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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커피나무 Feb 17. 2022

[90년대생 며느리] '명절엔 여자가 힘든 거야'

일년에 두 번 정도, 코로나가 고맙다

나의 첫 명절을 떠올려 본다. 나는 2019년 가을에 결혼을 해서 다행히 코시국 결혼을 피했다.

그리고 2020년 1월에 결혼 후 첫 설날을 경험했다. 남편과 함께 폐백 때 입었던 한복을 바리바리 싸들고, 기차를 타고 지방에 내려갔다. 나의 본가는 서울에서 가깝고, 남편의 본가는 3~4시간 거리에 있기 때문에 명절에는 두말할 것 없이, 남편의 부모님을 먼저 뵙기로 했다. 나는 그것에 기꺼이 동의했다. 괜히 시댁 먼저냐 친정 먼저냐 하는 것으로 기싸움을 하고 싶지 않기도 했기 때문에. 당연히, 나도 남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갈등을 원치 않으니까.


그렇게 내려간 그곳은, 내가 살던 곳과 전혀 다른 세계였다. 나의 아버지는 육남매의 막내, 나는 사촌형제들 가운데 막내로 예쁨만 받으며 살아왔다. 우리 집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래 전 돌아가셨고 가족 중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제사를 지내지 않길 원하는 분들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우리 집은 막내였기에, 마지막에 가서 약간 거드는 정도, 혹은 산소에 가는 정도에서 마무리되었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공부한다는 이유로 그냥 혼자 집에 남아 있기도 했고, 대학생 때도 명절에 큰집에 내려가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나는 그게 편했고, 우리 부모님도 내 뜻대로 하는 걸 그리 막지 않으셨다.


하지만 남편 집안은 무척 달랐다. 시아버지는 형제 중 첫째, 그리고 나의 남편도 첫째였다. 순진무구했던 나는 그 차이가 그렇게 큰 것인지 전혀 몰랐다. 남편의 집안은 전통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각종 명절 음식을 하며  '요즘은 다들 사서 한다'는 이야기에 혀끝을 차는... 그런 세계였다. 정성을 다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었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집안 어른들이 나에게 많은 걸 바라신 것도 아니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어 거동이 불편했기 때문에, 뭔가 나서서 일할 수도 없었다. 어른들의 '새댁은 가만히 있어~'라는 말에 가만히 있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뭔가를 나서서 하지도 못하며 안절부절했다.


'말로는 가만있으라 해놓고 진짜 가만히 있으면 나중에 뒷말 나오는 거 아냐?'

불안했다.


 낯선 풍경 , 괴로운 것은 나의 존재  자체였다. 남편의 사촌 형제들은  뒹굴뒹굴 마음 편히 놀고 있는데 나는 '며느리'이기 때문에 그럴 수가 없고, 아무것도 하는  없이 죄스럽고 난감했다.


그리고 그날 나의 분노 버튼을 누른, 집안 남자 어른의 한 마디.


"명절은 원래 여자가 힘든 거야."


명절은 '원래' 여자가 힘든 거라고?

자신은 가만히 앉아서 술상을 받고 있으면서

할 말이 그 밖에 없단 말인가.


만약 회사나 학교에서 '여자는 원래 이렇게 하는 거야'라고 하며 일을 시킨다면? 문제시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명절 그리고 시댁에서 이것은 당연하게 여겨진다. 나는 '명절 시댁'이라는 시공간을 처음으로 경험하면서 우리 사회 가부장제와 차별이 아직 견고하다는 것을 체감했다. 이미 견고한 그 절차 속에서 아무런 말을 할 수 없고 그저 따라야 하는 나 자신이 무력했다. 내가 이러려고 결혼을 한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날밤, 나는 남편을 부여잡고 엉엉 울었다. 왜 내가 여기에 와서 일을 해야하는지, 일을 하지 않고 앉아있는 순간에도 왜 내가 이렇게 안절부절 해야 하는지, 왜 지은 죄도 없이 눈치를 봐야하는지.... 진정 이것이 '결혼한 여자'의 포지션이란 말인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힘들어하는지, 남편은 잘 이해하지 못했다.

남편과의 대화에서 가장 힘든 것은, 내가 시부모님을 싫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시키는 일이었다. 내가 힘든 것은 명절 문화다. 나는 운이 좋게도 정말 좋은 시부모님을 만났다. 나를 정말 딸처럼 진심으로 걱정하고 챙겨주신다. 물론 정말 딸 같을 수는 없고, 그것을 나는 당연하게 생각하므로 조금도 섭섭하게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명절'이란 건 좀 다른 문제다.


명절에는 시부모님 두분간의 관계도 미묘하게 바뀐다.

평소엔, 건강이 좋지 않은 어머니를 위해 아버지가 궂은 일을 도맡아하시는 편이다. 청소도 빨래도 척척, 해내시니 이런 신식 남편이 따로 없다. 하지만 명절이 되면? 공간부터가 나뉜다. 아버지는 안방, 어머니는 부엌. 단정히 차려입는 것은 남자들의 몫이다. 나의 시어머니는 집안의 어른이 아닌 한 사람의 '며느리'로서, 일에 최적화된 몸빼바지를 입고 일을 한다. 세상 다정하던 시아버지는 다시 구식이 된다. 그리고 '하루만 참아달라'고 설득한다. 우리는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누구를 위해 이렇게 하는 걸까.


드라마틱한 막장극은 없었다.

혹자가 나에게 “그날 무슨 일이 있었냐?”라고 묻는다면 나는 “별 일 없었다.”고 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어떤 악인도 없었다. 어떤 극적 사건도 없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명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곳에서 나의 위치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비참하고 절망적이었다.


내가 만약 딸을 낳는다면, 나는 이런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다.

딸에게 '모든 성은 평등하다', '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까.

이런 세상을 바꾸지 못하면서, 아니 적어도 우리 가족 안의 문화조차 바꾸지 못하면서 말이다.


원래 그런 것은 없다. 세상은 잘못된 것을 바꾸려고 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바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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