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생각하는 워커홀릭 여성 동지들에게 부침
우리 사랑의 결실.
한 남자를 사랑해서 영원을 약속하는 것.
언제, 어딜가도 함께할 수 있는 영혼의 단짝을 얻게 되는 일.
...이라고만 생각했다.
내 삶에 결혼이 이처럼 큰 전환점이 되리라는 건 정말 몰랐다.
그래, 난 결혼이라는 걸 너무 쉽게 봤다.
결혼할 때 내 주변엔 결혼 생활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줄 만한 지인이 없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한 채 많이 당황하기도 했다.
그래서 결혼을 생각하는,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여성들을 위해 이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다. 뭐든, 계약서 도장 찍어놓고 하는 협상보단, 도장 찍기 전 협상이 더 낫지 않은가.
먼저 결혼 전과 후, 나의 일에 있어 달라진 점에 대해 결혼을 생각하는 워커홀릭 동지 여러분께 설명하겠다.
첫째, 여러분은 이제 부모님과 다른 집에 산다.
이게 무슨 당연한 얘기냐고?
여러분이 만약 그동안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면 간과하기 쉬운 문제가 있다. 집이라는 공간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해야할 일이 무척이나 많다는 점이다. 그동안 회사에서, 학교에서 열심히 열정을 불태우고, 집에 와서 차려진 밥을 먹고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뒹굴거리곤 했는가? 혹은 집에 와서 추가로 자격증 공부를 한다거나, 역량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는가?
이제는 하나부터 열까지. 집안에서 행해져야 할 모든 노동은 모두 여러분과 여러분의 배우자가 해야할 몫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집에는 먼지가 소복히 쌓이고, 지난 달 요금을 낸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눈 깜짝할 새 이번달 고지서가 집에 배달된다. 허물처럼 옷을 벗어놓아도 빨아서 말리고 잘 개서 옷장에 넣어주던 엄마(혹은 아빠)는 이제 나와 다른 집에 산다. 퇴근 후, 맛있는 밥과 국이 만들어져 있는 마법은 더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이게 사소한 것처럼 느껴지는가? 해 봐라.
이제 여러분이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은 대폭 줄어들게 된다.
자기계발을 위해 쓰던 시간, 마음껏 휴식하던 시간을 포기할 각오가 되었는가?
둘째, 이제 여러분은 인생의 방향키를 혼자 돌릴 수가 없다.
여러분의 나이는 20대 후반에서 30대, 40대 이상까지 다양할 것이다.
그중 연락없던 친구에게서 오랜만에 연락오면 십중팔구 결혼 소식이라는 그 시기.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은 결혼의 성수기다.
동시에 이 나이대는 의지와 여유가 있다면 얼마든지 진로를 바꾸거나, 새로운 업무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나이라 보인다. 하지만 여러분. 여러분이 결혼을 한다면 그것은 이제 여러분 혼자만의 결정으로는 이뤄질 수 없는 일이 된다. 부부라는 경제공동체를 꾸렸기 때문에, 당신은 이제 배우자와 상의해야 한다. 배우자는 당신의 부모님이 아니다. 여러분 자신의 책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하지만 만약 여러분이 협조적인 배우자를 만난다면, 여러분의 새로운 도전에 대한 든든한 투자와 지원을 받게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여러분에게 굉장히 큰 힘과 원동력이 될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기억하라.
배우자는 당신의 부모님이 아니다.
(실제로 나의 경우,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기 위해 남편과 1년여의 대화를 거쳤다.)
셋째, 만약 자녀를 낳는다면 여러분이 세운 계획은 적어도 2년 가량 미뤄질 수 있다.
5년 후, 10년 후 계획을 세워두었는가? 성취해내고 싶은 목표가 있는가?
만약 여러분이 결혼 이후, 임신과 출산을 생각한다면 그 목표는 어쩔 수 없이 지연될 것이다.
임신, 출산, 육아에는 변수가 꽤나 많다. 임신과 출산 이후, 여러분의 건강 상태는 지금과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출산 후엔 회사에서 여러분의 자리가 없어질 수도 있다. 업무에 복귀했을 때 나의 뚝뚝 떨어진 '감'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나보다 후진 능력치를 갖고 있던 동료가, 저 멀리 앞서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당연히도, 내가 어떤 아이를 낳게 될지는 낳아보기 전까지, 그리고 어느정도 크기 전까지 알 수 없기에... 여러분의 커리어는 휘몰아치는 삶의 소용돌이 속에 빨려들어갈 수도 있다.
생각보다 그 기간이 오래 걸릴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당신이 좋아하는 그 일을 다시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워커홀릭인 여러분은 열심히 노력할 테지만. 그러나 만약, 당신이 자신의 삶에서 '일'을 가장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결혼 전부터 충분한 각오와 결연한 의지(?)가 필요하다.
애석하게도 평균 결혼 연령은 늦어졌지만, 우리의 몸은 진화하지 못했다. 나이가 들수록, 특히 35세가 넘어가면 임신과 출산의 과정에서 점점 어려운 점이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다 보니 30대 중반에 가까워질수록 주변에서 '너흰 아이 언제 갖니?' 공격을 심심치 않게 받게 된다. 그때는 '잘 안 생기네요.' 방패를 사용한다면 이후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그러나 흘러가는 시간과 나이 들어가는 나의 몸은 막지를 못한다. '나중엔 간절히 원해도 아이가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는 조급함이 들게 된다.
만약 여러분이 자녀없이 살고 싶다면, 결혼 전 여러분의 예비 배우자와 사전 합의가 반드시 필요하다.
넷째, 때때로 열심히 일한다는 이유로 죄송해야 할 수 있다.
형과 남동생. 형제가 있었다. 형제는 둘 다 장성해 결혼을 했다.
그래서 그 집에는 두 명의 며느리가 생겼다.
하나는 직장인 며느리, 하나는 전업주부 며느리.
평소엔 별 탈이 없었다. 문제는 제사나 집안 행사 날이었다.
전업주부 며느리는 매번 일찍 와서 제사 음식을 준비했다. 직장인 며느리는 매번 저녁이 되어서야 얼굴을 들이 밀었다. 가족들은 당연히 전업주부 며느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고, 그 노고를 치하(?)했다.
칭찬이 오가는 훈훈한 현장에서, 함께 식탁에 앉은 직장인 며느리는 늘 죄인이 된 기분이 들었다. 때로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질투가 나기도 했다.
'하루 종일 일하고 피곤해 죽겠는데 달려왔더니... 지금 나 들으라고 저런 이야길 하는 거야?'
전업주부 며느리도 처음엔 기꺼이 음식 준비를 하려했다. 이해하려 했다. 하지만 점점 감정이 쌓여갔다.
'왜 나만 일해야 하지? 하루쯤 휴가 내고 오면 안되나? 지금 직장 다닌다고 유세 떠나?'
두 며느리,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직장인 며느리는 종종 '죄송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
남편의 아침 밥을 안 챙겨주는 것도, 아이 갖기를 미루는 것도
여러분이 직장인이기 때문이라고 지적받을 수 있다.
또 여러분의 아이에게 크고 작은 이슈가 발생한다면
그 이유는 '엄마가 집에 없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여러분이 '일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에 그렇다고 '해석'될 수 있다.
여러분께 결혼하지 말라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결혼의 좋은 점도 아주 많다.
하지만 철저히 자신의 커리어에 집중해오던 '워커홀릭 여성'에게
결혼은 생각보다 큰 변화라는 점을 말해주고 싶었다.
인생엔 우리가 즐겨쓰는
'Ctrl+Z(되돌리기)'도 'Shift+Delete(완전히 삭제)'도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