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온기에 잠식될 때
여행지에 가면 유난히 집착하는 게 있다. 노을이다. 짧은 하루 중에서도 가장 짧고 빛나는 시간인지라 바쁜 일상생활 속에선 좀처럼 만나기 어렵기 때문일 테다.
어디 시간의 제약만 있겠는가. 날씨가 흐린, 특히 미세먼지 농도라도 높은 날엔 기대도 않는 게 좋다. 운이 좋아 날이 맑으면 아파트 틈새로 희미하게 붉은빛을 내뿜거나, 높게 솟은 빌딩에 반이 갈라져 보이는 게 부지기수다.
그러다 우연처럼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노을을 만날 때가 있다. 그 순간 주변을 둘러보면 늘 같은 색을 띠고 있던 건물 벽 시멘트, 보도블록, 높은 가로등과 커다란 통창까지 붉게 물들어 있어 세상이 온기에 잠식된듯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까지 노을빛에 물든 걸 보면, 참을 수 없는 애정이 샘솟고 이 시간이 끝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정말이지 마법 같은 시간이다.
이 아름다운 광경을 목격하는 날마다 주머니 속 핸드폰을 꺼내 셔터를 누르지만, 연신 눌러대도 눈에 담기는 것에 비해 초라한 걸 깨닫고는 핸드폰은 다시 주머니행이다.
이때만큼 전자기기가 부질없고, 또 필요 없는 순간이 있을까. 경험을 거듭했기에 잘 알면서도, 나는 항상 홀린 듯 카메라를 켜 눈부신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려 한다. 그 마법 같은 시간은 나를 매번 속인다.
이토록 쉽게 곁을 내주지 않으면서도 근사한 노을은 얼마나 이기적이고, 동시에 매력적인가. 또, 여행지마다 노을에 매달리는 건 충분히 납득할만한 일 아닌가? 그러나 뜻대로 되는 게 여행일 리 없다.
당연하게도 내가 살면서 만난 가장 아름다운 노을은 여행지에서가 아니다.
친구를 꼬셔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나온 날이었다. 마침 해 질 녘이었고 마침 우리의 걸음은 백화점 하늘정원 근처에 머물러 있었다. 창 너머 노을을 발견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가 앉았고, 영화 OST를 틀고선 감상을 나눴다. 그렇게 한참 대화를 나누고 나누다가 우리는 넋을 놓고 지는 태양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세상이 붉게 물들수록 우리 사이에 대화는 줄어들었다. 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 잡아당기는 것처럼 빠른 속도로 자취를 감춘다는 걸, 나는 그날 알았다. 아름다운 건 유난히 짧다는 말이 힘을 얻는 순간이었다.
노을로 물든 시간은 어쩐지 오래 남는다. 나는 그날 들었던 음악, 조금은 서늘했던 공기, 친구와 나눴던 대화와 대화를 멈췄던 순간의 고요까지 모두 선명하다.
아직까지 난 완벽한 노을을 보지 못했으리라고 단언한다. 그래야만 한다.
황혼은 종말에 비유되곤 하지만, 이를 목격하는 내 마음은 어쩐지 매번 영원을 약속하고 싶어 지기 때문이다. 근사하게 세상을 수놓은 빛 속에 있다 보면 나는 살고 싶어 진다. 그날 나를 통과한 것이 분노, 좌절, 우울, 그 무엇이었든 나는 영원히 살고 싶어 진다. 이토록 붉은빛이 감싸고 있는 안온한 시간은 너무나도 짧지만, 모으고 또 모아서 영원에 닿게 만들고 싶어 진다.