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야기
여자들은 나이 들수록 더워진다고 하지만 나는 갈수록 추워진다. 해외 여행할 때도 침대 냉기가 싫어서 전기방석이라도 들고 다닌다. 스페인의 마드리드를 여행하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감기로 고생하는 젊은 미국인을 만났다. 객지에서 아픈 것만큼 서러운 것이 없기에 주방에서 저녁을 만들어 먹이고, 한국에서 처방받은 몸살약을 주었지만 사양했다. 대신 따뜻한 잠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어서 전기방석을 깔아 주었다. 다음 날 아침 덕분에 잘 잤다는 말을 기대했는데 답답해서 잘 수가 없었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뜨끈함이 그에게는 갑갑함으로 느껴진 것이다.
한겨울에는 따뜻해서 좋지만 봄, 가을이나 게스트하우스처럼 히터가 켜진 곳이라면 낮은 온도라도 뜨겁기는하다. 날씨나 기온에 따라 전기장판의 온도가 일정하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제조 회사에서 권장하는 사용 매뉴얼은 없다. 내 장판 조절기는 1단부터 8단까지 있다. 추울 때 8단은 왠지 뜨거울 것 같아 5, 6단에 놓고 식으로 그냥 사용한다. 1단이나 8단의 온도가 궁금해서 인터넷으로 조절기 온도를 검색해 보았다. 설정 범위가 40도에서 70도까지라고 나와 있었다. 1단이라도 장판을 켜면 무조건 체온보다는 뜨겁다는 사실이다.
전기장판을 1단으로 켜는 것은 부엌의 인덕션을 40도에 맞추는 것과 같다는 논리이다. 찬물이 든 냄비를 인덕션에 올려놓으면 시간이 지면서 찬물이 40도에 도달할 것이고, 계속 두면 아마 끓을 것이다. 내 몸도 수분 함량이 높으니 뒤척이지 않으면 끓는 냄비 신세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소름이 끼쳤다. 또한 자다가 자주 뒤척이는 내 모습을 상상하니 마치 프라이팬 위의 생선 신세와 비슷하다.
임산부가 오래 누워있으면 냄비처럼 양수가 데워질 것인데 태아에게 아무런 영향이 없는지 모르겠다. 산모에게 좋지는 않을 것 같아 말리고 싶은 오지랖이 생긴다.
전기장판은 40도로 일정하게 유지하더라도 그 위에 누워 있는 나는 심한 온도 변화를 겪어야 한다.
사람이 잠들 때는 체온이 1도가량 떨어져야 한다. 열대야에는 빨리 잠들지 못하는 이유를 생각하면 맞는 말이다. 체온을 떨어뜨리려면 땀을 흘리거나 열을 내야 하는데 장판이 뜨거우면 도리어 방해가 된다. 잠이 늦게 들지만 그만큼 몸도 고생한다. 그래서 잘 때 뜨거운 장판에 들어가는 것은 좋지 않다. 그리고 자다가 더워서 몸을 자주 뒤척이게 되고 새벽에는 추워서 다시 이불속으로 들어가기를 반목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다가 일어나면 결코 푹 잤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자는 순간에는 체온보다 낮게 켜서 체온이 빨리 떨어지게 도와주는 것이 좋다. 자는 동안에도 체온보다 낮은 온도로 두어야 이불 킥을 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자려면 현실적으로 장판을 걷어내고 자야 한다.
스위스 루체른의 시골에서 민박한 적이 있다. 호텔처럼 빵빵한 히터 난방이 없는 대신에 두터운 요와 이불이 깔려 있었다. 특이한 것은 가끔 영화에서 본 털실로 짠 모자가 있어서 쓰고 잔 것이다. 처음에 잘 때는 추워서 걱정했지만 이내 곯아떨어져 아침까지 진짜 꿀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오랜만에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스위스의 맑고 깨끗한 공기 때문이라고 할 수도 있다. 전기장판이 주는 후끈함이 아니라 솜이불이 주는 포근함이 너무 좋았다. 털모자의 역할도 실감했다. 그 체험이 나에게 큰 경험이었다.
겨울에 내 침대에서 시도해 보고 싶었지만 두꺼운 침구는 관리하기 힘들다는 아내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대신에 바닥 온도를 최대한 낮추고 두꺼운 이불을 덮고 비니 모자를 쓰고 자는 생각을 했다. 한겨울에는 실내 공기가 차가워서 2, 3단에 설정하고 잤다. 두꺼운 이불을 덮고 냉기가 있는 날만 모자를 썼다. 이 정도만으로도 뒤척이지도 않고 잘 잤다. 장판을 걷어 내지는 못해도 아주 효율적이고 건강한 잠자리라 생각이 들었다. 덕분에 면역력도 올라갔을 수도 있다.
그러다가 2월에 매화가 피기 시작하면 1단으로 낮추었다. 3월이 되면 1단마저도 더웠다. 침대에서 올라오는 냉기만 막을 요량으로 장판을 끄고 야외용 알루미늄 돗자리를 깔고 잤는데 제법 냉기를 차단했다. 그래도 나이 때문인지 새벽에는 추웠다.
요즘에는 아주 미지근한 열만 내어 고장 난 전기요가 있어서 깔고 잔다. 처음에는 켜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있다가 누워 있으면 온기가 느껴지는 희한한 전기요다. 기존 제품도 1단으로는 이 정도로 미지근한 온도로 켜지는 전기요가 있었으면 좋겠다. 처음에는 미지근해도 시간이 지나면 인덕션처럼 따뜻해진다.
이렇게 1단으로 잠을 자기 시작하면서 2월이 되면 아침마다 생기던 알레르기 비염이 사라졌다. 초 저녁에 침대에 누우면 생기던 코 막힘도 장판을 껐더니 곧바로 사라졌다. 반대로 생각하면 전기장판의 뜨거움이 비염을 생기게 했다는 논리이다.
비염은 원인균이 있어야 한다. 침구에 있는 바이러스를 의심해서 봄에만 일주일에 두 번 정도 베개와 이불을 베란다에서 말렸다, 세균이 완전히 박멸되지는 않겠지만 개체 수를 줄이려는 의도였다. 음식 위생에서 미생물이나 세균, 바이러스는 40도에서 제일 활발하게 움직인다는 소리를 들었다. 전기장판 1단의 온도에 침구의 미생물은 번식하기 딱 좋은 환경인 것이다.
내가 장판을 끄거나 고장 난 장판을 사용해서 미생물이 싫어하는 환경으로 만든 것이다. 세균 활동이 느려진 만큼 비염에 걸릴 확률이 낮아진 것이다.
요즘은 자는 동안 호흡이 약해진다는 사실을 새로 알았다. 그래서 호흡량을 늘리기 위해서 비니를 쓰고 코 밴드를 붙이고 잔다. 그 후로 침대에서는 비염이 생기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