다. 


그래서 외쳤다 "게임 얘기 하는 거예요". 


억울하다. 


우리 아들이 나와 있으면 얼마나 수다쟁이인데. 

학교 생활은 물론이고, 학원, 읽은 책, 본 영상, 놀이, 친구들 이야기까지 얼마나 공유하는 이야기가 많은데!!!!!!!!!!


앞을 스쳐가는 단 몇 초의 시간만으로 사람을 이렇게 정의 내리시다니. 


지나가는 말로 흘려버리면 되지만

억울해서 글이라도 남겨야겠다. 


일부(티끌 같은 시간)만 보고 전체를 판단하고 정의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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