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메뉴판에는 멕시코, 스페인, 멕시코 등 여러 나라 음식이 있다. 음식이 낯설고 생소하다 보니 폴더폰 시절에는 메뉴를 설명해 달라는 사람이 많았다. 음식을 설명하려면 외래어를 남발해야 한다. 음식 이름보다 더 오래 설명해야 할 단어라서 난감해진다. 어쩔 수 없이 주변에 흔한 양식에 빗대어 설명해 준다.
스마트폰 시대에는 설명을 요구하는 사람이 줄었다. 이미 sns에서 리뷰와 댓글을 보고 왔기 때문이다. 손님들의 블로그를 보면 음식 설명보다 예쁘게 찍은 사진과 맛있다는 내용으로 적혀있다. 사람들은 처음 먹는 음식을 고를 때 남들의 추천에 의존한다. sns를 보고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음식을 주문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음식을 추천할 때 단순하게 맛있다는 말만 하는 사람보다 이유를 설명하는 사람을 더 좋아한다. 요리책이나 방송을 보면 아는 재료로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주기에 더 맛있어 보이는 것이다. 여행 중에 낯선 음식이 궁금하면 한 장의 사진만 자세히 보아도 식재료나 요리 과정을 짐작할 수 있다.
음식을 선택할 때 먼저 고려해야 하는 것은 뭐가 먹고 싶은지를 아는 것이다. 자장면이나 김밥, 국수처럼 음식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따끈한 국물이나 매콤한 음식, 고기 등 포괄적으로 먹고 싶을 때도 있다.
외국에서 자장면이 먹고 싶다면 비슷한 볶음면으로 대리 만족하면 된다. 그러다가 자장면보다 더 나은 음식을 먹게 될 수도 있다. 이렇게 조리법으로 외국 요리를 보면 모두 우리와 비슷하다. 책상다리 빼고 모든 것을 요리한다는 중국 음식도 재료만 다르지 전부 지지고, 볶고, 삶고, 굽고, 끓인 음식들이다. 음식을 불로 조리하기 때문이다. 낯선 음식을 만나면 그나마 익숙한 조리법으로 보면 한식에서 비슷한 음식이 떠올라서 친근해진다.
외국에서 배가 고프면 근처에 현지인으로 붐비는 식당을 찾아간다. 가게 입구나 벽, 메뉴판에 있는 사진을 쭉 훑어보면서 들어간다. 음식 이름이나 내용물까지 알려면 머리가 복잡해진다. 보이는 그대로 기름진 볶음 요리, 국물이 많은 탕이나 찌개처럼 보이는 스튜나 전골, 석쇠나 바비큐 구이 등 요리된 모양만 유심히 본다. 맛있어 보이는 사진에서 눈길이 멈추면 그제야 내용물을 읽어 본다. 그다음에 음식 색깔을 보고 양념의 강도나 맵기, 구운 정도를 참고하면 선택이 수월하다. 이처럼 사진에는 요리 방법, 양념 방식, 고기나 채소의 종류 등 여러 정보가 있다.
배고플 때 맛있어 보이는 사진은 내 몸이 원하는 음식이라는 확신이 있다. 그래도 혹시나 맛에 실패할 것에 대비해서 다른 종류도 선택한다. 여러 개를 고를 때는 한국의 상차림을 염두에 두면 된다. 한 상에 고기반찬과 탄수화물, 채소들이 마른 음식과 젖은 음식으로 구분해서 적당히 안배되면 잘한 선택이다. 한국만큼 일 인분의 양이 많지 않아서 심사숙고할 일이 아니다. 가볍게 생각해야 서로 어울리는 음식이나 궁합이 맞는 양념으로 빨리 고를 수 있다.
여러 음식을 골고루 주문할 때도 조리법만 보고 주문해도 절반은 성공한 것이다. 나머지는 테이블에서 직접 요리하면 된다.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내용물을 흩트리지 않고 그대로 하나씩 맛을 본다. 나는 이때가 제일 재미있다. 내가 아는 고수도 한국이나 베트남, 태국에 따라 맛이 다르게 느껴진다. 이처럼 아는 재료라도 다른 맛이 나기도 하고, 모르는 채소의 특이한 맛에 인상이 찌푸려지기도 한다. 가끔 불순물을 걸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재료나 양념을 하나씩 맛보면서 아내가 싫어하는 고수를 덜어내고, 거슬리는 향신료나 양념이 있으면 과감하게 빼야 한다. 곧바로 섞어버리면 맛 보정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싫어하는 재료를 걷어내도 나만의 요리가 된다.
식탁에 놓인 양념을 넣어 보기도 하고, 다른 요리들과 함께 먹으면 낯선 음식에서 느껴지는 부족한 맛을 보충할 수 있다. 그래야 생소한 음식으로도 만족스러운 식사가 된다. 음식은 요리사가 하지만 식탁에서도 얼마든지 다른 맛으로 요리할 수 있는 것이다.
낯선 음식을 먹다 보면 저절로 다른 나라과도 비교하게 된다. 김치볶음밥을 먹으면 중국식 계란 볶음밥, 인도네시아의 나시고랭, 태국식 볶음밥, 스페인의 빠에야, 미국 남부의 잠발라야, 이탈리아의 리소토가 비슷하다는 것이 보인다. 전쟁이나 이민의 역사에 따라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이들 볶음밥의 원조는 기원전 알렉산더 대왕이 좋아했던 중앙아시아의 기름진 양고기로 만든 플롭이란 것도 보인다.
나는 여름에는 쌈밥, 겨울에는 김치볶음밥이 제일 생각난다. 하지만 가끔 진짜 추운 날에 김치볶음밥을 먹다가 기름진 플롭이 생각날 때도 있다. 한여름에도 쌈밥 대신 밥알이 가볍게 날아다니는 나시고랭이 그립기도 하다. 이처럼 이 세상에는 김치볶음밥이 제일 맛있는 것이 아니라 사실도 남의 볶음밥을 먹어보고 알게 되었다.
외국 여행을 하면서 현지 시장에 가면 대부분 익숙한 채소와 고기들을 판다. 내가 식재료를 사서 만들면 한식이 되고, 현지 주방장이 만들면 현지 음식이 된다. 내가 볶음밥을 아무리 현지식으로 만들어도 김치볶음밥같이 만들어지고, 라쟈냐를 만들어도 오븐 스파게티 맛이 나는 것처럼. 다만 주로 사영하는 양념과 일부 특수 채소, 향신료 때문에 맛이 다르다.
한식을 만들 때 간장, 고추장, 젓갈, 조미료를 주로 사용하듯이 그 나라에서 주로 사용하는 재료가 있다. 그 맛을 알면 모든 음식이 아는 맛이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인스턴트보다 집밥을 좋아한다.
요즘은 밀키트나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나 화식으로 익혀진 음식을 좋아한다. 의외로 생채소를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초등학생 입맛으로는 외국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가 정말 어렵다. 그들은 간장이나 조미료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국 음식을 맛있게 먹으려면 원재료의 맛에 길들여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