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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용주 Sep 08. 2019

고양이 정수기에서 가습기 사태를 예견하다.

고양이 애호가에게 필요한 상식

고양이를 키우는 이들이 흔히 듣는 괴담 중 하나가 고양이가 물을 잘 먹지 않으며 수분섭취 부족은 결국 신장 등에 치명적 문제를 야기하여 죽음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고양이가 다른 동물에 비해 물을 잘 섭취하지 않는 것은 과학적 사실이다. 


이유는 매우 간단하다. 지금까지의 동물학적 연구결과에 따르면 우리가 키우는 고양이 즉, 집고양이(Felis catus)의 직접적인 조상은 북아프리카, 중동 지역에 넓게 분포하고 있는 아프리카 들고양이(Felis silvestris)이다. 이들의 분포지역을 보면 쉽게 추정할 수 있듯이 이들은 반사막 수준의 건조지대를 무대로 살아간다. 샘이 있을 수는 있지만 매우 드물며 따라서 대부분의 수분은 동물성 먹이를 통해서 섭취한다. 고양이는 또한 소량의 물만을 섭취하기에 배출하는 소변 역시 여타의 다른 동물에 비해 농축도가 높은 편이다.  고도로 발달된 소화기와 대사시스템 덕분에 먹이의 수분을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소량의 물만 가지고도 큰 무리없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유사한 동물군 중 더 효율적인 수분활용 시스템을 지닌 종으로는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페넥여우와 모래고양이 정도가 있을 뿐이다. 이들 종은 거의 완전한 사막지대에 살기에 물이 없이도 먹이에 포함된 수분 만으로 충분히 생활할 수 있다. 


우리 인간은 고양이를 직접적으로 길들이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인간의 거주지 주변에 이런저런 작은 설치류들이 곡물이나 음식 찌꺼기를 먹기위해 몰려들자 이를 먹기위해 현재 집고양이의 선조들도 인간의 거주지 주변으로 접근했고 지금의 집고양이와 같이 반가축화과정을 밟게 된다. 고양이에 대한 전지구적 열광에 따라 최근에는 흥미롭게도 밖을 전혀 나가지 않고 실내에서만 생활하는 고양이 개체수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기도 하다. 


밤에 조심스레 물가에 접근하여 물을 마시고 있는 아프리카들고양이의 모습(출처: AFRICACAM)


이와 같이 최근에 급증하게 된 실내에서만 살아가는 고양이의 대부분은 이런 저런 이유로 고형 사료를 먹는다. 습식사료라 불리는 습윤한 제형의 사료도 있지만 절대 다수의 실내생활 고양이는 고형사료를 먹는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본시 먹이의 수분만으로도 무리없이 살아가도록 진화한 고양이는 물을 즐겨 먹는 생활방식을 지니고 있지 않다. 물을 즐겨 먹지 않는 생활방식이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는 것이다. 그런데 먹이(건조한 고형 사료)가 수분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보니 고양이는 쉽게 만성 수분부족 상태에 빠지곤 한다. 수분이 동물을 비롯한 생체 내에서 가지는 의미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것이다. 수분은 동식물의 체내에서 생명 유지에 필요한 모든 유기 및 무기물을 공급하고 폐기물을 외부로 배출하는 데 없어서는 안될 물질이다.

 

말이 길어 졌다. 이러한 실내생활 고양이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국내외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출시되는 제품들이 바로 고양이용 급수기다. 간단한 필터를 장착하여 일반적인 그릇에 담긴 물이 먹이 부스러기 등으로 인하여 쉽게 부패하는 문제를 막고 졸졸 흐르듯이 움직이는 물이 고양이의 흥미를 자극해 수분 섭취량을 늘릴 수 있다는 것이 이러한 물건들의 소구점이다. 스스로를 집사라 칭하는 수많은 고알못(고양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들이 이런 제품에 열광한다. 


이 제품에는 왜 이렇게 많은 필터 시스템이 들어가 있는 것일까? 이 정도 수준의 필터를 넣을 수 없다면 그냥 수돗물을 자주 갈아 주는 것이 더 나을 수 있다. (출처: KENT)


그런데 사실 이런 제품이 당신의 고양이를 죽일 수 있다는 점을 알고도 이런 제품을 구매할 지 큰 의문이 든다. 무슨이야기인고 하니, 이런 제품에 장착되어 있는 이른 바 필터라는 것을 지적하는 것이다. 이런 류의 제품은 기본적으로 고양이가 접근하는 경우에만 또는 접근과 관계없이 항시 용기에 저장된 물을 자신들이 필터라 주장하는 구조체를 통과시켜 고양이에게 제공하는 단순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제품에서 핵심기능은 물을 흐르게 하는 펌프모듈과 물을 여과하는 필터다. 그런데 이 필터라고 하는 부품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언가 심히 잘 못된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이런 제품을 판매하는 이들은 물은 2-3일에 한번만 갈아주면 된다고 주장한다. 동시에 수돗물을 못믿을 수준의 저급한 수질로 폄훼한다.


혹시 고양이가 반나절 정도 사용한 물그릇을 본적이 있는가? 대부분의 고양이가 사용한 물그릇은 먹이 찌꺼기, 침, 털, 모래 심지어 분변으로 오염되어 있다. 이런 오염물질을 여과하려면 어떤 필터가 필요할까? 이런 물질이 들어간 물의 세균오염도는 어떠할까? 이런 제품이 세균을 죽이거나 걸러낼 수 있을까?


이와 같은 고성능 필터도 제대로 관리가 안되면 사용하지 않느니만 못한 상황이 펼쳐진다. 당신의 고양이가 사용하는 급수기의 필터는 어떠한가? (출처: ACQUAPULITA)


수많은 고말못들은 또 다른 고알못이 만든 고양이용 제품에 열광한다. 하지만 그 제품을 만든 사람들이 고양이의 생리적 특성은 고사하고 최소한의 기본적인 양식도 없이 눈가리고 아웅 식의 제품으로 당신을 홀리고 있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당신의 고양이에게 돌아간다는 점을 유념하기 바란다. 



고양이용 자동 급수기가 당신의 고양이를 죽일 수 있다. 수분부족이 당신의 고양이를 천천히 죽인다면 자동급수기는 장염과 이에 따른 탈수로 한번에 죽여줄 수 있다. 



진정으로 고양이의 수분부족이 염려된다면 고형사료를 물에 불려 주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  물론 먹지 않고 남은 사료는 세균의 과도한 증식을 막기위해 바로 버려주어야 한다. 화장실이나 베란다의 한켠에 붙어 있는 수돗꼭지 아래에 넓고 무거운 물그릇을 두고 한두방울씩 물이 떨어지게 하는 것도 좋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상수도요금은 고양이가 장염으로 병원을 찾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비용보다 절대적으로 작을 것이다.



고양이는 고알못이 만들어낸 서푼짜리 제품에 열광하는 바보 같은 집사를 원하지 않는다. 고양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과 고양이에 대한 이해를 가진 보호자이자 친구이다.



심용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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